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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두개의 방

TV 시청을 최대한 자제하려 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주기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난다. 최근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인 '나 혼자 산다'를 즐겨보기 시작했다. 제주는 지역방송 때문에 본방사수는 못하고 다음날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한다. 몇 주 전에 이성재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간 에피소드와 지난 주 노홍철의 군대동기들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

이성재씨는 극중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현실로 회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했고, 그래서 정신과 의사분이 의식 속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두라는 조언을 해줬다. 즉,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방을 만들어서 촬영 중에는 그 방에 들어가지만, 촬영이 끝난 이후에는 바로 방을 빠져나와 원래 자아의 방으로 돌아가라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지난 주 노홍철 편에서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인상깊었다. 보통 노래방에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맞춰서 춤도 추고 다른 여러 신나는 일을 벌리는 것을 지레 짐작한다.

최근에 스스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다. 일을 통해서 보상받으려는 성향이 크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여러 면에서 일에서 재미를 얻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같기도 하고, 그래서 주변과의 관계에도 조금 균열이 벌어진 것같다. 내가 일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에서 보여주듯이, 나는 일이라는 공적인 영역과 개인 생활이라는 사적인 영역의 구분이 별로 뚜렷하지가 않다.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생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늘 공부를 해야하는 존재이고, 대학교를 거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도 별로 사적인 영역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연스레 이어진 것같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편하게 놀면서 일을 하고, 또 퇴근 후나 주말에는 집에서 회사의 일을 걱정하면서 지낸다. 회사나 공식적인 나를 위한 방과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방을 따로 만들어두고 자유자재로 왔다갔다할 수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이 굳어진 것은 노홍철의 노래방 에피소드를 본 후였다. 얼마 전에 직장 동료들과 노래방에 간 적이 있는데, 그들이 즐겁게 춤추고 즐기는 모습을 봤다. 그들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서 나도 동참해야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그날 이후로 그 이야기가 계속 회자되는 것이 불편/두렵기 때문에 굳이 동참하지는 않았다. 내가 여러 상황에 대한 각각의 방을 만들어서 상황에 맞게 페르소나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때의 분위기도 살려주면서 나중에 내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순간의 내 모습이 다른 곳에서 회자/뒷담화되는 것이 불편해서 미연에 그런 것을 막으려는 방어기재가 작용한다. 내 마음 속에 회사방, 사생활방, 즐기는 방, 친구를 위한 방, 연인을 위한 방, 가족을 위한 방 등의 다양한 방을 만들어서 상황에 맞게 그 방을 취할 수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더 자상해질 수도 있고, 회사나 모임에서 더 유익해질 수도 있고, 또 개인의 삶에서는 더 차분해질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모든 상황들을 하나의 방에 몰아넣어서 회사에서의 우울한 기분을 집에까지 가져오게 되고, 또 가정사나 개인사의 문제를 회사에서 걱정을 하게 되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같다. 어렵겠지만 마음 속에 작은 다른 방을 하나 더 만들어보는 훈련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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