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페이스북과 회사 게시판 (아지트)에 긴 글을 적으니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보였다. 평소에 좋아요나 댓글을 달지 않던 분들의 반응이라 더 신기했다. 밥솥을 구매한 얘기였는데, 어쩌면 사람들은 뭔가를 구매하는 것 (과정)을 좋아하는 듯도 하고 타인의 행위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유가 뭐든 재밌는 경험이다. 비슷한 류의 글을 종종 적을까를 잠시 고민했지만 난 천성적으로 소비형 인간이 아니라서 그럴 기회는 더물 듯하다. 문득 스티브 잡스의 가족이 세탁기를 샀던 일화가 생각났다. (Steve Jobs buys a washing machine.) 그래서, 같은 글을 ‘벤, 밥솥을 사다’라는 제목으로 티스토리에 옮긴다 (Ben의 회사에서 이름).
- https://www.wired.com/2005/05/steve-jobs-buys-a-washing-machine/ (한글 번역본은 적당히 ‘스티브 잡스 세탁기’ 등으로 검색하면 나옴)
아파트 입주 후 반년이 넘도록 밥솥을 사지 않고 그냥 햇반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 구차하게 설명하자면, 제주에서 마지막 3~4년 동안은 햇반과 편의점 도시락을 많이 이용했었다. 처음에는 밥솥을 구입해서 주말마다 직접 해먹었다. 그런데 겨울에는 주말 4끼 (토일 x 아점, 저녁) 중 최소 2~3끼는 집에서 먹었지만,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여름에는 식당을 많이 이용해서 직접 해먹는 빈도가 줄었다. 보통 토요일에 2~3인분을 해놓고 주말동안 먹는데, 간혹 일요일 식사를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밥솥 안에 남은 밥은 누렇게 변색돼버리고, 어떻게든 먹든지 아니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야만 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대부분 해결했기 때문에 주말에 한 밥은 그 주에 다 먹어치워야 했다. 그런데 여름이 가까워오고 한 주 정도 밥하는 걸 스킵하면 그후 2~3주동안 밥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정신 차리고 다시 밥을 하려고 쌀통을 확인하면 이미 쌀벌레가 생겼거나 냄새가 심해져서 또 쌀을 그냥 버리게 된다. (제주를 나오기 직전에 몇 년간 묵혔던 쌀을 버리고 왔다.) 그런 패턴으로 몇년을 보내고 나서 편의점 도시락의 품질도 좋아지고 또 그냥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는게 편하다는 체험하고 부터는 그냥 마트에서 햇반을 구해서 찬장에 넣어두고 살았었다. 이 세상에 귀찮음을 잘 아는 싱글들만 살았다면 분명 햇반을 만든 사람은 노벨평화상은 받았을 거다.
그런 이유로 아파트에 입주한 후에도 굳이 밥솥과 쌀을 사지 않고 햇반으로 끼니를 떼우기로 마음 먹었다. 반년동안 60개 정도의 햇반을 먹은 것 같다. 마트에서 12개짜리를 구입하면 개당 1,000원정도고, 인터넷에서 24개나 36개를 구입하면 개당 750원정도에 구할 수 있다. 특별 할인이나 쿠폰 등을 잘 이용해서 48개 묶음을 구입하면 개당 5~600원에 구입할 수도 있다. 밥솥과 쌀을 사서, 매주 안치는 수고까지 고려한다면 저정도의 가성비라면 햇반이 더 낫다는 나름의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반년을 지냈는데 지난 주말에 그냥 밥솥을 구입했다. 주말 식사 대부분을 집에서 해결하는 것도 이유지만, 근무제도가 바뀐 후로 굳이 오래 회사에 남지 않고 정시에 퇴근해서 주중에도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6인용을 구입했다. 가격차도 겨우 1~2만원인 10인용도 생각했지만 이건 오버인 듯했고, 3~4인용은 혼자 살지만 그래도 가끔 필요할지도 몰라서 6인용으로 결정한 거다. 국내 밥솥 시장에서 쿠쿠와 쿠첸, 그리고 기타가 거의 6 : 3 : 1정도의 마켓쉐어를 가진다길래 다수를 따라서 쿠쿠로 결정했다. 저렴한 것은 10만원정도였지만 막상 구매를 결정한 후에는 그것보다는 더 나은 걸 구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밥솥 전체를 고르게 가열하는 고급형은 최소 30만원을 줘야했다. 이 가격이라면 그냥 햇반을 계속 이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리 탄수화물 중독자, 밥심의 한국인이라지만 금솥에 밥을 한다고 더 잘 살 것 같지도 않아서, 절충해서 20만원짜리를 구입했다.
막상 밥솥을 구입하고 나니 주말동안 다 먹지 못하면 변색되고 맛이 없어진다는 걸 알기에 냉동 보관을 고려했다. 비닐에 싸서 보관하는 건 폼이 나지 않아서 냉동보관용 용기를 알아봤다. 일전에 봐뒀던 1인분 보관용기를 찾아봤는데, 용기값은 1.2만원인데, 3,000원의 배송료가 붙어있다. 그냥 1.5만원에 무료배송이었으면 구입했을텐데, 요즘 배송료로 장난치는 업체들이 많아서 별로 큰 금액은 아니지만 머뭇거려졌고 또 10개까지 필요치도 않았다. 더욱이 플라스틱 용기보다는 유리용기가 나을 듯해서 그냥 3개들이 유리용기를 구입 (1만원)했다. 쌀은 그냥 마트에서 5kg씩 구입하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트에서 쌀값을 보니 굳이 이럴려고 햇반을 포기하고 밥솥을 샀나라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임금님표 이천쌀 10kg을 또 주문 (3.5만원)했다. 쌀을 주문하고 나니 쌀을 보관할 용기도 필요해서 또 주문 (1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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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길게 글을 쓰는 것은 늦게 주문한 쌀은 이미 오늘 배송됐고, 밥용기와 쌀용기는 지금 배송중인데, 정작 가장 먼저 주문한 밥솥은 여전히 배송준비중이고 주문이 밀려서 10일까지도 기다려야 한다는 걸 봤다는 시덥지 않은 이유에서 그냥 하소연겸 독백이다. (냉동용기와 쌀통은 배송완료고, 밥솥은 오늘 배송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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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쌀 10kg을 최저가로는 2만원에서 2.5만원정도로 구입가능 (이천쌀이라서 3.5만원정도임). 예전에는 햇반이 210g이었는데, 최근에는 200g으로 줄었음. 즉, 쌀 10kg이면 50인분이 나옴. 저가로 10kg을 2.5만원에 구입했다면, 1인분당 500원인 셈. 즉, 인터넷에서 각종 행사, 할인, 쿠폰 등을 잘 활용해서 48개 묶음 햇반을 구입하는 비용과 쌀값과 거의 같아짐. 여기에 밥솥이나 각종 용기를 구입하는 비용에 더해서 매주 쌀을 씻고 안치고 또 밭솥을 세척하고 등등의 귀찮음에 전기료 등을 더한다면 햇반의 압승. 원가를 더 낮추기 위해서 (혼자 살면서) 20kg의 쌀을 구입했다면 냉동/냉장보관을 하면 좀더 오래 보관이 가능하겠지만 새로 쌀을 구입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기 어려움. 종합하면 좁은 데서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그냥 햇반으로... 환경호르몬 때문에 햇반을 먹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에 충실한 자칭 효자도 봤지만 효는 멀고 귀찮음은 가깝다는 걸 깨닫는 순간 밥솥과 쌀을 산게 후회하기 시작한다. 중고장터는 늘 가까이에 있으니…
밥솥과 쌀, 기타 제품을 구매했지만 여전히 비상용 햇반은 구비해놓 생각이다. 그냥 볶음밥을 하는데 식은 햇반만한 게 없다.
반응들
- 밥 200g은 쌀 100g정도로 밥을 지으면 나오는 양이기 때문에 쌀 5kg은 실제 100인분 정도 된다는 댓글
- 쌀은 용기에 담아서 냉동실에 보관하라는 댓글
- 아직 배송전이면 쿠쿠 취소하고 미니압력밥솥을 추천한다는 댓글
- (가격, 시간, 노력 등) 가성비는 햇반
- 이왕 샀으니 잘 해먹으라
- 건강을 생각해서 햇반보다 밥
- 악세사리 추가 구매는 필수 (커튼을 바꾸고 쇼파를 바꾼다거나 아이폰을 산 김에 맥북을 산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