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빈스방거의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를 읽으면 경제학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동기부여 방식의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목표와 성과의 정량화, 경쟁유도, 그리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에 따른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경쟁, 정량화, 인센티브 등을 고안해낸 경제학자들이 무능해서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라, 이것들에 적응한 사람들의 창의력에 의한 제도적 장치의 무력화로 보는 것이 더 맞다. 구체적인 내용과 사례는 책을 직접 읽어보면 된다. 오늘은 최근 TV에 방영되는 한 예능 프로그램이 위의 사례를 잘 보여줘서 다뤄볼까 한다.
1박2일의 부흥을 일으켰던 나영석PD가 파일럿을 맡고 (지금은 퇴사해서 후임으로 넘겨진 상태) 개콘의 여섯명의 개그맨들이 등장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있다. 바로 토요일밤 KBS2에 방영되는 '인간의 조건'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핸드폰, TV 등 최신 디지털 제품을 끊고 일주일 간 살아가는 에피소드를 다뤘고, 지금은 쓰레기 없이 생활하기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이번 에피소드의 취지는 분명하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환경오염, 생태계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막기 위한 생활 속의 실천인 음식물 쓰레기 및 1회용 제품을 줄이자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디지털끊기와 쓰레기줄이기는 재미있는 소재이고, 그런 환경에서 여섯 남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나름 재미를 준다. 그런데 쓰레기편에서 매일 밤마다 멤버 각자가 하루에 생산해낸 쓰레기 무게로 일등과 꼴찌를 정해서 벌칙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쓰레기를 줄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쓰레기량/무게로 평가할 수 밖에 없고, 그런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페널티)를 줌으로써 더욱 실천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동기이론을 그대로 따온 발상이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는 동감하지만, 그것의 결과를 쓰레기무게로 정량화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물기가 묻은 쓰레기가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헤어드라이기나 다리미로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무게를 조금 줄이기 위해서 더 많은 불필요하게 전기를 사용/낭비하는 것이다. 플라스틱병이나 종이 등의 재활용 쓰레기가 나왔을 때는 이것을 가지고 시계도 만들고 저금통도 만들고 다양한 재활용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그런데 매일 만들어지는 그런 폐품으로 매번 저금통을 만들면 또 불필요한 저금통들만 쌓여갈 것이고, 결국 사용되지 않는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재활용품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노력이나 물감 등의 부가자원들이 더 들어가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낸 플라스틱 화분도 결국은 쓰레기로 처리될 것이 분명하다. 필요에 의한 재활용이 아니라 재활용을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쓰레기량에 따른 이센티브/페널티를 부여하기 때문에 과도한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제 (2/16)는 허경환씨가 바나나껍질을 그냥 버린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이런 경쟁에 따른 기만행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가 있다. 재활용을 위해서 세재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세척함으로써 발생하는 생활폐수는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굳이 불필요한 촬용에 소요되는 전기나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는 장치들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냥 웃고 즐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침투한 이런 목표 및 성과의 정량화,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페널티, 그리고 경쟁에 따른 부작용의 모습을 본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이와 비슷한 것을 자주 경험한다. 모든 성과를 정량화해서 직원들을 쪼으는 상사들도 있고, 정량화된 수치에 따라서 인사고과가 매겨지고 또 상대평가를 통해서 팀/사내 동료가 아닌 경쟁자를 양산해내는 것 등의 부작용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불가피함은 잘 알지만 그럴 때일수록 창의력이 필요하다.
(2013.02.17 작성 / 2013.02.26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