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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우리 중엔 없을 거야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이 장려되는 분위기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NIH를 경계한다. NIH는 Not Invented Here의 약자로써, '우리가 개발하지 않았음'이라는 뜻이다. 외부에서 개발된 더 진보된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배제하는 현상을 뜻한다. NIH는 때로는 관료주의의 결과로 더 우수한 기술을 발견/적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우리가/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우월주의의 결과인 경우도 많다. 이유야 뭐가 되었든, NIH 신드롬이 팽배한 조직 -- 특히 거대 조직 -- 이 외부의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은 수많은 케이스스터디의 사례로 남아있다.

NIH를 잘 극복한 (?) 사례로 애플의 창업 초기에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PARC에 가서 맥의 초기 컨셉인 GUI와 마우스를 가져와서 사용한 것, 그리고 나중에 OOP나 네트워크 기술을 넥스트컴퓨터 등에 접목시킨 사례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많은 테크기업들이 수많은 M&A를 단행하는 이유도 외부의 우수한 기술을 수혈하려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외부기술 수혈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한 경우, '승자의 저주'에서처럼 모기업이 흔들리기도 한다.)

NIH와 반대되는 현상도 목격하게 된다. 이름하여 -- 그냥 이름 붙임 -- NEH (Not Exist Here) 신드롬이다. NIH가 우리가 개발한 것이 아니야라는 의미라면, NEH는 우리 중에는 없을 거야를 의미한다. 설마 우리 중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또는 기술이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내부의 역량이나 보유하는 기술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외부에 잘 포장된 기술이나 서비스를 보면 그냥 '저 회사/서비스 인수하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것이다. NIH가 우월주의 및 배타주의 결과라면, NEH는 열등주의나 사대주의의 결과인 듯하다.

NEH를 잘 극복한 (?) 사례도 애플에 있다. 1997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 당시 애플의 디자인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외부에 아웃소싱 또는 외부 인력을 수혈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 잘 알려졌듯이 -- 조니 아이브가 스티브 잡스와 독대한 이후에 잡스는 아이브를 신뢰했고, 그 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제품들이 아이브 또는 그의 팀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만약 잡스가 아이브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지금 우리는 조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많은 경우 조직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부수적인 기술이나 기능은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것이 더 낫다. 이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부의 사람이나 기술,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로 무턱대로 외부의 기술/인재를 영입했을 때는, 단기적으로 물리적으로 결합은 가능하지만 화학적 결합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부기술이 내부의 것보다 열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비슷한 기술의 개발에 중복으로 투자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파벌의 형성이나 정치의 시작이 되는 경우도 있다.

NEH를 단순히 내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 평가하지 못한 경영진/실무진들의 오류로 볼 수는 없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또는 직접 상사의) 책임이다. 몇몇 기업들이 시행하는 80/20과 같이 제도적으로 다양한 역략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게지만, 적어도 당장 맡은 업무와의 연관성 또는 시급성만을 따져서 새로운 역량이 개발을 막는 분위기부터 제거되어야 한다. 주변에 보면 그냥 가볍게 (혼자서 또는 몇이 팀을 이뤄서) 시도해보고 결과를 내보면 되는 일들이 많은데도, 그것이 정식 프로세스를 통해서 상부의 컨펌을 받아야지 시작하려는 것도 종종 본다. 개인의 성향 문제일 수도 있지만, 조직의 분위기 문제일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의 왕성한 이유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많은 개인들이 모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공/실패를 떠나서 모두가 창업을 해보거나 해보려는 주변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가 없다.

최근 PR시리즈라고 해서 추천 시스템에 대해서 글을 적기 시작한 것도 지금 회사 안에도 추천 시스템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라고 나 스스로를 알리려는 목적도 있다. 짧게는 2~3주에서 길어도 몇 달이면 바로 만들어서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서비스에 대해서도 당장의 과시적 성과를 위해서 외부 기술을 사오려는 경우도 보게 되고 (그런 경우, 내부 개발보다 더 오랜 시간과 리소스가 투입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른 회사에서는 (내부에서 이미 하고 있는) 이런이런 기술/서비스를 하고 있더라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옛말에 '지피지기'라고 했는데... 그냥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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