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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5 실연에 관한 박물관 @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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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II[각주:1]에서 ‘실연에 관한 박물관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라는 제목으로 재미있는 전시가 진행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연, 즉 관계의 끊어짐을 주제로 국내외의 사연과 물품을 전시합니다. 오늘 (2016.05.05) 개막했는데, 오는 9월 25일 (2016.09.25)까지 진행합니다. 전시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http://www.arariomuseum.org/exhibition/#/dongmun-motel2.php

‘실연에 관한 박물관’은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처음 기획한 전시회는 아닙니다. 크로아티아의 올링카 비스티카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라는 두 아티스트가 시작했던 전시 컨셉을 아라리오에서 정식으로 빌려와서 국내의 사연을 모아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실연 박물관은 실제 연인이었던 비스티카와 그루비시치가 헤어지면서 둘 사이에 추억이 깃든 물건을 전시하고 또 주변의 사연과 사연품을 모아서 전시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몇 주 전에 방영한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에서 ‘실연 박물관’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개막 행사에서 비스티카와 그루비시치가 직접 제주를 방문해서 몇몇 사연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그냥 얼핏 보면 사소한 물건들이 나열돼있습니다. 그러나 뮤지엄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에 소개된 각자의 사연을 읽어보면 모든 물건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사연품들 중에서 4층에 올라가면 큰 지프형 자동차도 전시돼있어서 처음에 조금 놀랐습니다. 전시회 기간이 끝나면 모든 사연품들은 크로아티아의 수장고로 보내서 반영구 보관한다고 합니다.

혹시 박물관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우신 분들은 ‘실연의 박물관’라는 책도 함께 출간돼서 그것을 보셔도 됩니다. 각 사연품들의 사진과 사연자가 직접 적은 사연글이 함께 소개돼있습니다. 전시장에는 외국의 사연품들도 일부 전시됐지만, 책은 국내 사연만 포함했습니다. (외국 사연은 영어로 된 책이 따로 있다고…)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0964818

제가 왜 이렇게 잘 알고 굳이 전시회를 소개하느냐 하면… 아라리오 뮤지엄의 한 큐레이터께서 저도 뭔가 구구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고 전시에 참가할 수 있을지 문의를 해왔고, 저는 이별 — 특히 연인과의 실연 — 에 관한 기억이나 적당한 사연품은 없지만, 일반적인 헤어짐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사진과 글은 줄 수가 있다고 전달드렸고, 그래서 사진(과 글)이 실렸습니다. 모든 사연을 소개할 수 없지만, 제 사연은 여기에 공개합니다.

Canon | Canon EOS 5D Mark III | Aperture priority | Partial | 1/200sec | 0.00 EV | 35.0mm | ISO-3200 | Off Compulsory | 2016:05:05 17:04:14전시된 사진으로 블러처리해서 찍었습니다. 선명한 사진은 전시장이나 책에서 확인하세요.

저의 고향은 경북 경산입니다. 굳이 고향을 언급한 것은 경상도 사내하면 대부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리고 저의 아버지도 당연히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과묵하고 잔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부자였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참 엄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이 없지만 어릴 적에 혼나고선 집 밖으로 쫓겨났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에 그런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숙 생활을 한 이후로는 늘 혼자 외지에서 생활했습니다. 한 지붕 아래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던 기간보다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한 기간이 더 깁니다. 더욱이 제주도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 이후로는 1년에 두세차례만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어릴 때는 무서워서 아버지와 가까워지지 못했는데, 철든 후에는 물리적으로 떨어져지내다 보니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작년 여름에 소천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동안은 파킨슨 병으로 오래 고생하셨고,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기는 했지만 마지막 몇 달은 요양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깊은 유대감은 없었지만 병세가 깊어진 이후로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고 혹시나 불길한 연락을 받았을 때 고향가는 비행기편을 바로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며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 몇 달동안은 한달에 한번꼴로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뵙는데, 결국 6월 마지막날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대구행 비행기표를 쉽게 구했고 주변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저는 다시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장례식 중에는 바쁘고 지쳐서 큰 상심이 없었는데, 제주에 오니 며칠동안 비워뒀던 쓸쓸한 방으로 그냥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그래서 공항 주차장에서 차를 찾고 바로 인근에 있는 이호항으로 향했고, 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면서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함께 사진을 찍지도 않았었는데... 그렇게 보내드리고 나서 홀로 이렇게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를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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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제 모텔이었던 건물을 개조해서 박물관/전시실로 만들어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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