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나는 야근을 권하지 않는다. 계약을 맺은대로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야근 또는 추가 근무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비록 본인 (또는 상사나 동료)의 무능, 잘못 짜여진 계획, 부족한 리소스 (시간) 등의 이유로 인한 잔업을 해결하기 위한 야근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합의와 공감대가 있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이것 때문에 서울에서 파견 오신 분도 계신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잠만 숙소에서 자고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2시 또는 그보다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다. 평소에도 일찍 퇴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늦게까지 야근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퇴근하지는 못하더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게 된다. 물론, 사무실에 남아있는다고 일만 하는 것은 아니고 1~2시간정도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괜히 남아서 게임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얄밉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먼저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편하지 않다.
참고로, 기본적으로 나는 제주에 내려오면서 나인투나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능하면 아침 9시 이전에 출근해서 밤에 8시나 9시정도까지는 사무실을 지키려고 한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것이 몸에 베어 그런 것도 있지만, 워크홀릭이라서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8시간 동안 모든 능력과 집중력을 압축해서 소진해버리고, 일과 무관한 세상으로 도피하는 (그리고 다음날 또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일터로 나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저 8시간동안 집중할 것을 9~10시간으로 양적으로 완화, 분배해서 여유롭게 일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담배를 피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떨지 않기 때문에 잠시 머리 식히려고 퍼즐을 하는 것은 좀 용납해줘으면 한다. (사실 퍼즐을 하고 있을 때는 가장 많이/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쨋든 그렇게 조금 늦게 회사에 남아있다보니 이제 저녁 7시가 넘어서 야근하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고, 대부분의 사무실은 불이 꺼져있다. (실은 한 두 사람 때문에 불필요하게 사무실 전체가 환희 불켜져있는 것이 맞다.) 내가 처음 제주로 내려왔던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사무실 풍경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밤 늦게 일하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이제 결혼해서 애를 낳고 가정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잠시 감정을 추스리고...
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 들어온 젊은 친구들이 야근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보는 것도 아니다. 간혹 급한 잔업을 처리하기 위해서 야근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야근이 사라진 사무실의 풍경이 이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칼출근, 칼퇴근이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근태관리는 중요하다.)
잔업에 의한 야근은 분명 반대하지만, 지금은 열정에 의한 야근마저 사라졌다는 것에 답답하고 암울하다는 얘기다. 지금은 형식상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열정과 의욕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업무의 연장선에서 더 나은 제품/서비스/성능을 위한 야근도 사라졌지만, 더 심각한 것은 새롭고 다른 것을 시도해보기 위한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자발성에 의한 야근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직원들이 창조성과 생산성을 위해서 잉여력을 기꺼이/자발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그냥 소비하고 소진할 뿐 창조하지 않는다. 다양한 원인과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열정이 사라졌고 그 현상으로 야근하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몇 년 전 소셜 커머스가 이제 막 생겨나던 시절에 몇몇 직원들이 듀얼잡으로 소셜 커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적발돼서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분명 이중취업을 금지한 회사 내규를 어겼기 때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또는 실수 또는 잘못을 단순히 감봉하고 징계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서 사내 벤처 형식으로 도전의 기회/장으로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확신컨대 해당 소셜 커머스 서비스는 별로 빛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통해서 사내의 다른 직원들도 도전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2~3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런 기회를 통해서 그 사이에 제도권 내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나 제품이 만들어져서, 회사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하고 수익이 되는 사업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패했을 수도 있다.)
낮에는 맡은 회사일에 충실하고 그리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저녁이 있는 삶은 중요하다) 또 다른 기회를 위한 도전이 이뤄지는 삶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차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욕과 열정이 사라졌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부속품이 되어 회사를 힘겹게 다니는 동료들의 모습만 보인다. 새로운 도전, 무한한 꿈, 넘치는 열정… 여유가 없으니 문화도 없고 시스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사에 경쟁력있는 서비스가 없는 것도, 주가가 시원치 않은 것도 문제겠지만,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다. 단, 열정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직원들이 존재할 때의 얘기다. 지금은 직원들에게서 그런 열정과 도전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회사의 전망이 어둡다는 거다. 캐시카우는 만들어서 키우면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주가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캐시카우는 만들고 키우는 직원이 없다면… 그들의 열정과 상상력과 도전이 없다면….?
야근이 사라진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함께, 아니 먼저 사라져버린 열정과 도전이 아쉽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는데… (몸도 지쳤고 마음에 상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지만… 힘든 건 힘들다.) 로켓에 빈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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