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에는 꽃천지입니다. 유채꽃도 만개했지만, 제주 곳곳에 산재한 벚꽃도 볼만합니다. 어제와 오늘은 제주도 종합운동장 주변에서 제주벚꽃축제도 진행중입니다. 5년째 제주에 거주하면서 아직까지 봄에 꽃사진을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어서 멀지도 않은 곳이라 그냥 가볍게 꽃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제주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은 오일장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많은 시민들이 벌써 벚꽃축제에 참여해서 인산인해 그리고 차산차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종합운동장의 벚꽃축제장보다는 두블럭 북쪽에 있는 전농로에서 사진을 찍을 요량이었기에 만개한 종합운동장의 벚꽃은 뒤로하고 그냥 전농로로 이동했습니다.
전농로의 벚꽃거리. 벚꽃축제 기간 (토/일)에는 차량을 통제해서 안전하게 벚꽃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전농로 이동하면서 그냥 얼핏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년 피는 벚꽃인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나왔을까? 조금만 방심하면 접촉사고도 많이 날 것같다. 그냥 사람끼리 부딪히면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냥 사과만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차끼리 부딪히면 차는 쉽게 긁히거나 파손이 될텐데, 언제쯤이면 인체와 같은 소프트 외관이 가능할까? 등의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서 왜 매년 피고 지는 꽃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까? 이유는 간단하겠죠. 꽃이 만개한 시기는 길면 일주일 정도라서 지금 보지 못하면 또 1년은 더 기다려야 하고, 꽃이 피는 장소도 제한되어있으니 그곳으로 모일 수 밖에 없고 (참고로, 제주도에서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은 종합운동장/보건소주변, 전농로, 제주대학교입구, 항몽유적지 부근, 한림공원 등이 있습니다. 서귀포쪽은...?), 또 오늘과 같은 화창한 주말에 가족/연인과 함께 외출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직무유기일테니...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벚꽃구경을 하러 나왔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벚꽃을 보겠다는 생각이 일종의 '욕망'이라 말할 수 있을테고, 그런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온 것이 축제장의 혼잡을 가중시키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이 모여서 분비는 모습을 보면서 '욕망과 욕망의 충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특별히 글을 적을거리도 없었지만 '욕망과 욕망의 충돌'이라는 표현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적고 있습니다. 사람은 욕망의 본체이고, 사회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충돌은 곧 욕망과 욕망의 충돌입니다. 혼잡한 거리에서 먼저 가겠다고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는 것도 그런 욕망충돌의 현상을 보여줄테고, 친구 모임에서 주문한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것도 일종의 욕망의 충돌이고, 인센티브라는 명목 아래 서로 옆자리에 앉은 동료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도 일종의 욕망의 충돌을 부추기는 것일테고, 스포츠 경기에서 점수를 기록하는 것이나 한정된 마켓에서 마켓쉐어를 점하려는 것도 일종의 욕망의 충돌일테고... 사회가 욕망의 네트워크로 이뤄졌기에, 그 사회/회사에서는 언제나 욕망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는 듯합니다.
욕망과 욕망의 충돌이라는 표현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비협력게임 Non-cooperative game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협력게임이 더 큰 파이 optimal solution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현실에서는 내쉬균형 Nash Equilibrium이라는 비최적 해, 그러나 현실에서는 최적의 해,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협력게임으로 바꿀 방법은 없는 걸까요? 조금만 양보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런 협력게암도 가능할 것같지만 현실에서는 녹록치 않습니다. 개인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사회 전체에게는 도움이 덜 되는 이런 비협력게임...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그리고 지금 4.11 총선 유세가 한참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유세차량도 옵니다. 즐거운 꽃놀이를 기대했는데 유세차량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굉음은 마음을 언짢게 만듭니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이 선거가 대표적인 욕망의 충돌이고, 비협력게임의 진수입니다. 어차피 한명만 선택되고, 스스로 열세임을 잘 알면서도 선거전에 뛰어듭니다. 물론 현재 선거법상 일정비율 이상 득표하면 법정한도액 내에서 선거자금을 되돌려줍니다. 개인적으로 별로 손해볼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도 조금은 씁쓸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라도 선거에서 돈을 쓴다면 또 관련 산업에는 돈이 유통되기 때문에 더 큰 차원에서는 좋은 면이 있는 것도 같지만, 또 그런 돈이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의 이득을 위해서 전체가 희생해야하는가?라는 의문도 듭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선거에서 지더라도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후보들과 공약이 꾸준히 제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인 토마스 L. 프리드먼의 <미국쇠망론>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