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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노익상 작가님과 함께 한 특별한 하루

오늘 제주 다음의 사진동호회 <다사인>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후원하여 기업의 동호회와 함께 만드는 <문화예술 명예교사와 함께 하는 특별한 하루>라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특별한 하루>는 기업의 문화/예술관련 동호회에서 진흥원에 신청을 하면 각계의 명예교사님을 일일 멘토로 모시고 강연도 하고 함께 문화활동도 체험하는 행사입니다. 저는 사진동호회 회원은 아니지만, 다사인에서 어렵게 준비한 행사라서 참관/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진동호회이므로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님인 노익상님을 모시고 '다큐멘터리, 그 힘있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사진을 통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재미있는 강연을 해주셨고, 오후에는 함께 제주 조천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각자 주제/스토리를 정해서 사진을 찍고, 또 7장씩 모아서 리뷰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익상 선생님은 다큐멘터리, 즉 스토리를 만들고 보여주고 들려주시는 분이어서 말을 참 맛깔나게해주셔서 하루종일 웃어면서 보낸 것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진이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일상에서 아름다운 느낌 또는 이미지만 담기에 바빴는데, 그런 단순한 이미지 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관점과 생각을 담아서 또 그것을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혜는 지식을 내재화한 결과이고, 그 과정의 스토리를 발굴해서 보여주는 것이 다큐멘터리다'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사진을 통해서 그런 작업을 하셨고 또 그 경험을 우리에게 전수해주고 싶으셨습니다. 3명의 사진동호회분의 사진들을 보면서 다양한 특징이나 고칠점 등도 코치해주셨습니다.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 조천읍으로 이동했습니다. 시간이 길지가 않아서 1시간 30분정도 짧게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천읍/해안가는 유홍준교수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오는 부분이라 언젠가는 한 번 길을 따라 걸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곳인데, 우연히 같은 곳을 가게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연북정, 용천수와 해안 야외 목용탕, 망대 등 책에서만 읽었던 것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사진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올레 18코스에도 속한 지역이지만, 사실 조첩읍 일대는 그리 특별한 관광지는 아닙니다. 연북정 등의 역사유적지도 있고, 항일만세를 조직한 분들의 생가도 있지만, 높아진 관광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조금 허술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걷다보면 제주의 옛모습을 볼 수가 있고 또 변해가는 제주의 모습에 아쉬움을 감추기도 어렵습니다. 집과 길은 있지만 사람은 늙고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픕니다.

1시간 30분의 자유출사를 마치고 다시 다음스페이스로 돌아와서 각자의 사진 중에서 7장씩 골라서 발표를 하고 또 노익상 선생님께서 코멘트를 붙여주는 형식으로 리뷰작업을 했습니다. 이제껏 그냥 사진을 찍는 것만 제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을 골라내고 또 스토리를 붙이고 그것을 서로에게 공유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곳을 바라봤지만 제 카메라에는 담지 못했던 많은 스쳐갔던 풍경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또 그런 장면들을 찍고 골라낸 각자의 사연/스토리도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사물/풍경인줄 알았는데 그것을 한폭의 사진으로 담고 또 그것에 의미와 사연을 붙이니 너무 멋진 다큐멘터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제주 생활의 어려움이나 현재의 처지를 한탄 아닌 한탄을 사진으로 표현한 동료들의 이야기는 -- 재미있게 표현해서 웃으며 들었지만 --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생님도 계속 동료, 동지, 전우라는 말을 계속 되뇌여주셨는데 그 의미는 그런 경험을 함께 한 이들만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했던 동료의 아픔을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했고, 또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나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된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물을 사진에 담지만 모든 사진은 다릅니다. 이것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각자의 관점과 스토리가 덧붙여지닌 사진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도 하게 됩니다.

아래에는 제가 뽑은 7장의 사진입니다. 여러 사진을 찍었지만 저는 처음부터 제주의 돌담을 주제로 사진을 찍을 요령이었고, 또 그 속에 아름다움보다는 아픔을 담고 싶었습니다. 잘 찍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선택했습니다. 돌담을 테마로 삼은 것은 제가 제주의 돌담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돌담은 큰 바람은 막아주지만 또 작은 바람은 그대로 통과시켜줍니다. 죽은 콘크리트벽이 아닌 살아있는 돌담이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른 분들의 사진에도 담겼지만 돌담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는 그냥 남깁니다.

제가 돌담을 좋아하고 매번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일단 돌담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은 죽은 것같지만 그것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멍숭숭한 돌담에 담쟁이가 기어올라가는 모습은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조천 해안가에 있는 망대에 올랐습니다. 책에서도 망대 위에서 보면 가장 잘 보인다기에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보는 돌담이 아니라 위에서 보는 돌담도 찍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무서워서 발은 멀리 안쪽에 두고 간신히 사진 한장 남깁니다.

처음에는 가운데 있는 조개껍질들만 찍으려 했습니다. 선사시대의 조개무덤 생각도 났습니다. 그런데 옆에 함께 놓여있는 생활쓰레기도 일부러 함께 담았습니다. 1000년 뒤에 오늘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로써의 가치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의 곳곳이 이런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여느 때같으면 전혀 사진에 담지 않았을테지만, 오늘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돌담 사이에 버려진 쓰레기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치면서 귀찮아서 아무 생각없이 버린 쓰레기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올해 초에 이런 쓰레기를 보면서 정화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 말미에 정화작업에 한번 참여는 했는데, 그런 모임을 주기적으로 계속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제주의 곳곳에 이런 중장비들의 모습을 너무 쉽게 목격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싶은 저로써는 조금 흉물입니다. 그런데 제가 집을 짓는다면 이런 중장비의 힘을 또 빌리겠지요? 그리고 제주 돌담을 만들기 위해서도 엄청난 크기의 바위를 부수기 위해서 또 이런 중장비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는 것도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최근에 지은 집에도 담은 돌담입니다. 그리고 오전 강연 중에 제주의 땅은 모두 검다는 선생님의 말씀과 또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육지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통 잔디와 시멘트를 덮씌운다는 말씀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남아 사진으로 남깁니다.

오늘의 히트상품은 바로 '페루의 여인'입니다. 선생님께서 빨간모자와 머리를 두갈레로 따은 모습을 보시면서 계속 페루여인이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연북정의 돌담 옆을 걷고 있는 그 여인을 순간적으로 사진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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