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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아인슈타인과 데블스 애드보캇

산업공학을 전공해서 지금은 데이터마이닝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때까지 알던 물리는 뉴턴이 정립한 고전물리였지만 나름 물리에 일가견있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최근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초끈이론, 천체과학 등의 현대물리에 관한 책을 여럿 읽고 있습니다. 깊은 내용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역사와 주요 인물들의 업적 (또는 전기) 그리고 방향성을 개괄적으로 다룬 책들입니다. 안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현대물리가 제 업도 아니고 그냥 취미로 책을 읽어나가니 참 재미있습니다. 계속 했더라면 그들과 같은 천재의 반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을 알릴만한 업적을 남겼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어렵지만 참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양자역학에 크게 기여했던 물리학자들은 막스 플랑크, 닐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레딩거, 폴 디랙, 페르미 등등 나열하기도 어렵고 하나같이 노벨상을 수상했거나 그에 준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소위 천재 반열에 오른 기라성들입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가장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입니다. 물리학에서 기적의 해로 불리는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역사에 남을 다섯 편의 논문을 연속해서 발표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장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이고 (일반상대성이론은 10년 후에 발표) 다른 하나는 금속에 빛을 쏘면 광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규명한 것입니다. 후자가 양자역학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담으로 아인슈타인의 대표 이론은 특수/일반 상대성이론이지만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전효과입니다. (지금은 상대성이론이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잡았고 1919년 에딩턴 경의 개기일식 때 별빛이 태양 주변에서 별빛이 휘어지는 걸 관측해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했지만, 노벨상 수상 당시에는 여전히 이견이 있었던 이론이었습니다. 반면 양전효과는 실험으로 명확히 증명됐고, 상대성이론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과학적 업적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현대물리에서 기념비적 업적을 남겼지만, 죽는 날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론적, 철학적 헛점을 파고 들며 공격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노벨물리학상은 상대성이론이 아닌 양자역학으로 수상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양자역학의 대부 닐 보어와의 양자배틀(?)은 매우 유명합니다. 1927년 솔베이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역설을 파고든 사고실험을 제안했고 이틀(?) 후에 보어가 그 사고실험의 모순점을 반박하는 반대논리를 제시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으로 옮긴 이후에 포돌스키와 로젠과 합세해서 제시한 EPR역설은 꽤 오랜 기간동안 양자물리학자들을 괴롭혔습니다. 닐 보어가 대략적으로 반박했지만 완벽하진 못했고, 이 때문에 이후에 다른 물리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이론과 실험환경을 갇춰서 어느 정도 방어했습니다.

 

데블스 아드보캇 Devil's Advocat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년 전에 키아누 리브스와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직역하면 악마의 대리인입니다. 카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카톨릭 교회에서 성인 등을 추대할 때 그가 어떤 업적과 기적을 행했는지를 보고 판단합니다. 보통 좋은 면을 부각하겠지만, 혹시나 추악한 행위를 했는지 등도 조사해서 비교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한 명이 악마의 대리인을 자처해서 (세워져서) 그가 성인이 되지 말아야할 이유, 즉 그가 일으킨 기적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조사해서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그의 반론이 무력화된다면 성인이 되는 데 걸림돌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게좋다 식으로 거수기 만장일치로 땅땅땅하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모르는 것까지도 조사해서 결정의 합리성, 적법성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앞서 아인슈타인은 평생에 걸쳐서 양자역학을 무력화하는 여러 역설적 사고실험을 제안해서 많은 양자물리학자들을 괴롭혔습니다. 대부분 양자역학의 대부였던 닐 보어가 방어를 했지만, 보어의 방어가 완전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이 반대했든 안 했든 양자역학은 -- 어차피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이 믿었기 때문에 -- 발전해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이론으로 정립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몇몇의 반론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단순히 실험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리하거나 수학공식에서 유도되는 예측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이론적, 철학적 기저의 견고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원래부터 양자역학에 반대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데블스 애드보캇은 아닙니다. 데블스 애드보캇은 반대 의견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논쟁을 위해서 임의로 그런 위치/견해를 갖는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위키백과: arguing against something without actually being committed to the contrary view)

**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결정론을 말하는 것이지, 소위 말하는 신의 존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간혹 뉴스를 보면 회사 이사회에서 (특히) 사외 이사들의 거수기 형태를 보도하는 걸 봅니다. 창업자나 대주주에 의해 세워진 사내 이사라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안건을 바라보고 혹시 틀릴 수 있는 결론에 이르지 않도록 조력하라는 의미에서 사외이사제도를 만들었는데, 현실은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경영진들의 테이블만이 아닌, 팀이나 파트, 또는 더 작은 셀 내에서도 이미 획일화된 시각으로 각자의 업무나 안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0여명 이상이 참여하는 회의나 결정이라면 일부러 한 명정도는 데블스 아드보캇을 선정해서 반대 의견을 꾸준히 제시하도록 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저도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무적인, 형식적인 반대도 없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요?

 

좋은 비전에는 따르겠지만 다른 시각을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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