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페이스북을 통해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은 학생의 고민상담이 들어와서 글을 적습니다. 질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캠프에 참석했다가 다음소프트의 송영길 부사장의 발표를 보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어졌다.
(범죄예약이나 사회정책 등) 주어진 문제를 다각도로 조사 이해해서, 이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싶다.
빅데이터 연구센터 및 연구실 등을 고려해서 산업공학과에 진학하면 될 것같아서 준비해오고 있었다.
평소보다 수능성적이 낮게 나와서 지원했던 대학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현재 성적으로는 중상위권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입학도 가능하다.
재수를 해서 원하던 대학의 학과 (컴공으로 수정)로 진학하는 것이 나을까요?
지난 번의 문과학생의 진로고민이나 타대학으로 편입을 고려중인 분의 질문에 비해서는 덜 기술적으로 답변을 드려야할 것같습니다. 이런 저런 다양한 측면에서의 진로에 대한 답변이 될 듯합니다. 어쩌면 -- 각자의 상황을 면밀히 모르는 상황에서 -- 아주 원론적인 답변만 해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미디어의 영향이 개인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듯합니다. 어느 시대나 인기 직업이나 인기 학과가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특정 분야의 특정 직업을 콕 찝어서 말하지는 않았던 것같았는데, 최근에 진로를 고민하시는 분들은 아주 구체적이라서 보기에 좋습니다. 확고한 신념이나 비전을 가지고 무엇이 되겠다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룩하겠다는 다양한 방법 (테크트리 또는 커리어패스)들이 존재합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는 것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수학과 (응용통계), 산공과, 컴공과 등 어느 학과를 선택하느냐는 어떤 측면에서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각 학과마다 특징이 있고, 다른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최종 원하는 꿈을 이룰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학과마다 조금 다른 관점/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계관이 형성되는 젊은 시절에는 특정 학과의 가치관,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의 생각들이 나의 평생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입니다.
특정 학과의 특성을 짧게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학과마다 문제와 해법에 대한 접근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글에서 과학자는 해법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 엔지니어는 주어진 문제에서 다양한 해법을 찾아서 적용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수학, 컴사/컴공, 산공의 순으로 과학과 공학의 정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30대의 전문 직업인이 되었을 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해서 산공은 다양한 문제 이해, 수학은 정확한 문제 모델링, 컴공은 솔루션 실행에 강점이 있는 듯함)
그래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에게 컴사/컴공을 추천하는 이유는 좀 더 어린 나이에 프로그래밍이나 알고리즘에 더 친숙해져라는 의미입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목표이므로 전공필수가 아니라면, 당연히 복수전공/부전공/수강 등을 통해서 타과의 수업들을 미리 들어둬야 합니다. (당연히 수학과를 진학하더라도 필요한 컴공, 산공과 수업을 들어둬야할 것이고, 산공과에 가더라도 수학이나 컴공 수업을 들어둬야 합니다.) 특히 질문자처럼 다양한 '문제/애플리케이션'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그래서 산업공학도 나쁘지 않겠다고 짧게 답변드렸습니다. 어쨌든 학부 졸업만으로는 원하는 분야의 직업을 얻기는 힘듭니다. 가능하더라도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 이상의 사회경험이 축적된 이후에서야 원하는 수준에 이릅니다.
저는 재수를 하지 않아서 재수하면서 보내는 1년이 어떤 시간인지 잘 모릅니다. 일단 붙어놓고 재도전하라라는 조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국내에서는 타대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또는 타과로의 전과 진학) 자대생들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예전보다 빈번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다른 대학 또는 다른 과의 학생들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용기가 부족해서 다양한 도전을 해보지 못했던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졸업 후에 다른 상위권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서 진학을 포기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자연대/공대에서 대학원 진학률이 떨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대학/타과로의 대학원 진학의 문이 매우 넓어졌습니다.)
만약 1년 뒤에 재도전을 확신한다면 굳이 4년동안 원하지 않던 대학에서 (후회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이유도 없습니다. 길게 보면 지금 1년은 별로 아까울 것도 없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 결과론적 상황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하는 바 (사회/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타이틀)를 얻기 위해서 최소 1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금 낮은 곳에서 시작하거나 (올해 성적에 맞는 대학에 진학) 조금 늦게 시작하거나 (재도전 후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 결국 원하는 포지션/높이에 오르려면 필요한 노력과 수고는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불가능을 전제로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말라는 당부드립니다.
적으면서 답변의 뉘앙스가 조금 바뀐 점도 있고, 또 질문자가 원했던 답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와의 면밀한 관계 (?)가 없는 상황에서 아주 원론적인 답변밖에 못 드리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최소 10년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고,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지는 말라는 답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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