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동안의 다른 포스팅에서 트위터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했지만, 트위터만을 다룬 포스팅은 한번정도였는 것같습니다. 실제 비공개로 트위터에 관한 2개의 포스팅을 작성중이었지만,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시작할 때의 느낌이 벌써 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 영원히 비공개 포스팅으로 남거나 아니면 다른 이름/주제의 글로 변할 것같습니다. 본 포스팅은 트위터 초보자들이 트위터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적습니다. 그런데, 트위터를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포스팅은 아닙니다. 초보자들을 위한 포스팅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제가 트위터를 쓰면서 느낀 제 감정만을 나열할 것같습니다. 그리고, 본 포스팅의 시초 또한 몇달 전에 트윗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할 것입니다. 당시에 어떤 트윗이었는지 지금은 찾아볼 수 없이, 제 머리 속에만 남아있을 것같습니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저는 분명히 다음과 같은 트윗을 했습니다. "트위터의 3대 자유: 팔로잉, 트위팅, 블로킹" 네, 맞습니다. 본 포스팅은 이상의 세가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으려고 합니다. (** 검색을 해보니 2010년 3월 20일, 오후 8시 58분에 트윗했네요. 해당 트윗 링크)
팔로잉 |
트위터는 참 재미있는 서비스입니다. 한국의 싸이월드나 미국의 페이스북과 같이 일촌/친구와 같이 수평의 관계가 아니라, 권위자와 추종자와 비스무리한 수직 관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이용자들은 싸이의 일촌에 익숙해져서 트위터의 수직관계에 잘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생겨난 현상/문화가 '맞팔로잉'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널 팔로잉했기 때문에, 너도 날 팔로잉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논리죠. 그런데, 저도 왠만하면 맞팔로잉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업홍보트위터나 불순한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맞팔로잉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자신이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제 글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고맙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팔로잉수가 너무 많아서 특별히 짬을 내지 않고는 대부분을 흘러보내게 됩니다. 특히 회사에서는 회사 동료들을 모아놓은 리스트와 테크뉴스계정의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밤 시간에 책을 보지 않는다면 많은 트윗/생각들을 읽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가 맞팔로잉을 하듯이, 누군가 먼저 언팔로잉을 하면 저도 같이 맞언팔로잉을 합니다. 제 얘기에 관심이 없는 이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필요는 없으니깐요. 안 그래도, 제가 귀기울려서 들어야할 목소리들이 많은데, 굳이 나를 떠난 이의 생각까지 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참 이상한 논리죠?) 이야기가 곁으로 샜는데, 트위터에 제대로 적응하고 재미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첫번째는 팔로잉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장황하게 설명한 맞팔로잉도 등떠밀려서 맞팔로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맞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듣고 싶은 이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냥 팔로잉을 하십시오. 사실 저는 이 팔로잉에 참 조심스럽습니다. 맞팔로잉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제 마음 깊은 곳에는 내가 팔로잉을 했는데 상대가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팔로잉을 정리하게 되는 어리석은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런데, 처음 트위터에 접하셨다면 팔로잉을 하는 것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말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팔로잉에 부담이 없듯이 언팔로잉에도 부담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도 상대를 배려해서 매번 언팔로잉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사회학에서 유명한 숫자가 있습니다.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150~200명을 넘어서면 그룹 내에서의 인터랙션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그룹 내에서 세분화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고어텍의 예는 굳이 들지 않겠습니다.) 제가 왜 이 숫자를 말씀드리느냐 하면은, 트위터에서도 팔로잉의 숫자가 100 ~ 200명을 넘어선 순간부터 트위터의 재미에 빠져들게 됩니다. 물론, 소수의 친분 관계가 있는 이들과의 대화에 충실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오픈소셜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셨다면 가능하면 200명 이상을 팔로잉하십시오. 왜 그렇냐 하면, 100명 내외까지는 모든 트윗들을 보게 됩니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밤새 올라온 타임라인을 역트래킹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모든 것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200명이 넘게 되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트윗들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고, 밤새 올라온 것들을 다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부터, 지나간 트윗에 미련을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트윗들에 미련을 버리면, 엄청나게 혼란스러워보이던 트위터에서 질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질서를 보는 순간 트위터의 재미에 빠져들게 됩니다. 모든 것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지혜입니다. 물론, 친분 관계 또는 특별히 검토해야할 분의 글들이라면 별도로 리스트를 만들어서 아니면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서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 트위터의 자유는 팔로잉입니다. 누군가를 쫓는 것에 지나친 두려움을 갖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십시오. 이것이 트위터에서 누리는 첫번째 자유입니다. (팔로잉의 다른 표현은 '듣기'입니다.)
트위팅 |
두번째는 트위팅입니다. 말 그대로 공개 타임라인에 글/생각을 남기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오픈된 공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SN시대 그리고 강력한 검색엔진으로 잘못된 트윗으로 인해서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듯이, 매너없는 트윗이나 나중에 숨기고 싶은 트윗이 아니라면, 타임라인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것에 솔직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지나치게 숨기지 않는 것이 오픈소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방법입니다. 저도 처음에 트위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을 때, 혹시 내가 지나치게 도배를 해서 다른 이들이 날 싫어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 올라오는 앞선 트위터러들의 조언도 하루에 너무 많은 트윗을 하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식의 글들도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1~20개 트윗만하라는 그런 어리석은 교훈에, 스스로 트위터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속박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시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타임라인에 더하는 것이 진정한 트위터의 자유입니다. 물론, 나의 팔로워 중에서 팔로잉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어서, 타임라인이 내 트윗들로 도배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러면 참 민폐지만, 첫번째로 말했듯이 이것은 그 팔로워의 잘못이지, 트윗을 많이한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 팔로잉이 작은 팔로워들에게는 어서 팔로잉 숫자를 200명이상으로 늘려보라고 조언을 해주십시오. 트위터는 소위 마이크로블로그입니다. 블로그는 처음부터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생각과 생활을 웹에 기록을 남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실시간의 특징이 더해졌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생각을 자유롭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트위터에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트윗팅이 트위터에서 누리는 두번째 자유입니다. (트위팅의 다른 표현은 '말하기'입니다.)
블로킹 |
마지막으로 트위터에서 누리는 자유는 블로킹입니다. 블로킹은 이래저래 참 거시기한 기능입니다. 그렇지만 블로킹도 트위터에서 빠질 수는 없는 기능입니다. 블로킹은 보통 스패머들을 막는다거나 아니면 전혀 이상한 사람의 말을 막을 때 사용합니다. 스패머가 아닌데, 제가 블로킹을 한 경우는 현재로써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있습니다.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킬 때 그가 보여준 모습에서 실망했기 때문에, 저만의 무언의 시위였던 것같습니다. 엮으로 저도 몇몇에게서 블로킹을 당했습니다. 트위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유쾌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경우야, 상대방으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경우정도?) 절 블로킹한 한 분은 제가 말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사과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지만, 제가 농담삼아서 던졌던 말에 그렇게 마음이 상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프랑스가 남아공에게 비긴 후에 어떤 분이 '프랑스에 여행가고 싶다'라고 트윗을 했습니다. 축구에서 유럽, 아니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던 프랑스가 졸전을 펼쳤기 때문에 나름 고소해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앞의 트윗에 '프랑스를 약올릴려구요?'라는 멘션을 했는데,... 저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농담삼아서 멘션을 날렸는데, 정색을 하더군요. 그리고 다음날 보니 팔로잉과 팔로워숫자가 동시에 1개 줄어들어있었습니다. 굳이 블로킹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누가 날 블로킹했는지는 아직도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누군가가 내 트윗에 이상한 반응을 보여서 정색을 했는데, 그는 그래도 블로킹대신, 감사하게도,언팔로잉을 해주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우연히 저의 블로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내의 트위터러들의 대화를 보기 위해서 사내리스트를 만드는 중에, 저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회사동료가 절 이미 블로킹을 해놓은 것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제가 사내에서 독설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서 받은 것이 블로킹이라니... 이것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 블로킹은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그래도, 상식도 없는 이 (스패머 포함)의 말을 계속 듣거나 내 말을 그가 듣게 될 거라는 것이 두려우면 그냥 블로킹을 하는 것도 차선의 방법입니다. 블로킹이 서로에게 나쁜 기억을 줄 수도 있지만, 블로킹이 필요할 때에 블로킹을 하는 것도 순전히 트위터에서 행할 수 있는 자유의 표현입니다. 속으로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과감히 블로킹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트위터에서 자유가 아닌,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블로킹이 트위터에서 누리는 세번째 자유입니다. (블로킹의 다른 표현은 '귀막기'입니다.)
트위터의 3대 자유는 팔로잉, 트위팅, 블로킹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듣고 싶은 이의 말을 들을 자유, 내가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자유, 그리고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생떼에 귀막을 자유... 제가 말한 이 순서도 중요합니다. 먼저 많은 이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선입견없이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에 자신의 의견을 더하거 반론을 펼치십시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귀를 막으십시오. 귀를 막기 전에는 더 많이 얘기를 하고, 그것보다 더 많이 들으십시오. 이 또한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세가지 자유를 트위터에서 최대한 누릴 수 있다면 트위터는 당신에게 자유의 공간이고 즐거움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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