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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추천 뉴스' 후에

사람들은 5월 초에 있었던 다음 카카오 합병 소식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5월 말에 있었던 어떤 서비스 오픈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현재 다음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도 아니고 기존의 페이지에서 한 구좌에 조금 노출되는 수준이니 열혈 사용자가 아니면 (지금은 그런 사용자도 많지 않다) 눈치를 못 챘을 가능성도 높다. 트위터에 해당 서비스명으로 검색해봐도 서비스 개발자는 아니었지만 그 팀에 속한 어떤 분이 간단히 소개하는 정도의 트윗이 올라와있고, 다른 하나는 고맙게도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있다.


여러 측면에서 이게 무서운 서비스일 수는 있지만, 현재 다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당장의 지표를 보면) 그렇게 두려운 서비스는 아니다.


어쨌든 이 서비스에 메인으로 참가했던 자로써 서비스 1차 오픈 후에 간단한 소회를 밝히는 것이 맞을 것같아서 글을 적는다. 서비스의 시스템 아키텍쳐는 다른 분들이 담당했고 본인은 추천 알고리즘에 주력했다. 그래서 시스템 개발에 사용된 기술이나 방법은 설명할 수가 없고, 그리고 알고리즘은 처음에 구상했던 것이 아직은 완벽하게 적용돼있지도 않고 다른 여러 이유로 자세히 밝힐 수도 없는 처지라서... 그리고 기본적인 추천 알고리즘은 이미 여러 편을 통해서 밝혔고, 그 글에서 다룬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서비스 우상단에 보이는 도움말에도 짧게 설명돼있지만, 그 설명이 전부이면서도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자세한 설명은 추후에 여러 가지가 클리어된 후에 다시 적는 것이 나을 듯하다.

시스템이나 알고리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을거면서 뭐하러 이런 글을 적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 글은 1차 오픈 후에 느낀점을 정리해서 혹시나 비슷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라고 적는다.

먼저 밝히지만, 서비스를 오픈한 후에 여러 지표들이 기대했던 것에 많이 못 미친다. 폭발적인 UV나 PV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 기대치가 그랬다.) 여러 핑계거리가 있지만 어쨌든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점만 밝힌다. 그래서 며칠동안 계속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지표를 확인하면 우울해진다. 일간 지표를 확인하면 하루마다 우울해지고, 시간 지표를 확인하면 매시간이 우울해지고, 분단위 지표를 확인하면 실시간으로 우울해진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수치에 민감해진다.

사내 위키에 적었던 오픈 후의 소감과 심경을 다시 정리한다.

서비스의 오픈이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경우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서비스 오픈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리고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과연 뭐가 성공일까?) 오픈하면 모든 것이 끝난 기분이다. 그리고 실제 많은 경우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픈 전에 여러 가지를 가정하고 대비를 하지만 실제 서비스를 오픈하면 그때부터 실제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레이스가 시작된다. 서비스의 오픈은 프로젝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가지 마시고 (번아웃에 조심하고), 시작을 위한 마음가짐을 가지세요.

그래서 너무 거창한 생각으로 완벽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욕심보다는 간단하고 조잡하더라도 빠르게 만들어서 사용자들의 평가를 받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서비스를 오픈해야 한다. 빠르고 긴밀하고 유연하게... 물론 완벽한 개념과 마스터플랜 (물론 계획은 뒤틀어진다)을 가져야 하지만, 1차 오픈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키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개념이나 시기 등에 따라서 빠르게 적용할 것과 완벽하게 적용할 것이 나뉘지만, 일반적으로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서비스를 준비할 때 생각하는 가정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서비스를 오픈하자마자 그런 모든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가정과 시나리오를 생각하지만 사용자들은 그런 가정과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에 대한 테스트를 해본다. 그러나 테스트는 또 테스트일 뿐이다. 실제 상황에서 완벽한 가정과 완벽한 테스트는 무용지물이 된다. 최소한의 안전책일 뿐이다.

사공이 많아도 배는 산으로 가지 않는다. 단지 원했던 곳으로 제때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주변의 소리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특히 힘이 있는 사람들의 소리에 너무 흔들리면 안 된다. 항상 귀를 열어두데 손과 발이 매번 움직일 필요는 없다.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많은 요구사항에 대해서 'NO'를 하지 않았던 것들에 후회가 된다. 말했듯이 빠르게 핵심을 구현한 후에, 주변의 조언에 따라서 다시 빠르게 수정해도 늦지 않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의 말에 따라서 움직이면 결국 엉뚱한 곳에서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인가?'를 외칠 뿐이다.

결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구글의 에릭 슈미츠가 'Revenue solves all known problems'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수익이 많이 발생하면 방법론이 틀렸건 비용이 많이 들었든 그 모든 문제들이 무시된다는 얘기다. 결과가 좋으면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생겼던 모든 문제와 갈등이 해결된다. 그러나 역으로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좋았던 모든 것도 문제가 된다. 완벽한 개념도 결과가 나쁘면 허접쓰레기가 되고, 예쁜 UI도 누더기로 보인다. 지표나 수치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된다.

Universal but Focused. 국정원의 모토가 '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를 지향한다'라고 한다. 그렇듯이 모든 서비스는 모든 사용자를 위해야 하지만, 그래도 시작은 좁은 범위에 집중해야 한다. 포털 서비스라는 것이 그렇다. 수백만, 수천만의 사용자를 만족시켜줘야 한다. 모든 개인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평균내서 만족이 불만족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지만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타겟을 모든 사용자로 정하면 서비스의 개념이 흐트러진다. 결국 최종 결과물은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괴물이 만들어져있게 된다.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은 맞지만 적어도 1차 오픈에서는 명확한 타겟을 염두에 두고 오픈하는 것이 맞다. 물론 앞서 모든 가정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듯이, 목표했던 타겟층들이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표상으로 별로 신통치 않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가 없고, 관련자들은 바로 보이는 수치 (PV, UV, CTR)는 특출나지 않지만 서비스의 품질이 나쁘거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위로를 한다. 그러나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 바로 눈에 보이는 1차 지표가 만족스럽지 못하니, 현 상황을 변명하기 위해서 2차, 3차 지표를 찾기 시작한다. PV가 별로 높지 않으니 인당PV (PV/UV)를 확인하게 되고, 이도 신통치 않으니 체류시간이나 리텐션레이트 등의 복잡한 지표를 만들고 확인하려고 한다. 그렇게 합리화 지표가 만들어진다. ... 타겟 유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말과 같이, 처음부터 명확한 지표와 목표치를 정해놓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냉정하게 판단하면 된다.

...

서비스 오픈 후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멘붕이다. 기대치를 밑돌기 때문이다. 너무 높은 기대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더 지표에 집착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별로 나쁜 결과는 아니다라고 위로하고 지표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지표에 연연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서비스를 오픈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지만, 나는 이 서비스를 처음부터 설계한 설계자였다. 공은 모두가 나누어 가지는 것이지만, 과는 설계자가 짊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야 한다. 그게 일종의 암묵적 사회 계약이다. 그래서 서비스 오픈 후에 매일매일을 죄인의 심정으로 살 수 밖에 없다. 많은 핑계가 있지만, 설계자가 짊어져야할 십자가다.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조언하고 싶은 것은... 권한이 없는 설계자의 자리를 -- 가급적이 아니라 -- 무조건 피하라는 것이다. 설계자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아니면 권한이 있는 사람이 설계자가 돼야 한다. 권한도 없이 결과에 대한 책임만 짊어지는 고단한 삶을 살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렇지만 게임이 계속 된다면 여전히 사용할 카드패가 남았다는 것은 위안이 된다. 게임이 계속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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