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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IT 후진국

지난 (월요일) 밤에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으로 계신 임정욱님이 올린 '휴고 바라의 중국 인터넷마켓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중국시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둘 내용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이제 중국의 IT시장은 한국보다 저만치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은 우물안의 IT강국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지금 여기서 굳이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 인터넷실명제 (이건 위헌 판결받았으니) 등의 각종 규제나 한국만의 스스로 만든 고립/갈라파고스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연초의 보험회사 긴급 출동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은 이미 공유한 바가 있다. 당시에는 그저 '만약에'와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이야기만 적었었는데, 중간에 빠진 내용이 하나 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인터넷과 모바일기기 (스마트폰)이 전국에/저변에 늘리 퍼져있다는 환상이 있는데, 정보 격차 또는 정보 기기의 사용 격차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IT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허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험사에 전화를 했을 때, 긴급 출동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름이나 현재 위치 등의 고객 개인정보를 이용해야 된다고 한다. 당연히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당연히 허락했다.

그런데 연락을 한지 30분이 넘도록 기사님은 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오지 않았다. 오지 않았다기 보다는 오지 못했다. 나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지 적당한 구조장비를 챙길 수 있다면서 사진 두장을 요구했다. 그래서 아이폰을 꺼내서 자동차가 빠져있는 상태를 찍어서 기사분께 보내줬다.

그런데 현재 위치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는 것같아서 지도앱을 실행해서 현재 위치를 캡쳐해서 같이 보내줬다. 현재 위치를 URL로 공유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캡쳐한 사진과 말로 설명한 것을 조합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장소를 찾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30분이 넘도록 기사분은 오지 않았고, 몇 차례 전화 통화만 있었다. 결국 구조는 되었지만...

현장에 오신 기사분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였다. 그런데 현장 사진 및 해결 후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가 꺼낸 핸드폰은 2G 폴더폰이었다. 아이폰은 아니더라도, 그 흐하디흔한 안드로이드폰정도는 예상했는데... 만약 넓은 화면의 스마트폰이었다면 내가 보내준 지도를 보고 더 쉽게 찾아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보험사에 제공한 위치정보는 GPS가 아닌 이통사 기지국을 기준으로 한 것같다. 만약 이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보험사에서 SMS로 URL을 하나 보내주면 그것을 클릭하면 정확한 GPS 위치를 서버로 제공해주는 거다. 모바일 앱이나 서비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 외곽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수 있었을텐데... 그래서 좀 더 빨리 구조되었을텐데...

아주 오래 전에 나 스스로를 일종의 '선지자'라고 표현했다. 좋은 의미의 선지자는 아니다. 얼리어댑터는 아니지만, 나름 최신/최첨단의 기기들이나 서비스들을 사용하고, 이제 남들이 많이 사용할 때 즈음이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것을 찾아보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IT 선지자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행동이 일반 대중들의 그것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대중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나는 이미 흥미를 잃어버려서 나의 인사이트가 다수의 인식과 맞지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못된 선지자라고 표현했던 거다.

대한민국의 일부 지식층이나 전문가를 선지자로 묘사했다. 대중과는 분리된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나같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서비스를 만들고 주도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대중은 왜 이런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왔는지 이해를 못한다. 필연적으로 애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용하지 못/안한다. 일반 대중의 눈 높이와 삶에 맞춰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당연한 실패다. 전국민이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경험에서는 그 인식과 반대되는 현상을 자주 겪는다. 긴급호출도 그런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라고는 하지만, 특히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는 IT 후진국, 아니 미개발국이다. IoT나 웨어러블 디바이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규제와 문화 그리고 삶이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거다. Uber가 들어와서 규제를 받는다.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라딘의 카드 결제가 막혀버렸다. airbnb나 lyft같은 서비스를 한국에서 시작한다면 각종 이권단체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법적인 규제를 받을 거다. 다양한 모바일 결제는 거의 불가능할테고 당연히 모바일 생태계가 비정상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형성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이걸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거라며 계속 미루고 있다.

중국의 인터넷 마켓 이야기와 연초의 경험이 결합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그래서 조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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