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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카카오의 로엔 인수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잡생각

현재 카카오 직원이라는 내부인이면서 (인수 딜이나 음악 서비스와 무관한) 내부인이 아닌 내부인이 적는 글이라서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다. 어제 오후에 브라이언의 로엔 인수에 관한 이야기도 짧게 들었고 담당자의 인수과정 뒷얘기도 듣고 사내 게시판의 글도 읽었지만 이미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 글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지는 못할 것같다. 그냥 인수라는 그 사건에 대한 일반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는 것 뿐이다.

아침에도 관련해서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승자의 저주 이야기도 했고, 화학적 결합에 대한 얘기도 했고, 의외로 다음과의 합병이 로엔을 인수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했고, 또 (자회사로 이직하기도 하지만) 이직할 회사를 하나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했다. 먼저 그 얘기들부터 풀어보고 떠오르는 다른 생각을 글로 남기려 한다.

이런 종류의 대형 인수 또는 합병에는 '승자의 저주'라는 것이 따른다. 인수라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생존이라는 전쟁에서는 결국 패하는 경우를 뜻한다. 국내외의 유수의 기업들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서 성장하지만 어느 수준에 이르면 성장 모멘텀을 잃어버린다. 그런 경우 보통 외부의 유망한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합병해서 규모를 키우고 외부의 기술과 인력을 수혈받아서 계속 성장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 전략이다. 그런데 시장에 좋은 매물이 나오면 그걸 탐내는 기업들이 많다. 결국 서로 인수하기 위해서 비딩 가격 경쟁이 붙게 되고, 경매에서 그렇듯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비싼 가격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 경쟁이 붙지 않더라도 경영 프리미엄 등으로 현재가보다 높은 웃돈을 주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수나 합병에서 무리한 투자를 단행한 경우, 예상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많은 경우 예상치를 밑도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그냥 파산시키거나 헐값에 재매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의외로 많은 회사들이 이런 승자의 저주에 걸렸다.

카카오는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뭐든 결과가 말해주는 거니... 인수 당시에는 과하게 지출했다고 회자되던 것들이 나중에 결국 성공한 인수였던 사례들도 많다.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것도 그렇고,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것도 그렇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잘 알겠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 때 유튜브랑 인스타그램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는데, 카카오의 로엔 인수는 미래를 위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많은 이들이 말한다. 카카오의 로엔 인수는 당장의 미래보다는 현재의 재무상태 개선을 위한 면이 강하다. 현재 인터넷/IT 서비스 업체들의 수익모델은 결국 광고나 상품 중계 등의 B2B 사업이다. 카카오도 카카오페이지나 이모티콘 같은 B2C가 존재하지만, 매출과 수익의 대부분은 여전히 광고과 게임 중계로 채우고 있다. 로엔도 B2B의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로썬 B2C에 강점이 있는 곳이다. 계획대로 잘 된다면 카카오는 B2B와 B2C라는 양쪽 축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미래 기술이나 인재에 대한 투자가 아닌 점이 다소 아쉽지만, 현재에 대한 투자가 가장 확실한 미래 투자일 수도 있다. (로엔의 주식 75%를 확보하는데 1.8조원이 적정한 가격인가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 카카오의 규모에 비해서 무리(무리수?)하는 면이 있어서 당장은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외환은행 사태에서 론스타가 그랬듯이 이번 인수에서 보여줬던 어퍼니티 이쿼티라는 사모펀드의 능력은 참 무섭다. 개인들이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다시 팔듯이, 사모펀드나 그런 펀드들은 참 장사 잘한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이런 분야의 전문가니... 보통의 경우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거나 핵심 자신을 분할 매각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한다. SKP/SKT 입장에서는 공정거래법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당시 2,600억 정도에 판매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어퍼니티가 장사를 잘해서 몇 배를 남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기업들도 좀 배워야 한다. 무조건 정부의 보호 아래에서 커가던 그때의 사고로 계속 기업을 운영한다면 결국 더 똑똑한 놈들에게 잡아먹히고 그들 좋은 일 밖에 해주지 못한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주고 형을 선고해도 집행유예나 특별사면으로 다 풀어주고, 법인세도 감면하고 전기 등의 각종 공공재도 막 퍼주는 이런 온실같은 환경에서 안전하게 기업을 운영하다가 야생에서 눈 시뻘겋게 먹이감을 찾아 다니는 대형 펀드들의 먹잇감이 바로 될 게 뻔하다. 당장은 정부가 먹잇감이 되지 못하고 경계를 서주고 있지만 잘 아는 ISD와 같은 국제룰로 접근하면 정부도 더 이상 기업의 뒤를 봐주기도 힘들어질 게 뻔하다.

보통 인수나 합병에서 물리적 결합보다 화학적 결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번 인수에서는 당장은 큰 문제가 안 될 것같다.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할 때와는 조금 다를 것같다. 당장의 서비스 분야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인수자(카카오)가 급하게 로엔의 상층부를 흔든다면 양상은 달라질 수도 있다. 지금 로엔의 CEO 등의 평판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급하게 그들을 교체하려고 시도하다 보면 그들을 따르는 부하 직원들도 함께 심난해지고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당장의 화학적 결합에 대한 이슈는 없어 보이지만, 결국 사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자기 편한 사람을 위에 앉히려고 성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브라이언이 컨텐츠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은 최소 2~3년 이상은 그들의 전문성과 비전에 맡겨놓는 아량 또는 기다림이 필요할 것같다. 카카오뮤직이나 비서비스 분야의 팀/사람들은 일부 겹치겠지만, 큰 비중은 아니다.

만약 1.5년 전에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지 않았더라면 로엔을 인수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개인적으론 불가능했으리라 본다. 합병하지 않았더라도 그 사이에 카카오도 IPO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기업 가치가 5조정도로 형성돼서 충분히 인수자금을 마련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 단독의 규모에서는 이번 인수가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다음이 가지고 있던 현금 자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또 8조 정도 되는 합병 후의 규모가 있었기에 2조 기업을 흡수할 여력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 인수로 브라이언의 지분률이 어주 살짝 낮아졌는데, 카카오 단독이었다면 지분률이 거의 30%대초 반까지 곤두박두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웬만한 IT 기업들은 창업주의 지분이 20%대에서도 잘 운영하고 있지만, 급격하게 창업주의 지분이 줄어들었다면 경영권 방어에 상당한 애를 먹을 가능성이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로엔의 인수의 밑거름이 됐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상은 기업의 입장에서 얘기고... 이전 글에서도 카카오가 마지막 직장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적었다. 이직을 한다면 비슷한 회사로 갈텐데, 내가 이직할 수 있는 회삭 하나 줄어들었다. (자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재작년에 지인으로부터 멜론 추천 시스템을 만드는데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고 제안을 받은 적도 있고, 작년에 주변에서 로엔으로 이직하죠?라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만약 그때 로엔으로 갔다면 지금은 어떤 심정일까?가 좀 궁금하다. 그때 잘 옮겼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이와 이렇게 됐는데 그때 왜 옮겼을까라고 생각할까?

브라이언은 로엔을 인수하면서 개인적인 꿈을 이뤘지만 나는 이직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또 잃었다.ㅎㅎ

추가. 페이스북에도 짧게 글을 적었는데, 카카오가 멜론을 먹었으니 그냥 Tropic (또는 Tropical)이나 Fruit라는 지주회사를 만들면 좋을 것같다. 최근에 포도트리도 자회사로 편입했는데, 이렇게 된 거 그냥 열대 과일 시리즈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다. 망고나 파앤애플 같은 서비스를 포트폴리오에 넣으면 될 것같은데....

아, 그리고 로엔 산하에 여러 중소 뮤직 레이블들이 있다. 아이유 뿐만 아니라 씨스타도 있고, FNC도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몇 개 레이블이 더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ㅠㅠ) 그렇지만 그들의 제작부서 사람들이 판교로 사무실을 옮길 가능성은 낮다. 카카오에 입사하더라도 그들을 만나거나 같이 일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이직에 이걸 고려할 필요는 없다.

아침에 이런 내용도 언급했다. 내부자 간 부당 거래는 공정위의 제재를 받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소속 가수나 연기자들이 카카오 서비스의 모델로 기용될 가능성은 있을 듯하다. 어차피 모델을 사용할 거라면 굳이 외부에서 찾아볼 이유도 없고, 또 매니저먼트 쪽에서도 더 콧대 높게 대하지도 않을 가능성...? 그리고 만약 그들이 자발적이든 아니든 카카오의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그것도 좋다. 아이유가 인스타그램 대신 브런치에 글을 적고 플레인에 사진을 올린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사내 행사에서 초대 가수로 와준다면 직원으로썬 땡큐겠지만 이건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하나 더. 원래 2대 주주였던 텐센트의 지분률이 많이 희석돼서 카카오의 3대 주주에 오른 어피니티와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브라이언이 텐센트와 이견을 보일 때 어피니티와 짝짝꿍이 될 수도 있다는... 텐센트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평가 차익은 벌써 충분히 얻었고, 또 이젠 카카오 경영에도 별로 신경이 없을 듯하다. 초창기에는 텐센트가 카카오를 롤모델 삼았다면 이젠 카카오가 텐센트를 롤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에 텐센트가 카카오에 아쉬울 게 별로 없다. 그리고 텐센트가 로엔의 컨텐츠 또는 소속의 연예인들을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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