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12.21 실망하나 감사둘
  2. 2012.01.28 길 옆의 길 Invisible

실망하나 감사둘

Gos&Op 2012.12.21 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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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이제 모든 것이 지나갔으니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무책임한 생각은 버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는 입에 발린 위로는 듣기 싫다.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지만 나는 앞으로의 날들을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의 꿈이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냥 모든 것을 덮고 앞으로 나가자라고 말하고도 싶지만 내가 그렇게 대인배는 아니다. 그 전에 나의 실망들을 펼쳐야겠다. 실망에 긴 설명을 붙이고 싶지 않다. 단어 하나 하나가 추가될수록 내 정신 건강만 해칠 것같다. 그리고 실망뿐인 결과였지만 나는 과정에서 희망을 봤고 그것에 감사해야겠다. 앞으로의 나의 날들도 잘 부탁합니다.

실망
- 내 고향 경상도. 자존심을 버리고 스스로 노예임을 자청했다. 당분간 제정신으로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서울 경기 수도권.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했는데, 서울에 우마(매)가 더 많은 것같다. 용산의 눈물과 쌍용차의 절규가 바로 네 옆집의 일이라는 걸 눈감지 마라. 아니, 조만간 네 일이 될 거다.
- 부산/제주. 부마항쟁은 어디에서 일어났으며 4.3은 어느 지역의 일인가? 강정은 여전히 눈물흘리고 있다.
- 어르신. 당신들은 젊은이들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닌 당신들의 향수에 투표했다. (밖의) 근혜 불쌍한 줄 알아도 (안의) 자식 불쌍한 건 모른다.
- 젊은이. 자신의 권리를 의무와 함께 버렸다. 자업자득.
- 재벌 보수언론. 이번 승리는 진정 니들의 승리다. 감축드립니다.
- 저소득층.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고 부자를 위해 투표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집단이다. 절대 가난해지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었다.
- 새누리. "수단과 방법과 과정은 중요하다" 이걸 절대로 깨닫지 못할 거다. 영원히 깨닫지 말고 그대로 소멸했으면 좋겠다.
- 민주당. 전략이 없으면 열정이라도 있어야 한다.
- 부동층. 꼰대들이나 갱상도에는 처음부터 희망이 없었다. 욕망에 투표한 니들이 진짜 역사의 반역자들이다. 시간이 많았지만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았다.
- 기독교. 예수님을 욕보인 그대들인 진정 크리스챤인가? 신천지니 굿이니 그런 것을 떠나서 '예수님이라면?'정도의 질문에 답은 얻고 행동했어야지.
- 나. 주변에 설득할 기회를 그냥 허비했다. 적어도 5년은 역사의 죄인으로 남는다.
- 48. 스스로 우리는 다르다라고 자평하겠지만, 50만명만 제대로 설득을 해줬어도… 그것보다 결과 후의 비정상적인 반응에 실망한다. 선거 직후, 바로 공공요금/물가가 오르고, 부가세가 2%나 더 오르고, 대학등록금이 4.7%까지 오르고, 물이 민영화되는 것을 보면서 꼬시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비정상에 실망한다. 적당한 직장을 가졌고 먹고 살 수 있으니 세금 더 올리고 복지예산을 줄여서 우매한 것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자라는 그런 편협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의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 …
더이상 입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

감사
- 선거를 축제로 만들어준 나꼼수.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이번 선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선거가 더이상 전쟁이 아니라 이제는 축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승리만을 목매는 부류가 있지만, 그래도 많은 국민들은 이제 선거를 치뤄면서 과거와 같이 이념대결이나 과격한 구호가 아니라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선거를 축제로 만들어준 가장 큰 기여자는 바로 나꼼수팀일 것이다. 그래서 '나꼼수 졸라 땡큐'다. 선거 직후부터 검찰수사 등의 후폭풍이 몰아치는데 잘 극복하기 바란다.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밖에 전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당장의 감정을 추스린 이후에 나도 주변에 힘을 모아서 행동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모색해볼 요령이다. 선거를 축제로 만들고 즐거운 미래를 만들 그런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행하는 것이 어쩌면 나꼼수팀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보은이다. 그리고 나꼼수를 필두로 만들어진 많은 팟캐스트 및 대안 미디어들 (나꼽쌀, 딴따라, 이털남, 뉴스타파 등)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희망을 이어주신 문재인님. 결과를 떠나서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꿈꿀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당신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의 실패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통했습니다. 당신의 국민으로 살지는 못하지만 당신의 이웃으로 살 수 있어어서 여전히 행복합니다. 이웃의 아픔에 같이 눈물을 흘려주시고 안아주는 그런 국회의원으로써의 의정활동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아직은 우리가 당신을 지도자로 모실 그런 수준과 능력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글 하나.)
- 소리통 안철수. 중간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래도 당신의 존재가 힘이 되었습니다. 미흡함을 많이 봤지만 정치인으로써의 길을 이어가시겠다고 하셨으니 5년의 준비를 거쳐 새시대의 선봉장이 되어주십시오. 뉴스타파에 나온 소리통 영상을 보면서 한방울 눈물을 흘렸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보수의 진면목. 처음에 유여준 전장관님이 문캠프에 들어오고, 표창원 교수님이 이상한 말을 할 때는 다소 놀랐습니다. 그러나 보수나 꼰대정신이 아닌, 합리와 원칙을 보여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나이가 어려야 청년인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젊어야 청년이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합리적인 생각과 원칙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여주신 그 모습, 그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 1400만의 희망. 48%의 비정상적인 반응에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1400만이 대한민국의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습니다. 5년 뒤에 변절자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나 그래도 계속 나아가면 꿈이 아닌 현실이 됩니다.
- 깨어있는 국외자들. 대선 기간에 보여줬던 국외자들의 투표여정에 감동했습니다. 몇 시간, 며칠을 달려서 또는 수백km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한표를 던진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행 중에도 투표를 하기 위해서 일정을 조정한 얘기도 들었습니다. 누구를 선택하셨던간에 당신들의 행동이 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 SNS. 이번에 승리했다면 SNS의 승리라고 불렀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서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직은 좀 갇혀있지만 이번에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고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되어가리라 믿습니다. 이번 대선 기간을 통해서 얻었던 다양한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참여수단/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증샷이나 투표독려를 하는 그런 것이 선거문화가 되고 선거축제가 되는 모습에서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봅니다. 그런 자발성이 없었으면 절반의 성공(은 사실상 실패지만)도 없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아픔을 보다덤어주는 그런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냥 연결된 네트워크가 아닌 함께 하는 공동체로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 깨어있는 10대.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이땅의 젊은 학생들이 나보다 더 깨어있다는 것을 가끔 봅니다. 절망은 꼰대에게, 희망은 10대에게서.
- 역사를 잊지 않은 광주.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아픔을 사라졌지만 여전히 흉터가 남아있다. 경상도에서 30년을 지내면서 많이 오해했습니다. 이제서야 진실을 봅니다.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 소신있는 연예인들. 김제동, 김미화누님을 필두로 해서 바로 앞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데 (실제 지난 몇년간 그래 왔다), 대중의 앞에서 소신있는 용감한 발언들을 해주셨고 또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힘을 북돋우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웃음을 잃지 않게 계속 도와주세요.
- …
그리고 많은 감사할 것들에 감사한다.

이걸로 나의 아픔이 모두 치유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구멍난 가슴에'라는 노랫말이 들려오면 또 눈문 한방울 떨굴지도 모른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혹독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기에, 잠시 묻어두고 내가 나가야할 길을 찾으려 한다. 페이스북에도 글을 적었듯이, 처음에는 허탈했고 다음에는 분노했고 그리고 지금은 측은하다. 어제까지는 세상의 모든 연민을 버리고 혼자서 조용히 살아남자라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역사는 그냥 또 반복된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역사를 잊어버리고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만 축내면 역사는 반복되고 나도 나이가 들수록 활력을 잃고 세상에 그저 동화되어버릴 것이다. '계몽'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사회는 여전히 계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지 아직 제대로 감이 오지 않지만 뭔가를 해야한다는 시대의 사명감을 느낀다. 힘내자. 살아남자. 그리고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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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의 길 Invisible

Gos&Op 2012.01.28 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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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겨울 들어서 세번째로 윗세오름을 다녀왔습니다. 이전과 같이 영실코스로 올라서 어리목코스로 내려왔습니다. 이번은 겨울산행에 대한 포스팅이 아닙니다. 그 길 위에 새겨둔 저의 다짐에 관한 글입니다. 다짐이란 언제든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기록해두면 언젠가는 다시 리마인드되고 또 새로운 다짐으로 저를 채찍질할 거라 믿기에 부끄럽지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눈덮인 겨울 산행은 경치가 아름답지만 힘들고 위험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이미 많은 이들이 다녀간 등산로를 걸으면 별로 힘들지도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산행도 그랬습니다. 1m가 넘는 눈이 내린 한라산이지만 수많은 이들의 흔적들이 모여서 멋진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등산로 옆에 쌓인 눈을 밟으면 발은 무릎보다도 더 깊게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심스럽게 이미 다져진 등산로를 따라서 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눈 앞에는 눈밭이 더넓게 펼쳐져있는데, 나는 왜 이 좁은 등산로로만 걷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다져진 길 옆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같은 길을 걷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전 그 길을 걸었습니다. 이게 저의 다짐입니다.

 그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올해는 그리고 앞으로는 잘 만들어져서 안전한 등산로가 아닌 그 옆의 험난한 눈길을 걸어보겠노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걷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막연히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나만의 길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등산로를 멀리 벗어난 길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등산로 바로 옆으로 아무도 걷지 않은 나만의 길을 걸어보겠다는 것입니다. 무릎보다 더 깊이 빠지는 눈밭을 걷는 것은 참 힘듭니다. 눈덮인 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깊이까지 발이 빠질지 등의 모든 것이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여러 위험들이 숨어있기도 하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고, 눈이 몸 속으로 들어오면 발이 얼 것같기도 하고, 또 어느만큼을 더 가야할지도 모릅니다. 안전하고 쉬운 길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힘들고 위험한 길을 걷노라고 옆에서는 조롱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새로운 다짐이 되었습니다.


 지난 저의 35년, 특히 2011년을 되돌아보면 저는 너무 쉽고 안전한 길만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뒤돌아보더라도 저의 발자취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밟았던 그 길에서 저의 발자국이 남아있을 리가 없습니다. 간혹 조금 남아있더라도 그것이 저의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누구의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척한 새로운 길에서는 제가 디디는 모든 곳에 저의 발자국이 남아있습니다. 누군가 제 뒤를 따라오면 저의 발자국도 희석이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뒤돌아보면 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위험하고 불확실한 그 길을 걸은 사람만이 그런 자신만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나 여기 다녀감'이라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저 남들의 인생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하산길에 길 옆의 (길 아닌)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역시나 힘들었습니다. 무릎보다 깊이 빠져드는 그 눈밭에서 몇 발자국을 걷자마자 힘이 들고, 바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정도였습니다. 50m정도만 눈밭을 걸었는데도 6km의 등산길보다 더 힘들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었습니다. 네, 재미있었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위험한 길/도전이었다 하더라도 그 길/도전이 재미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랑질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걸었던 그 등산로에 수 백, 수 천의 다른 등산객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다져진 길만을 걸으면서 설국의 경치에만 감탄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그 희열은 그들은 알 수 없습니다. 그 희열 밑에 있는 저의 다짐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희열을 얻었고, 용기도 얻었고, 다짐도 얻었습니다.
 
 아직은 훈련이 덜 되어있어서 먼길을 길이 아닌 길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등산로를 너무 벗어난 미지의 곳까지는 걸을 자신도, 힘과 에너지도,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도전에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눈길은 힘들지만, 장비만 제대로 갖춘다면 덜 위험합니다. 오늘 제가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눈밭을 걸어갈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스패츠와 같은 그런 준비물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함께 눈길을 걸어주지는 않았지만 함께 등산했던 동료 때문에 제가 도전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저 혼자서 등산을 했다면 그 길을 걸어갈 용기를 못 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금만 방향을 돌리면 다시 안전한 등산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것도 저의 도전을 가능케했습니다. 2012년은 조금씩 일탈을 꿈꾸고,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으면 더 먼 길도 개척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겠죠.

 오늘은 짧은 눈밭에서의 일탈이었지만 그것이 제게 시사하는 바는 너무 큽니다. 저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저는 열정을 식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저 남과 같은 제가 아니길 바랍니다. 길 옆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겁니다. 아무도 걷지 않았다고 그곳에 길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곳에 길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 드라마 '다모'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관군의 수장이 묻습니다. '너는 왜 길이 아닌 길을 걷느냐?' 그러나 쫓기던 주인공 (김민준)이 말합니다. '길이 아닌 길이라...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한사람이 다니고, 두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법...이 썩은 세상에 나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오...' (아, 이 대사는 '다양성'과 '독창성' 그래서 '보편성'에 대한 정수를 보여줍니다.)

 길이 아닌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저의 다짐입니다. 실생활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오늘을 회상하며 또 이렇게 글을 적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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