'인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2.22 기계를 닮아가는 인간
  2. 2016.03.21 지능혁명, 이미 본 미래.
  3. 2014.08.12 기술과 인간
  4. 2014.02.27 인문학과 딥러닝이 던지는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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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한달에 한번꼴로 판교로 출장가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공항셔틀로 서현역까지 이동하고, 서현역에서 다시 택시로 사무실로 이동합니다. 사무실에서 예약해둔 숙소로 이동할 때도 그냥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합니다. 주초에 출장갔다가 강남역 일대로 나갈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그때 조금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일상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들은 이게 뭐가 신기한 현상이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골에 살다가 가끔 지하철을 이용한 저에게는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러시아워를 지난 이후의 한산한 지하철 안에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립니다. 방금 전까지 의자에 편히 앉아있던 분들이 지하철이 정차하기 직전에 출입문 쪽으로 몰립니다. 이것만으로는 별로 신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앉아있던 자리 근처에도 출입문이 있지만 멀리 칸의 반대편으로 몰렸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정차해서 내렸더니 사람들이 몰렸던 출입문 앞으로 환승구/출구로 나가는 계단이 바로 있었습니다. 계단과 가까운 출입문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바로 뛰쳐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일 같은 지하철로 같은 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사람들이 기계화됐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도 인간이 공장 또는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움직이고 취급받는 것을 상기시켰는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최적화된 루트를 따라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그냥 기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서울에 사는 대학친구들과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어느 역에서 환승해야 하기 때문에 환승이 편한 칸이 정차하는 플랫폼 위치에 미리 가서 기다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마저 느꼈습니다.

직접 로봇을 개발하거나 인공지능을 연구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데이터 분석 업무를 수행했고 다양한 머신러닝 (기계학습) 알고리즘도 공부했고 주변에 그런 연구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SF영화 이상의 것들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로봇 및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공통된 꿈 또는 목표라면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기계 (예, 이족보행로봇)나 지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 많은 알고리즘들은 인간 (또는 자연)의 모습을 모사한 것입니다. 인간의 오랜 꿈이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목격한 것은 오랜 반복을 통해서 채득한/몸에 배어버린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최적화, 효율, 학습 등이 인간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광화문의 촛불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발적 객체들의 집단행동을 봤다면, 지하철에서는 코드화된 인간의 모습을 봤습니다.

'인간을 기계답게'는 산업화의 오랜 곤조였고,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 근대식 교육 시스템입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목표는 그래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고 주어진 목표치를 채워야 하는 산업화를 만들었고, 그런 산업화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하루에 몇시간씩 어린 아이들인 닭장같은 교실에 쳐박아넣고 사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년 20년 전, 심지어 50년 전에 배웠던 것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10년이나 20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이 지도층에 올라가있고 (그래서 만들어진 괴물이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이들) 그저 종이쪼가리 면허증을 기계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사가 된 것이 현실입니다 (김영재나 백선하같은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또 피터지게 싸웁니다. (그렇게 올라간 자리에 김진태나 이완영, 최경환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살려두는 것이 기계학습의 한 분야인 강화학습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필요할 때는 갖다쓰고 불필요해지면 버려지는... 그래도 더 오래 더 중요한 위치의 부품이 되기 위해서 택한 것이 교육이라는 현실... 결국 재능의 낭비일 뿐이다.

본인은 러다이트주의자는 아닙니다. 최적화의 최전선에 있는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데이터가 답이다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또 사람들을 현혹시킬 기술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겠다고 노력하는 사람이 러다이트주의자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내 게시판에도 짧게 적었지만 기계화된 인간에게 다시 인간성을 돌려주는 것이 지금 제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궁극의 기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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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대한민국을 다른 —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 단계로 이끌고 있다. 내심 이 9단의 (완벽한) 승리를 바랬건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정부 주도의 이상한 움직임을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대국을 통해서 우리는 더 전진하리라 믿는다. 이미 시작된 혁명을 가까이서 목격했고 여유는 없어도 늦지 않게 준비해나갈 수 있다.

세계의 곳곳에서 이미 시작된 혁명이지만 이번 대국을 통해서 이제서야 대한민국이 각성했다고 본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으나는 움직임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뒤덮을 이 거대한 움직임을 지능혁명이라 명명할 것이다. 지능혁명이란 지능의 폭발적 증가를 뜻한다.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농업 생산물의 폭발적 증가를 일으킨 것이 농업혁명 (또는 제1의 물결)이었고,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생산성의 폭발이 산업혁명 (제2의 물결)이었고, 그리고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이뤄진 정보 통신의 발달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의 개편이 정보혁명 (제3의 물결)이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지능혁명이라 명명하는 것이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분명 현재 그리고 향후 몇 년 동안 인공지능의 급진적인 발전을 목도할 것인데, 이 지능혁명은 인류에게 어느 수준의 혁명으로 불릴 것인가다. 지능혁명은 정보혁명 이후의 메이저 변혁 (제4의 물결)인가? 아니면 그저 정보혁명의 마이너 버전업 (제3.x의 물결)이 될 것인가?가 궁금하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촉발된 모바일 중심으로의 변화는 분명 정보혁명의 마이너 버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바일혁명을 제3.1의 물결정도로 부른다. 그러면 지능은 단순히 정보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3.2의 물결일까? 아니면 정보혁명 다음의 거대한 물결, 즉 제4의 물결일까?

해커주의와 메이커스 운동에 따라서 정보혁명 이후의 세상을 다시 자급 사회로의 회귀를 예측했었는데, 그런 흐름의 겻갈레로 지능의 발전을 목도하고 있다. 어쩌면 지능혁명이 자급사회로의 회귀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지능의 폭발로 인한 로봇의 인간 대체 현상이 가속화됐을 때 잉여 노동력은 무엇을 해야할까? 혁명의 과실을 모두 고르게 나눈다면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항상 그렇듯이 (소수 인간의 욕심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혜택을 모두가 고르게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연명하기 위해서 다시 밭을 갈고 낚시/수렵을 하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단순히 예술활동이 아닌 진짜 생존을 위해서… (고르게 혜택을 누리는 경우에도 자연주의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어차피 그 때가 되면 인간이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놀라운 컴퓨팅 파워에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이 도전받고 있다. 바둑을 통해서 전략 게임이 직관이 아니라 계산에 압도되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직관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는데, 이젠 모든 상황에 대한 계산이 우리를 뻔한 미래로 이끌고 있다. 계산이 직관을 이기는 세상이 우리 곁으로 왔다. 지난 모든 혁명은 분명 인류에게 큰 기회였고 도움이었는데, 지금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인가? 어쩌면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지능혁명 — 이게 맞다면 — 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딥블루나 왓슨이 그랬듯이 알파고를 지능형 머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여전히 있다. 알파고가 여전히 생각하는 기계 (thinking machine)이 아니라 계산하고 평가하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연산이 생각을 앞선 세대가 됐다. 딥블루와 왓슨으로 미국인들이 자각했듯이 알파고로 이젠 한국인들이 자각했다. 물론 자각했다고 제대로 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구글/알파벳이 싼값에 알파고를 내세워서 마케팅을 잘했다는 비아양도 있지만, 알파고가 대한민국에서 많은 대한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9단을 꺾은 것은 우리에겐 분명 행운이었다. 다른 나라 땅에서 다른 나라 사람을 이겼다면 지금처럼의 충격과 각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이벤트보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우리 모두에게 두려움을 줬고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줬다.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쪽으로 공부해보고/시켜보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SNS에 전파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이젠 알파고키즈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이룩할 혁명적 발전, 즉 지능혁명을 기대한다. 3.2가 될지 4.0이 될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4.0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바라건대 수동적으로 이끌려갈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를… 

혁명은 이미 시작됐고, 우린 지금 그 한 가운데 놓여있다. 외롭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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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인간

Gos&Op 2014.08.12 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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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잡아서 2년 내에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의 절반 이상을 자동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한 말입니다. 미디어다음에서 뉴스를 편집운영하면서 뉴스추천 프로젝트를 메인으로 기획한 친구입니다. 제대로 된 뉴스 편집 및 운영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모든 뉴스를 읽고 미담이나 다음탑에 노출시킬 것인가 말것인가를 계속 판단해야 하는 사람손을 많이 타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활동의 절반 이상을 단기간 내에 자동화시키고 그 친구는 다른 더 창의적인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비단 이 친구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 지난 글(참고. 기획에 대해서)에서처럼 함께 일하고 있는 모든 기획자들에게 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개발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성격이 조금 다를 뿐 허투루 허비하는 많은 잡다한 일들은 자동 영역에 맡기도 늘 새롭고 창의적인 사고, 실행에 집중해야 합니다. 2년이란 시간도 길게 잡은 것입니다. 그만큼 절박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흔히 자동화를 통해서 기계 또는 컴퓨터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해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지구 상의 누군가는 그런 완전무결한 자동화를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을 바랍니다. 설령 그렇게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고 해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자동화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로봇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파트에서 일하다 보니 사람들은 데이터 마이닝을 좀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같습니다.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데이터마이닝/분석을 한다고 말하면 데이터마이닝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보이기 전에 손사레를 치고 외면해버립니다. 그러고선 이제껏 편하게 해왔던 일로 돌아섭니다. 그런 두려움과 미신이 저같은 허름한 분석가를 (분석가의 역할을) 보호해주는 것같아 내심 안도하면서도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 학계를 중심으로 발전시킨 데이터마이닝은 조금 복잡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전혀 들어볼 수 없는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 차있고, 하나의 개념이나 알고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해서 알아야 하는 지식이 한가득입니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연구가들은 일부러 더 어려운 용어를 만들어내고 간단한 설명도 복잡한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같습니다. 학교에서 농담삼아 얘기했던 건데, 복잡한 증명문제를 그저 'It's trivial'이라고 말하고 증명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논문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엮인 많은 논문을 읽어야 하고, 그 참조 논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엮인 것들을 읽어야 합니다.

사무실이 조금 추운 것같아서 건물 밖을 한 바퀴 돌면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정작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은 정교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두에 말한 자동화도 그렇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대체하는 개념의 자동화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빠르고 편하게 도와주고 그렇게 해서 절약한 시간을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종류의 자동화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기획이 그렇습니다. (당장은) 아무리 좋은 알고리즘을 개발하더라도 기획자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데이터 가공만으로도 그들의 잡다한 수고를 덜어줄 수가 있습니다. 기획자가 자신의 일의 50%이상을 자동화해야 한다는 의미도 어떤 제품/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인가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나 데이터가 있으면 내가 만들고자 하는 서비스/제품을 미리 검증해보고 상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으로 자신의 일을 경감시켜줄 데이터나 도구를 마련한다면 2년 후에는 한차원 높은 기획자가 돼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여러 논문을 다시 찾아봅니다. 참 읽기 어렵습니다. 인트로까지는 쉽게 읽게는데 그 이후는 내가 논문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여갈수록 내가 만들어내는 알고리즘도 복잡한 수식으로 이뤄진 거창한 무언가가 돼야 한다는 헛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간단하게 해결할 문제를 이것저것 새로운 요소들을 갖다붙여서 복잡한 솔루션으로 만들어 냅니다. 마치 알고리즘/솔루션의 복잡함이 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증거인양... 그렇게 해서 큰 효과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저 간단한 수식이나 몇몇 요소로 해결했을 때보다 더 나아졌다는 보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기술, 쉬운 알고리즘이 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요즘 빅데이터 기술로 인해서 난해한 문제나 알고리즘을 사용할 수 있게도 됐지만 (예를들어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딥러닝 Deep Learning같은), 오히려 간단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즉 사칙연산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알고리즘/연산으로 빠른 시간에 해결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예측보다 더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엔지니어링이란 복잡함을 감추는 과정이지만 그것 자체도 굳이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여러 논점이 섞였습니다. 기술은 필요에 따라서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그 복잡함을 재고하고 정작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합니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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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인문학에 대한 화두는 대한민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기성 세대의 인문학 팔이에 대한 회의가 겹쳐서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다. 어쩌면 '중심에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듯하다. 대한민국에서 공학이나 과학과 비슷하게 인문학도 논의의 중심에 놓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단지 조금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중심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일 뿐, 여전히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정치 또는 경제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중심에 놓일 수가 없다. 간혹 스포츠가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그건 정치의 조작에 따른 왜곡된 현상일 뿐이다.

Canon | Canon PowerShot SD1100 IS | Pattern | 1/13sec | 0.00 EV | 11.6mm | ISO-250 | Off Compulsory | 2010:01:27 02:32:48그날


오랫동안 공학에 발을 담고 있는 나는 여전히 인문학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방법을 모를 뿐 뭔가 변화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힐링이라는 말과 함께 기성세대들의 생명연장을 위한 지나친 인문학 마케팅은 여전히 경계한다.

그런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풀어보면 사람을 뜻하는 인, 글자/문자를 뜻하는 문, 그리고 배움을 뜻하는 학으로 이뤄졌다. 즉 사람과 글과 배움이다. 문자 그대로 사람에 관한 것이고, 글에 관한 것이고, 또 배움에 관한 것이다. 사람 글 배움... 

먼저 문이란 결국 글이다. 즉 글을 적는 능력, 글을 읽는 능력, 글을 해석하는 능력, 글을 응용하는 능력 등으로 볼 수 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생각하는 능력이다. 문을 영어로 표현하면 liter(al)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같은데, 조금 의역하면 art로 표현될 것같다. (영어권에서도 liberal art라고 표현했지 않은가?) Art란 흔히 예술이라 표현하지만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즉 예술과 기술은 같은 것이고 이는 모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artificial) 만든, 즉 natural의 반대 개념이다. 결국 문은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문은 인에 포함된다.

학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배우지 않은/못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배움이란 사람이 가지는 기본 소양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거다. 같은 결론으로 학도 인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사람 그 자체가 인문학이고, 사람에 관한 것이 인문학이고,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이 인문학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에 대한 이상 과열 현상이 진짜 이상하다.

결국 인문학에서 사람만 남았다. 사람 또는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이래야 한다는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그 속에 사람이 없으면 그것은 인문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내가 인문학에 기대하는 이유도 혹시나 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다시 사람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역으로 인문학에 경계를 하는 이유도 다시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이다. 잘 알려진 많은 인문학 마케터들은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잘 팔린다.)

인문학에 대한 무지 또는 오해가 인문학을 무용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무지가 맞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이 인문학을 배우고 전파한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학문적으로는 오래 됐지만 그 효용이 끝났다라고 판단했던 알고리즘이 있다. 물론 일부 분야에서는 좋은 성능을 보여준다고 믿었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 다른 더 나은 알고리즘으로 대체됐다고 판단했던 알고리즘이다. 바로 신경망이라 알려진 뉴럴네트워크, 더 정확히 말하면 인위적 뉴럴 네트워크 (Artifical Neural Network, ANN)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위적으로 사람의 신경망을 은유해서 만든 머신러닝 기법이다. 수식으로 깔끔하게 표현되지 못해서 비판을 받고 또 다른 대체제들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장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최근에 딥러닝 Deep Learning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뉴럴네트워크를 처음 제안했던 사람들의 꾸준한 연구와 그리고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이 충분한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를 확보한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적절한 사용처를 찾아내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딥마인드라는 회사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술적으로 4세대 뉴럴네트워크인 Restricted Boltzmann Machine이 딥러닝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어차피 대부분 관심이 없을테니 그냥 아는 척 한 거다.

어쨌든 딥러닝 또는 뉴럴네트워크의 성공 이면에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람의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할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모사가 뉴럴넷이기 때문이다. 뉴럴넷같은 소프트웨어/알고리즘 뿐만 아니라, 많은 로봇공학이 사람이나 동식물들의 움직임 또는 기능을 관찰해서 얻은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기계/로봇으로 동물을 그대로 모사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기체와 다른 형태로 구현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유기체의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것 또는 더 나은 것을 얻고 있다.

인문학이 던지는 화두는 사람에 대한 본질에 대한 이해이고, 딥러닝이 던지는 것은 사람의 기능에 대한 이해다. 사람의 본질과 기능.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어제 적은 '성공하는 서비스'에서 밝힌 AC도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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