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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사구려 인생 BE OR NOT

 한동안 글을 적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는 것은 떠나는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적고 싶었던 글입니다. 막상 모니터 앞에 앉으면 차마 글을 이어갈 수 없었던 주제입니다. 제 주제를 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떠나는 이가 보여줬던 그 아름다움에 대한 조금의 경외의 표시로 이 글을 완성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적습니다. 논리는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냥 '괜찮은 것' 그냥 '되는 것' 그냥 그런 것들에 만족하고 있다. 완벽한 것은 비싸고 얻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냥 그저그런 사구려에 만족해버립니다. 사진이 좋은 예가 됩니다. 예전 필름카메라를 들고다니던 시절 셔트 한번 한번이 망썰였습니다. 24장, 36장의 한계 내에서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로 넘어오면서 잘 (정성드려) 찍는 것이 미득이 아니라, 많이 찍는 것이 미득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순간 최고의 장면이 아니라, 그냥 그런 괜찮은 장면을 얻으면 만족해버립니다. 그나마 DSLR 시대에는 조금 더 나았습니다. 여러 장의 스틸들 중에서 그래도 최고의 순간을 선택하는 장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고, 포토샵 등의 사진보정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찍는 순간에 놓쳐버렸던 것들을 재생하려는 많은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똑딱이와 폰카메라가 대세가 되면서 그런 보정의 노력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최근의 스마트폰 앱들은 미리 지정된 필터기능을 사용해서 대강 찍고 대강 공유해버립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 크기마저도 612 x 612로 고정시켜버립니다. 우리는 그런 사진에 만족합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것보다는 순간의 포착과 공유에 만족합니다. 왜 그런 사진을 찍었는가에 대한 사진가의 관점/영혼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일상의 순간만이 스틸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사구려에 만족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완벽한 제철음식보다는 몇일 몇주 몇달 동안 냉장고 속에서 묶혀졌던 음식에 만족합니다. 물론 김치나 젓갈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음식들은 몇 달의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숙성의 시간이었지, 지금의 냉장고 속에서 연명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밭에서 갓 따낸 채소보다는 냉장고 속의 채소에 더 익숙해져있습니다. 갓 안친 밥보다는 찰기가 없어진 밥통의 밥이나 전자레인지 속에서 부활하는 햇반에 만족합니다. 깊이 우려낸 육수보다는 조미료 몇 수푼에 우리의 입맛을 양보해버렸습니다. 옷도 그렇습니다. 한땀한땀 정성들인 옷보다는 그냥 몇 번 입고 헤지면 버리는 그런 옷에 만족합니다. 패션이나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철지난 옷은 장농 속에서 몇 년이 묶히고 어느 날 의류수거함으로 향합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100년 200년을 버티는 (지속가능한) 집보다는 1~20년마다 리모델리을 해야하는 그런 곳이 우리의 안식처가 된 지 오랩니다. (요즘 제가 전원주택 구입/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어지는 집들은 철근콘크리트의 단단한 구조의 집보다는 그냥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얼기설기 붙여서 만든, 그래서 쉽게 부숴버릴 수가 있는 집들이 많이늘어납니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많은 서비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회사 내에서 서비스 개발에 조금의 기여를 하고 있지만, 매번 완벽한 분석의 결과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럴듯한 결과를 제공하는 단계에서 마무리를 짓는 순간이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은 집단지성이라는 미명 아래, '그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최고의 것이다'라는 철학 아래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과 분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냥 쉽게 사서 버리는 제품, 그냥 심심할 때 접속해서 짧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만족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그런 제품/서비스의 종류는 늘어만 갑니다. 최근에 오픈한 서비스들은 사용자들이 초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오랜 기획을 거쳐서 제대로된 컨셉을 잡아서 서비스/솔루션을 만들기 보다는 그냥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기능을 추가하거나 디자인만을 바꿔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서비스들이 늘어만 갑니다. 그런데, 그런 것에 우리는 또 쉽게 만족해 버립니다. 이 시대는 분명 사구려시대이고, 우리는 사구려 세계에 사는 사구려 세대입니다. 그러는 우리는 우리가 쉽게 쓰고 버리는 그런 제품/서비스마냥 쉽게 잊혀지는 그런 인생을 살다가 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사구려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이 실시간 Instant 시대라는 것을 한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 시대에 장인이 사라지고 있음을 한탄하는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방망이 깎는 노인'의 이야기가 아주 까마득한 과거의 일로 기억됩니다. 시대의 장인을 한 명 떠나보내면서 이런 제 느낌을 그냥 묻혀둘 수는 없었습니다.

 We have Jobs no longer.

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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