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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중간의 증발

중간에 위치한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된 것같다. 산업화 이후 효율적인 경영/관리라는 명목으로 탑다운 형태의 위계구조가 생겨났다. 견고할 것같은 피라미드는 탈산업화 또는 정보화라는 명목으로 수평구조로 바뀌었다. 이때도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다운사이징이나 리스트럭쳐링이 등장했다. 경영학 책에는 수평구조의 다양한 장점들이 나열되기 시작했고, 마치 모든 곳에서 적합한 구조인양 소개되었다. 남들이 좋다면 다 따라하는 대한민국도 수평화 바람이 일었다. 대한민국의 수평화는 최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중간 관리자들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수직 구조에서 중간관리자들은 관료화라던가 더딘 의사결정 등의 명확한 단점들이 있었다. 그런 단점들이 부각되니 그들이 가졌던 조직을 연결해주고 케어해주는 그런 장점들이 보이질 않았다. 이론은 좋은데 실기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막 던졌던 것이 대한민국이 수평화였고, 그러면서 중간층이 사라졌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이미 수평화 바람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누구나 평등한 수평구조가 감투인마냥 자랑하는 것도 들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어쨌든 형태 상으로는 수평구조의 말단 노드에 들어왔다. 그러고 몇년이 흐르니 또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다. 구조상으로 중간 관리자는 없으니, 이번에는 경력상으로 중간에 위치한 -- 소위 시니어라 불리는 -- 사람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수평구조에서 위쪽에 자리는 한정되니 올라가고 싶어도 올라갈 수도 없고, 직급도 없으니 직급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이제 15년 정도된 회사에서 느낌상 10년 이상 회사생활을 한 사람이 5~10년된 사람보다 더 많은 것같다. 물론 2~3년 미만인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위는 많고 중간은 없고 아래는 우글우글거리는 기형의 조직이 되어간다. 창업공신들은 그에 맞는 대접을 받았지만, 실상 회사를 키운 사람들은 이제 슬슬히 제 살 길을 찾아서 쫓기듯 회사를 나가고 있다. 중간의 경험과 노하우는 그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나 중간경력자가 빠지는 것도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 중간이 없어지는 것같다. 대표적으로 중산층이 없어졌다는 말을 점점더 많이 듣기 시작했다. 연봉 수억을 받는 직장인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도 종종 듣고, 청담동 슈퍼리치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지만, 그것은 상위 10%, 1%에 대한 신기루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하루를 연명하고 내일을 걱정하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하위층일 뿐이다. 최근 갑질이라는 말을 듣고, 을의 애환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을도 아닌 '계'일 뿐이다. 사회의 발전이 하향 평준화라는 그것이 발전인 건가? 중도도 없어졌다. 아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중도다. 그러나 지금은 극단에 있는 사람만 대접을 받고 있다. 극우의 목소리가 커지고 극좌의 발알도 눈물겹다. 기실 우리는 모두 그냥 중간의 어디쯤 위치해있는데...

이 세상에서 중간은 대접을 못 받는 것같다.

(2013.05.14 작성 / 2013.05.22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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