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하다.
요즘 새로운 걸 좀 해보겠다고 Deep Learning 관련 논문들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작년 초에 딥러닝이란 걸 들은 후에 논문 몇 편을 프린트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잘 읽혀지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후반기에 추천 시스템(CBF)에 딥러닝을 사용한 사례가 있어서 관련 논문을 또 프린트해서 읽기는 했는데 뭔 소리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부터는 이해하든 못하든 그냥 딥러닝 논문들을 다양하게 많이 읽다 보면 용어나 개념에 익숙해지고 차츰 깨달음을 얻겠지 싶어서 (마치 기계를 학습시키듯)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잘 모르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에게 구라를 치면 바로 들킬테니) 대략적으로 설명은 해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압축되고 어려운 논문을 찾아서 또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또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런 1년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학술) 논문의 미래는 없다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비록 논문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것을 논문이란 이름으로 정리해서 많은 이들에게 공표, 공유했습니다. 그런 논문을 읽은 이들은 또 그것에서 영감을 얻어서 새로운 사실을 추가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서 다시 공유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과 발견이 합쳐져서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의 발전에 이르렀습니다. 발견과 공유라는 논문의 대승적 원칙에는 동감하지만, 이제 논문이 제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블로그 포스팅이 기존의 학술 논문을 대체하고, SNS가 저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웹이 새로운 저작과 공유의 도구를 만들어냈지만, 학술 논문과 저널이 가지는 전문성이나 깊이를 따라기기에는 격차가 여전히 큽니다. 연구가 주 목적인 학계와 개발이 목적인 산업계의 속도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도 학술 논문의 위기를 암시하지만, 여전히 학계의 기초 연구와 산업계의 응용 개발은 공존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논문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을 부추기겠지만, 논문의 종말을 이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적히 몇 편의 논문을 읽으면서 이제 논문의 한계 수명을 다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한 편의 논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전문가들은 아마도 그 논문이 가지는 함의와 영향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분야의 밖에 있는 이들은 그 발견에서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기가 힘들 듯합니다.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지 영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더 압축되고 어려워질수록 (새로운 개념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고, 그저 어렵게 적혀진 경우도 있음) 전문가들은 만족하겠지만 초보자들의 좌절합니다. 그런 논문들이 늘어날수록 논문은 전문가 집단, 즉 이너서클에서만 환영을 받고 그네들만을 위한 공유의 도구가 됩니다. 이너서클에서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논문은 발견과 공유 즉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어렵게 적힌) 논문은 초보자들이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됐습니다.
한 편의 논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선행해서 알아야하는 개념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줄줄이 엮인 논문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서야 처음 손에 잡았던 논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의 레퍼런스, 레퍼런스의 레퍼런스의 레퍼런스, ...를 모두 읽어야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정리해서 타인들에게 알려줄 수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일부러 더 압축하고 어렵게 적으려는 경향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소위 전문가 티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우스게 소리로 대가는 증명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를 그냥 'it's trivial'이라고 말하고 증명을 생략한다라고 말합니다. (논문의 길이 제한 등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개념적으로 쉽게 설명해도 되는 것들을 그냥 어려운 용어들을 나열하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도) 그럴듯한 개념들을 마구 수셔넣어서 압축합니다. (불필요한 수식도 가능한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게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에 쉬운 경우도 있으니 그것까지 불평하진 않겠습니다.)
공유를 위한 도구가 이제 견제를 위한 울타리가 됐다는 느낌을 받으며 (저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하소연 해봅니다.
학자 여러분들, 논문 좀 쉽게 쓰세요. 그게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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