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Pin It
최근에는 한달에 한번꼴로 판교로 출장가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공항셔틀로 서현역까지 이동하고, 서현역에서 다시 택시로 사무실로 이동합니다. 사무실에서 예약해둔 숙소로 이동할 때도 그냥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합니다. 주초에 출장갔다가 강남역 일대로 나갈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그때 조금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일상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들은 이게 뭐가 신기한 현상이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골에 살다가 가끔 지하철을 이용한 저에게는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러시아워를 지난 이후의 한산한 지하철 안에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립니다. 방금 전까지 의자에 편히 앉아있던 분들이 지하철이 정차하기 직전에 출입문 쪽으로 몰립니다. 이것만으로는 별로 신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앉아있던 자리 근처에도 출입문이 있지만 멀리 칸의 반대편으로 몰렸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정차해서 내렸더니 사람들이 몰렸던 출입문 앞으로 환승구/출구로 나가는 계단이 바로 있었습니다. 계단과 가까운 출입문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바로 뛰쳐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일 같은 지하철로 같은 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사람들이 기계화됐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도 인간이 공장 또는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움직이고 취급받는 것을 상기시켰는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최적화된 루트를 따라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그냥 기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서울에 사는 대학친구들과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어느 역에서 환승해야 하기 때문에 환승이 편한 칸이 정차하는 플랫폼 위치에 미리 가서 기다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마저 느꼈습니다.

직접 로봇을 개발하거나 인공지능을 연구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데이터 분석 업무를 수행했고 다양한 머신러닝 (기계학습) 알고리즘도 공부했고 주변에 그런 연구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SF영화 이상의 것들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로봇 및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공통된 꿈 또는 목표라면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기계 (예, 이족보행로봇)나 지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 많은 알고리즘들은 인간 (또는 자연)의 모습을 모사한 것입니다. 인간의 오랜 꿈이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목격한 것은 오랜 반복을 통해서 채득한/몸에 배어버린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최적화, 효율, 학습 등이 인간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광화문의 촛불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발적 객체들의 집단행동을 봤다면, 지하철에서는 코드화된 인간의 모습을 봤습니다.

'인간을 기계답게'는 산업화의 오랜 곤조였고,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 근대식 교육 시스템입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목표는 그래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고 주어진 목표치를 채워야 하는 산업화를 만들었고, 그런 산업화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하루에 몇시간씩 어린 아이들인 닭장같은 교실에 쳐박아넣고 사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년 20년 전, 심지어 50년 전에 배웠던 것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10년이나 20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이 지도층에 올라가있고 (그래서 만들어진 괴물이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이들) 그저 종이쪼가리 면허증을 기계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사가 된 것이 현실입니다 (김영재나 백선하같은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또 피터지게 싸웁니다. (그렇게 올라간 자리에 김진태나 이완영, 최경환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살려두는 것이 기계학습의 한 분야인 강화학습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필요할 때는 갖다쓰고 불필요해지면 버려지는... 그래도 더 오래 더 중요한 위치의 부품이 되기 위해서 택한 것이 교육이라는 현실... 결국 재능의 낭비일 뿐이다.

본인은 러다이트주의자는 아닙니다. 최적화의 최전선에 있는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데이터가 답이다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또 사람들을 현혹시킬 기술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겠다고 노력하는 사람이 러다이트주의자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내 게시판에도 짧게 적었지만 기계화된 인간에게 다시 인간성을 돌려주는 것이 지금 제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궁극의 기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B: https://brunch.co.kr/@jejugrapher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대한민국을 다른 —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 단계로 이끌고 있다. 내심 이 9단의 (완벽한) 승리를 바랬건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정부 주도의 이상한 움직임을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대국을 통해서 우리는 더 전진하리라 믿는다. 이미 시작된 혁명을 가까이서 목격했고 여유는 없어도 늦지 않게 준비해나갈 수 있다.

세계의 곳곳에서 이미 시작된 혁명이지만 이번 대국을 통해서 이제서야 대한민국이 각성했다고 본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으나는 움직임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뒤덮을 이 거대한 움직임을 지능혁명이라 명명할 것이다. 지능혁명이란 지능의 폭발적 증가를 뜻한다.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농업 생산물의 폭발적 증가를 일으킨 것이 농업혁명 (또는 제1의 물결)이었고,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생산성의 폭발이 산업혁명 (제2의 물결)이었고, 그리고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이뤄진 정보 통신의 발달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의 개편이 정보혁명 (제3의 물결)이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지능혁명이라 명명하는 것이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분명 현재 그리고 향후 몇 년 동안 인공지능의 급진적인 발전을 목도할 것인데, 이 지능혁명은 인류에게 어느 수준의 혁명으로 불릴 것인가다. 지능혁명은 정보혁명 이후의 메이저 변혁 (제4의 물결)인가? 아니면 그저 정보혁명의 마이너 버전업 (제3.x의 물결)이 될 것인가?가 궁금하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촉발된 모바일 중심으로의 변화는 분명 정보혁명의 마이너 버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바일혁명을 제3.1의 물결정도로 부른다. 그러면 지능은 단순히 정보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3.2의 물결일까? 아니면 정보혁명 다음의 거대한 물결, 즉 제4의 물결일까?

해커주의와 메이커스 운동에 따라서 정보혁명 이후의 세상을 다시 자급 사회로의 회귀를 예측했었는데, 그런 흐름의 겻갈레로 지능의 발전을 목도하고 있다. 어쩌면 지능혁명이 자급사회로의 회귀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지능의 폭발로 인한 로봇의 인간 대체 현상이 가속화됐을 때 잉여 노동력은 무엇을 해야할까? 혁명의 과실을 모두 고르게 나눈다면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으나, 항상 그렇듯이 (소수 인간의 욕심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혜택을 모두가 고르게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연명하기 위해서 다시 밭을 갈고 낚시/수렵을 하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단순히 예술활동이 아닌 진짜 생존을 위해서… (고르게 혜택을 누리는 경우에도 자연주의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어차피 그 때가 되면 인간이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놀라운 컴퓨팅 파워에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이 도전받고 있다. 바둑을 통해서 전략 게임이 직관이 아니라 계산에 압도되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직관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는데, 이젠 모든 상황에 대한 계산이 우리를 뻔한 미래로 이끌고 있다. 계산이 직관을 이기는 세상이 우리 곁으로 왔다. 지난 모든 혁명은 분명 인류에게 큰 기회였고 도움이었는데, 지금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인가? 어쩌면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뜨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지능혁명 — 이게 맞다면 — 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딥블루나 왓슨이 그랬듯이 알파고를 지능형 머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여전히 있다. 알파고가 여전히 생각하는 기계 (thinking machine)이 아니라 계산하고 평가하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연산이 생각을 앞선 세대가 됐다. 딥블루와 왓슨으로 미국인들이 자각했듯이 알파고로 이젠 한국인들이 자각했다. 물론 자각했다고 제대로 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구글/알파벳이 싼값에 알파고를 내세워서 마케팅을 잘했다는 비아양도 있지만, 알파고가 대한민국에서 많은 대한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9단을 꺾은 것은 우리에겐 분명 행운이었다. 다른 나라 땅에서 다른 나라 사람을 이겼다면 지금처럼의 충격과 각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이벤트보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우리 모두에게 두려움을 줬고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줬다.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쪽으로 공부해보고/시켜보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SNS에 전파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이젠 알파고키즈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이룩할 혁명적 발전, 즉 지능혁명을 기대한다. 3.2가 될지 4.0이 될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4.0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바라건대 수동적으로 이끌려갈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를… 

혁명은 이미 시작됐고, 우린 지금 그 한 가운데 놓여있다. 외롭지 않기를...

===
B: https://brunch.co.kr/@jejugrapher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I)에 대한 이슈가 뜨겁다. 불과 1~2년 전만하더라도 빅데이터가 화두였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인공지능이 차지했다. 사실 빅데이터는 마케팅 용어가 가깝지만,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역사만 되돌아보더라도 빅데이터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다양한 오랜 연구의 결과가 현재의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딥러닝과 함께 인공지능은 더욱 활짝 만개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 딥러닝 Deep Learning으로 보는 시각은 우려가 된다. 딥러닝이 인공지능을 진일보시킨 것은 맞지만, 딥러닝으로 인공지능을 대변하기에는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

기술(의 진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다. 크게는 인류를 행복의 나라로 이끌 것이라는 긍정과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부정으로 나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미래학자, 전문가들의 전망과 우려는 긍정과 부정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다. 본인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보는 사람이지만, 당장 결론을 내라고 한다면 비겁하더라도 불가지론을 택하겠다. 기술의 진보는 확실하지만 그걸 통제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모르겠다.

조만간 있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의 대국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어쩌면 나의 긍정과 부정의 시각을 조율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세돌 9단이 이긴다면 기술의 긍정성에 더 가까워질테고, 그렇지 못하다면 기술이 가져올 암흑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질 것같다. 감히 예견을 해본다면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이긴다 하더라도 인간의 우위는 1~2년에 불과하다고 본다. 대승을 하든 겨우 이기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기계는 여전히 다중 목표 성취 (범용성)에는 취약하다는 점이지만, 그것도 멀지 않아 해결될 것이라 본다.

인공지능이 우려되는 것은 오직 인간 지능을 뛰어넘지 못할 때다. 어줍짢게 인간 지능에 가까워졌을 때는 인간의 어리석음만을 학습했다고 본다.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라면 아마도 인간의 마음, 즉 지혜를 터득했을 때다.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면 스스로를 파괴할 더 똑똑한 지능이 만들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인간만이 가진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암흑 세계를 전망하지 않는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기계가 만들어지겠지만, 기계 위에 기계가 군림하는 것이 실현된다면 그건 뛰어난 인공지능이 아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은 인간으로도 족하다.

대부분의 기술은 인간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장의 기계화나 자동화는 인간 노동을 줄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인간에게 휴식과 여유가 아닌 더 강화된 치열함만 줬다. 기계가 결국 인간의 일자리를 빼았았고, 쫓겨난 인간들은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린다. 기술이 가져다준 부는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갔다. 이게 로봇이 가져온 디스토피아다. 그 디스토피아가 바로 현재다. 단순히 10년 내에 인간의 일자리 몇 개가 사라질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궁극에는 모든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기계를 소유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고, 그런 (시장을 형성하는) 인구가 없어진다면 결국 그 일부의 권력자 또는 부자들도 없어질 것이 뻔하다. 미래에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그런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인간이 멸종하는 그런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 인공지능 또는 기술이 가져다준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 최근 1세기 동안 이뤄졌던 기계화와 자동화 등에 따른 부의 편중이 향후에 계속 이어지고 또는 가속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의 3원칙으로는 인류를 지킬 수 없다.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기술의 열매를 나눈다라는 인류의 원칙을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이 이슈가 되고 실생활로 들어오고 있는 지금 논의돼야 한다. 당장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논의는 빨리 시작돼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로 인해 생긴 잉여를 사람들에게 잘 -- '골고루'는 아님 -- 나눠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결국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의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인간이 멸종한 세상이 디스토피아다. 어쩌면 그렇게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서 기계들이라도 여전히 살아남는다면 어쩌면 그게 더 좋을지도...

===
B: https://brunch.co.kr/@jejugrapher
M: https://medium.com/jeju-photography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