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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베르테르 효과에 모든 책임이 있나?

지난 주말에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야구팬들에게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선수로, 연예팬들에게는 고 최진실씨의 전남편으로 잘 알려진 조성민씨의 사망소식입니다. 사망원인은 바로 자살입니다. 임선동 박찬호와 함께 기대를 모았던 92학번 투수 3인방이었던 그의 굴곡진 인생이 -- 야구팬은 아니지만 -- 여전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런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베르테르 효과'입니다.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이 자살하면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죽는 모방자살이 급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이 권총으로 자살하는데, 당시 유럽에서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유행처럼 변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베르테르 효과입니다.

최근 자살 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어김없이 베르테르 효과가 각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이슈어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사들도 마구 쏟아집니다. 제가 이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바로 '유명인 1인 자살, 평균 600명 베르테르 효과'라는 글을 본 직후입니다. 기사 내용은 제목과 같이 베르테르 효과는 평균 600명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에, 모방자살을 막기 위해서 유명인의 자살과 관련된 너무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 자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틀린 기사는 아니지만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유명인의 자살에 영향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사실이고, 그러니 내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에 만연해버린 자살, 그리고 날로 증가하는 자살율을 단지 베르테르 효과로만 모두 치부해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특정 유명인의 그것이, 그것을 결심한 다른 이들을 행동에 옮기도록 자극한 것은 맞지만, 근본적으로 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던 스타가 자살했기 때문에 나도 따라서 죽는다는 단순 감정대응식은 아닐 것입니다. 간혹 그 소식에 충격을 받아서 베르테르의 추종자들과 같이 행동에 옮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의 죽음 이전부터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고, 단지 유명인이 취한 방법을 모방한 것뿐입니다.

이 사회에 만연한 자살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와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단지 모든 자살을 베르테르 효과로만 치부해버리는 기사는 너무 안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르테르 효과가 무서우면 유명인들이 제발 자살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어야 했습니다. 원인은 해결하지 못하면서 결과만 없애겠다는 늘 이런 식입니다. 왜 이 사회에 전염병처럼 우울증이 번져가고 있으며, 그 최후는 죽음이어야 합니까?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악순환 고리... 이를 어찌해야할까요?

모든 문제를 경제적인 이유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증가한 자살률의 상당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불안정에서 기인합니다. 모두 같이 어렵게 살면 괜찮지만,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무섭습니다. 극단적인 양극화/불평등이 약자들을 더욱더 벼랑 끝으로 몰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 읽은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가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공화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민주당 정권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인 및 자살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설명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새누리당 성향의 (미국) 공화당은 모든 경제/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높습니다. 경제적 약자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약자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고, 그런 경제적 문제가 또 다른 폭력이나 범죄 등의 사회문제가 됩니다. 그런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방식도 '범죄와의 전쟁'식으로 강압적입니다. 그렇게 가중되는 압박은 그들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그래서 약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것을 선택합니다.

지난 대선 이후에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 들려옵니다. 그런데 그 죽음 앞에서 집권당/당선인이 보여준 행동은 길리건의 책에서 보여준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약자를 보듬고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립니다. '노동자의 죽음이 당선인과 무슨 상관이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참고. 황우여, 한광옥의 노동자 조문 기사하단 참조) 부모와 자식과 같이, 대통령에게 그들 노동자도 자신의 국민입니다. 그 무리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여성리더십은 어쩌면 국민들을 보듬어주는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경제적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찍어누르고 압박하는 모습을 앞으로 5년동안 본다는 것은 절망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안타까운 죽음이 많았었는데, 향후 5년 동안 더 심화될 것같아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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