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몇 해 전에 선배도 제주도에 잠시 살았었는데 그때는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주에 일이 있어서 내려온 김에 잠시 얼굴을 봤습니다. 30분 정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선배가 다른 곳에 볼 일이 있어서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배웅 인사를 했는데, 선배는 '우리 매일 보잖아'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우리 페이스북 친군데..'라며 말을 끝냈습니다. 그렇게 선배는 떠났지만 마지막 말은 계속 머리 속에 남습니다.
기차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인간들의 물리적 이동 거리가 길어졌습니다. 가능한 이동거리는 길어졌다지만 그래도 자주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전신이 발달하고 전화가 보급되면서 적어도 목소리를 통한 심리적 거리는 단축되었습니다. 한동안 미국에 머물면서도 장거리 국제전화 (당시 인터넷 전화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임)를 통해서 일주일에 한번꼴로 한국에 전화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심리적 거리가 더 짧아졌습니다. 페이스북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릴 수도 있고, 페이스타임과 같이 화상연결도 쉽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떨어져있지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있어서 또 그렇게 물리적으로 언젠가는 만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이미 페이스북을 통한 연결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나름 인터넷 회사에 다니고 IT트렌드에서 빠싹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고에 빠져있나 봅니다.
이렇게 떨어져있는 가족, 친지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전화와 인터넷의 최대 장점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목소리와 디지털 신호의 교환으로 직접 마주보며 얘기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제주도에 나와있어서 교통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공향 집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월요일 저녁에 짧은 전화통화가 유일합니다. 그렇게 연결되어있지만 접촉은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대학을 진학하면서 학교가 달라져서 이제 연락이 끊긴지 오랩니다. 대학 친구들도 모두 각자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각자의 가정을 꾸려서 만날 기회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인터넷에 가끔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 이상의 연결은 끊어진지 오랩니다. 가끔 결혼 등의 소식만 이메일로 받습니다. 카톡 대화방에서 많은 수다가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는 카톡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수다에도 참석한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옛 친구들은 그저 인터넷에서 연결되고, 저는 저 나름대로 현재 생활에서 부대끼는 동료들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매일 보잖아'라는 그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 참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또 세상 왜 이렇게 각박해졌지라는 이중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미 여러 기사나 칼럼들이 기술을 통한 연결과 기술을 통한 단절을 얘기합니다. 저도 그 혜택과 피해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맞아요. 우리 매일 보잖아요. 그래도 우리 좀 더 자주 만나요."
(2013.03.21 작성 / 2013.03.x29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