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예상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에 '조심'이라고 붙여있는 곳에 머리를 부딪혀서 다친 첫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다음스페이스.1으로 이사한지 한달반이나 지나서 발생했기 때문에 예상보다는 늦은 사상자입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래의 사진과 같이 '조심'이라는 경고문구를 붙여놓았습니다. 아래의 조형물/공간은 1층로비에서 illy (커피숍)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높이가 약 160~170cm정도라서 언젠가는 지나던 사람이 부딪힐 것을 예상했습니다. 조형물의 끝에 얇은 플라스틱을 덧 씌워놓았지만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예상했던 그러나 자신만은 아니길 바라던 그 일이 어제 처음부으로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또 한번 디자이너/디자인의 책임감 또는 중요성을 확인했습니다.
간단한 악세사리 디자인이 아닌 건축/건물 디자인의 경우 단순한 심미만을 쫓을 수가 없습니다. 그 건물의 안전이라 구조적 견고성도 디자인이 녹아들어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안락과 편안함도 디자인이 제공해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스페이스.1의 디자인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심미적인 아름다움은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겉보기 아름다움에도 별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제가 평가할 수 없지만, 생활의 편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저 낙제점수를 주는 것도 귀찮습니다. 설계/설치에 문제가 있었다면 미리 아래와 같은 경고문구를 붙여놓거나 후속작업을 통해서 안전을 보장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욕먹을 일입니다.
이쯤에서 스티브 잡스가 밝힌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2003년도에 뉴욕타임스와의 이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내가 생각하는/추구하는) 디자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보여지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심미만을 쫓던 제게 공학적 견고함과 친밀함, 그리고 디테일에 더 신경을 쓰도록 만들어줬던 이 문구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That’s not what we think design is. It’s not just what it looks like and feels like. Design is how it works.
- New York Times, The Guts of a New Machine, 2003
애플에서 맥킨토시를 처음 만들 때 일화도 떠오릅니다. (당시 개발자의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지만) 맥킨토시의 드로잉 소프트웨어 (맥드로?)에 처음으로 rounded-rectangle을 넣던 그 일화가 떠오릅니다. 물론 단순히 보여지는 소프트웨어에 끝이 둥근 사각형 드로잉 펑션을 추가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디자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실물들도 디자인에 따라서 끝이 모나지 않고 매끄럽게 마감처리가 될 것입니다. 당시에 잡스는 보여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런 디자인이 실제 제품이 되었을 때의 모습도 고민했던 것같습니다. 모든 제품이 그냥 사격형 모서리를 가지게 된다면 이후에 얼마나 많은 (심각한) 부상이 발생했을지 생각하기도 힘듭니다.
지금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라는 책을 읽을려고 계획 중입니다. 책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종종 심플/단순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그냥 단순한 것이 좋다는 틀에 박힌 미신이 존재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그 단순함을 얻기 위해서 내부에 포함된 엄청난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낫지 못합니다. 보기좋고 매끄러운 단순한 디자인 이면에 숨어있는 복잡함에 대한 고민없이 그냥 보기 좋으니깐 됐다 식의 디자인은 참 역겹습니다. 위의 구조물과 같이...
일전에 아이리버 MP3플레이어를 만들 때의 일화도 갑자기 생각납니다. 당시 애플의 iPod 성공에 자극을 받은 아이리버에서도 자신들의 MP3 플레이어를 보기 좋은 아름답게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나 봅니다. 그래서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고 예쁜 제품을 먼저 디자인을 해놓고 그 디자인 규격에 맞도록 모든 내부 부품을 새롭게 만들어라라고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자신들이 얼마나 디자인에 신경을 쓰느냐를 알려주기 위해서 위의 일화를 자랑스럽게 얘기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단순함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함과 디테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리버는 그냥 그런 제품으로 IT역사박물관에나 존재하는 제품으로 남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냥 보여주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애플이 'Form Follows Function'을 무시하고 'Function Follows Form'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시켰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앞서 보여준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처럼 애플은 Form Follows Function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Form/디자인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추가 (2012.05.16) 애플의 테슬러가 말한 테슬러의 복잡함 보전의 법칙'이라 명명된 것이 있습니다. (참고. The Law of conservation of complexity) "시스템의 전체적인 복잡도는 항상 동일하다." 사용자의 이용이 단순해지면 나머지 부분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즉, 이면에서 설계자가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서로가 상쇄된다는 의미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테슬러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복잡함의 정도, 즉 복잡함의 하한선이 존재한다. 이때 던져야 할 질문은 이 복잡함을 누가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사용자인가, 아니면 개발자인가?" <심플은 정담은 아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