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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심화독서... Reading in Depth

 적을려고 적는 글은 아니다. 그리고 누가 물어봐서 적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나서 적는 것이다. 자랑할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논문이나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입사 후에는 논문/원서는 거의 배제하고 관심분야 번역서들만 읽고 있다. 학교에서 논문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조금 어려운 주제의 글은 3번 정도 읽으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대부분의 논문은 그냥 한두번 읽고 치우지만, 리뷰가 들어온 경우는 3번은 읽게 된다. 처음에는 논문 전체의 흐름과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나의 이해를 넘어서 그냥 읽어나간다 (통독). 두번째는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금 자세히 정독한다. 세번째는 논문의 문제점 및 리뷰평을 적기 위해서 조금 더 디테일에 치중하면서 읽는다. 이렇게 3번 정도 읽으면 웬만한 논문들은 거의 이해하고 내것이 된다. 특정분야의 논문들을 많이 보고 어느 수준에 이르면 한두번만 읽거나 그냥 디테일을 무시한채 전체 구조 및 서론/결론정도만 읽어도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다. 인생 '삼세번'이라는 말이 학문/연구에서도 통하게 되는 것이 재미있다.

 책을 읽을 때는 두번 읽는 경우도 거의 없다. 대부분 번역된 것이어서 그나마 쉽게 이해되는 경우도 많지만, 한번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굳이 붙잡고 더 깊이 읽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책들은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의 책이 아닌 경우가 많고, 그냥 주위의 추천을 받거나 호기로 한번 구입해봤는데 내게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철학적인 내용의 책들...) 역으로 쉬운 책의 경우 굳이 두번 읽지 않더라도 이미 대부분을 이해했는데, 굳이 재독할 필요가 없다. 사실 재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용인은 책의 수준이나 경중이 아니라, 읽을 책이 넘쳐난다는데 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매달 6~7권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닌데, 읽은 것을 다시 읽는데 시간을 따로 빼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매달 쏟아지는 신간들이나 꼭 집고 넘어가야할 고전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특정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특정분야의 책들을 주로 읽기 때문에 다른 책들에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굳이 한권의 책에 치중/집중할 이유도 없다. 저자가 같지 않더라도 같은 예시가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많이 읽는 네트워크나 복잡계 관련 책에서 밀그림의 6단계분리 예제나 게임이론 쪽에서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 등의 예제는 이제 그만 읽고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그렇기에 책은 대부분 1회 통독 후에 그냥 책꽂이에 놓아두게 된다.

 그래도,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세번의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지론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단순히 숫자로 3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과정에서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어야할 것같다. 앞서 리뷰논문에서 각 단계에서 다르게 읽는 것과 같다. 독서의 3단계를 그냥 객관화, 주관화, 자기화로 명명하기로 했다.

 먼저 1단계인 객관화 독서는 말그대로 책을 객관적으로 읽는 것이다. 그냥 종이 위에 쓰여진 글자를 그대로 읽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별한 독서 스킬도 필요없다. 정독으로 읽으면 좋겠지만,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냥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만 있는 통독정도로 읽어도 무관할 것같다.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해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보통 일반인들은 이 수준에서 독서를 하는 듯하다. 나도 대부분의 책은 그냥 이렇게 읽고 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지금 머리 속에 남있는 지식이 일천하다.

 두번째 단계인 주관화 독서는 책이 제시하는 팩트/사실을 습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저자를 이해하는 단계다. 저자가 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을까? 저자가 왜 이런 예시를 사용했고, 이런 표현을 사용했고, 이런 구성으로 글을 적었을까?를 이해하는 단계가 주관화 독서다. 책이난 기타 다른 읽을거리에 포함된 팩트는 자세히 보면 별게 아니다. 그냥 한두문장으로 책 전체를 요약할 수도 있는데, 3~400페이지 이상의 책을 쓰게된 저자만의 특별한 사정이 있고, 그런 사정 또는 컨텍스트를 이해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을 주관화 독서라고 명명했다. 통독보다는 정독이 필요한 단계지만, 사실 두번째 읽을 때는 정독이 힘들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보통 제가 블로깅을 할 때, 불필요한 서론을 길게 적는 이유도 이것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내용의 글을 두번 읽을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제가 왜 이런 글을 적는가?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테니, 나 나름대로 내가 왜 이런 글을 적는지를 단 한번만 읽을 독자들에게 구차하게 설명하게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자기화 독서로 명명했습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주제나 팩트를 이해하고, 저자의 상황을 이해했다면 이제 그것들을 책을 읽는 독자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기화'라고 명명했습니다. 학술적인 글을 읽는다면 내 업무/연구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해볼까를 고민할 수도 있고, 자기계발서의 경우 내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액션플랜을 만들어보는 것 등이 자기화입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후속 과정이 생략된다면 독서는 참 돈과 시간만 축내는 가장 비생산적인 활동/취미입니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독서는 해석하고, 이해 (동감)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일상에서 읽는 많은 책이나 기사들은 단 한번만 읽어도 위의 3가지를 동시에 체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 짧은 사설 등에서는 적어도 사실과 주장을 분리시키기 위해서 가끔 두번 이상을 읽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조중동이라 불리는 소설책을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냐 한번 훑어보면 사실과 허구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합니다. 가끔 모두 사실만 나열된 경우에도 왜 이렇게 했을까?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사실은 사실이되 반쪽 사실인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연구자들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만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번 입에 담기 싫은 그 일간지들이 이걸 참 잘 합니다. 또 하나더... 아직 우리나라 책 시장은 외국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양한 이유에서 번역서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간혹 원서 자체의 내용이 어렵기 때문에 두세번을 읽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번역자들이 제대로된 이해없이 마구잡이고 직역해놓은 경우 (때론 자의적으로 의역해놓은 경우가 더 위험하지만)가 많습니다. 우리말이 아닌 단순히 외국어의 한글화를 작업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 아직 많습니다. 참 어이가 없는 경우가... 시간도 없는데, 이런 경우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하나?라는 심각한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다시는 그 책을 잡지 않습니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잘못된 번역가를 만는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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