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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나도 사진이란 걸 잘 찍어 보고 싶다.

다시 사진 슬럼프가 찾아온 것같다. 장비가 나쁠 때는 좋은 장비 하나씩 추가하면 됐고, 찍을 게 없을 때는 나름 이름난 곳을 찾아다니면 됐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풀세트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괜찮은 장비를 갖고 있고, 차로 20~30분만 나가면 예쁜 풍경이 즐비한 제주에 살고 있다. 이제 내 사진에서 장비가 나빠서, 풍경이 나빠서와 같은 핑계를 댈 수 없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오롯이 나의 실력 부족 탓이다.


주말에 또 카메라를 챙겨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결론은 요즘 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다. 아직은 황사가 심한 이른 봄이라는 계절을 핑계삼을 수 있을지 모르나, 좋은 사진가는 그런 날씨나 계절 또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에 감탄하기도 하고, 무명의 아마추어가 담은 작품에 감탄하기도 한다. 사진의 결과가 나쁘면 오롯이 사진가의 문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나만의 독특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답을 찾기가 어렵다. 쉬운 답이었다면 지금 그런 고민을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고민을 하니 '어떻게'는 결국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됐다. 다른 이들이 외면하는 나만의 특별한 것을 사진에 담으면 나름 사진에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만의 독특한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또 잡념에 빠져든다. 한 단계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 걸까?'라는 더 근본을 묻게 된다. 나는 왜? 어릴 때는 그저 카메라라는 고가의 장비가 부러웠던 것같다. 사구려 자동 카메라도 쉽게 만질 수 없는 그런 빈농의 집에서 자랐기에 카메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것같다. 나이가 들어서 디카를 구입하게 됐고, 그렇게 막 사진을 찍었다. 잘 찍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그냥 찍었다. 15년정도가 지난 지금은 제주에서 취미삼아서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에서 사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진에 대한 욕구가 시들해질 때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됐다. 나름 큰 돈을 주고 카메라를 구입했는데, 차 트렁크에 넣어두기에는 그저 아까웠기 때문이다. 돈지랄했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정도로 사진지랄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침 제주라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제주에서 덜 알려졌지만 아름다운 곳을 찾아서 사진으로 남기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겠다는 목표 아닌 목표를 가졌다. 그렇게 1년 넘게 돌아다니다 보니 점점 제주가 변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최근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더 변하기 전에 누군가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놓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렇다. 나는 지금 제주의 아름다운 기억을 있는 그대로 남기기 위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왜?라는 질문에 충분치는 않지만 답을 찾았다. 그러면 당연히 '제주의 아름다움' 또는 그런 곳을 사진에 담으면 된다. 이제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았다. 마지막으로 -- 특별한 테크닉이 없더라도 -- 있는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 된다. 어떻게?도 해결됐다. 잠깐만, 이건 내가 주말마다 지금껏  해오던 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지만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질문은 던져버리고 지금같이 계속 해나가면 된다.

그래도 빛이나 구도 등을 더 공부하면서 연습할 것이고, 때론 돈모아서 장비를 갖추고 장비의 특징을 최대로 끌어내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고, 때로는 포토샵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최대 한도로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할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을 보면서 모방도 해볼 것이고, 그/그녀가 찍은 곳을 찾아헤맬 것이다. 인류에게 남기는 유산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단 한장이라도 남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인생 사진 한장을 남기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나도 사진을 잘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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