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6.24 설득의 실종
  2. 2012.05.25 공간과 공감, 그리고 공강
  3. 2012.05.22 그러면 교육에 미래는 있는가? (2)

설득의 실종

Gos&Op 2013.06.24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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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무실에서 사원증 패용 때문에 조금 시끄럽다. 유치한 캠페인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고, 이번/지난 주는 일제검점기간 -- 일제고사도 아니고 -- 으로 설정해두고 조금 강압적인 분위기마저 연출하고 있다. 사원증이 출입증의 역할 외에도 내외부인의 구분 및 직원의 식별ID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보안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도 있다. 그런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고 종용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의 불만에 그저 틀에 박힌 FAQ만 게시판에 올려놓는 것에서도 거부감이 든다. (보안)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미연에 모든 가능성을 점검하고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데 왜 그렇게 사무적이고 관료적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보안 관련 부서의 (업무의 특성에서 기인하고 체화된) 사고의 경직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이 회사 전반에 뿌리 박힌 고질적인 병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원증 패용이나 VPN 연결 등은 크리티컬한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가 있지만, 그 외에 가벼운 사안들에 대해서도 과정이 비슷했던 것같다. 갑들에게는 '결정하면 따르라'라는 것이 깊이 각인된 것같다. 그런 사고가 내부의 분위기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전달되는 서비스에도 그대로 투영되어있다는 느낌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다음의 위기설은 단순히 재무재표의 문제나 성공한 서비스의 부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적당한 문제를 찾아 끼워맞추는 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요즘 대한민국 전반에서도 감지되는 것이지만, 회사 내에서도 설득의 과정이 실종된 것같다. 결론없는 토론이 토론없는 결론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모든 결정에서 토론의 과정, 즉 이해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같다. 나름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고민해서 해결책을 제시했겠지만, 그 결정이 100% 맞다손치더라도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동참시키는 과정이 생략되면 결국 정답이 오답이 되고 만다. 그냥 결정하고 공지하고 (공청회도 아닌) 설명회 한두번 하고 실행하는 것에서는 새로운 변종, 즉 창의와 창발이 없다.

말했듯이 그런 내부의 분위기는 그대로 외부에 투사된다. 바로 기획하고 개발하고 운영되는 서비스를 통해서 나타난다. 좋은 것을 만들었으니 너희들은 그냥 와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인식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어떻게 사용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겠는가? 리더십이 팔로워들을 포용하고 설득시키듯이,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 서비스 고객들을 포용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들이 그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결국 애용하게 된다. 최근에 다음이 만든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게중에는 트렌드를 잘 못 읽었거나 기획이 나쁘거나 개발이 개판이었던 것도 있다. 그러나/그렇더라도 결국 서비스가 실패한 원인은 사용자를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비스라는 것이 그냥 오픈해서 이벤트 한번 한다고 해서 저절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시대의 트렌드도 분석하고 사용자들의 니즈도 파악하고 또 더 근본적인 사용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잡아내야 한다. 그렇게 서비스의 컨셉을 제대로 잡아서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으면 성공했다. 10년 전에는... 경쟁 서비스들도 많고 시장도 불확실한 요즘에는 완벽한 컨셉의 서비스를 제때 출시한다고 해서 시장에 바로 안착시킬 수가 없다. 과거에는 오픈이 레이스의 끝이었지만, 이제는 오픈이 레이스의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지나하게 사용자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서비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마음에 들 것이라고 꾸준히 보여주면서 유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성공신화는 잊어야 한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낫다는 것, 빠르다는 것, 좋다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다음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 여러 번 주장했듯이 -- 문화의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조직도가 아니라, 그 조직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정신과 철학 -- 때로는 정치 -- 의 문제다. 그런 정신과 철할이 문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그런 (창조적인) 문화는 결국 서비스라는 제품으로 형상화된다. 다음에 잘못 정립된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나는 이 글에서는 설득의 과정이 생략되고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것을 콕 집어서 말하고 싶다.

유저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기다리지 못한다면 다음이 그 어떠한 우수한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이해와 설득과 기다림은 내부에서 체득된 문화를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다.

이유가 없는 현상은 없다.

(2013.06.18 작성 / 2013.06.24 공개)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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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낮에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이 정리되면 블로깅을 하겠노라고 말했는데, 그건 내가 글을 적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그냥 생각났던 부분만 그리고 글을 적으면서 떠오르는 것만 적으려 합니다.

최근에 '문화'가 중요하다는 글을 몇 개 적었습니다. 스스로 글을 적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부분인데, 고백하자면 제 글에서 두 가지의 다른 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조직 내에서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 방식 또는 그 조직의 정체성 등을 나타내는 (조직/기업) 문화와 (보통 업무 외... 우리 대부분은 예술가가 아니니) 유희와 예술 활동을 포괄하는 문화. 이 들을 혼용해서 그냥 문화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생각없이 글을 읽어나가면 '그래 맞아'했던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뭐야 이거?'라는 반응을 보였을 법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두번째 문화 예술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문화를 목표로 글을 적는다고 지금 적을려는 순간, 결국에는 이게 조직의 문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지나갑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조금 재미있는 프로젝트 또는 도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컬처베이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음 내의 다양한 문화 예술활동을 시작해보고 또 그런 것을 통해서 즐거운 다음의 생활 또는 다음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뜻을 합친 이들이 있습니다. 음악을 중심으로 공연 및 강연을 계획하기도 하고 아니면 제주의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해볼까도 고민하고 있고, 아니면 다른 소모임들과 연계 및 교류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아니면 텃밭이나 공방 등의 생산적인 활동을 전파해볼까? 등의 여러 생각들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다음이 제주라는 공간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세히 밝힐 수 없다고 했으면서 계속 꺼집어 내고 있으니...) 그런데 그런 문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문화라는 것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서 전파되어 공유될 때 생기는 것일텐데, 그것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제주의 다음 오피스가 다음스페이스.1으로 명명된 것은 다음스페이스.2, 다음스페이스.3 등이 계획 중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새로운 공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계획에 일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그 공간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할까?를 고민합니다. 먼저 공간이 주어지면 그 공간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까요? 아니면 자생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뭔가를 해보자라는 중지를 모은 후에, 즉 서로 공감을 한 후에 그런 활동을 전개할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맞는 걸까요?

그래서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먼저 공간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공감해서 참여할까요? 아니면 공감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맞을까요? 물론 이 둘이 합쳐져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공간이 먼저일까 아니면 공감이 먼저일까?

다음스페이스.1에 테니스 코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바닥이 정식으로 테니스하기에 좀 부적합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옆에 제주대학교에서 테니스 선수들을 초빙해서 자체 강습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동호회가 발족되지 않아서 모두 자비를 들여서 테니스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테니스 강습을 받고 그래서 점심, 저녁 시간에 테니스를 치면서 여가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스포츠도 대표적인 문화활동이니 이제 다음에 테니스 문화라는 것이 생긴 셈입니다. 여기에서는 테니스코트라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테니스 활동이라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들이 학교 다닐 적에 테니스를 배웠고 그래서 테니스를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테니스 장을 전전하다가 너무 귀찮아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면 테니스장을 만들어달라고 건의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감이 모였기 때문에 테니스장이 생겨나고 그래서 이를 중심으로 테니스 문화가 생겨난 것일까요?

일전에 텃밭 얘기도 몇 번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다음스페이스.1 서쪽에 꽤 넓은 텃밭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가족끼리 나와서 텃밭을 가꿉니다. 그리고 전에는 점심식사 후에는 그냥 담배만 피며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이제는 식사 후에는 바로 텃밭에 모여서 모종을 심고, 물을 주는데 전염을 합니다. 일종의 텃밭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이 텃밭 문화는 텃밭이라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런데 최근의 귀농이나 참살이 트렌드에 편성해서 GMC에 있을 때부터 텃밭에 대한 요구가 사람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감이 다음스페이스.1에 텃밭을 만들도록 이끈 것일까요?

공간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공감이 먼저일까요?

그런데 다음스페이스.1에 이해할 수 없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게이트볼장입니다. 보통 게이트볼은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하는 스포츠입니다. 다음의 직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도 이제 40대중후반정도입니다. 즉, 게이트볼을 할 사람이 없는 가장 금싸래기 땅에 게이트볼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게이트볼장이라는 공간이 생겼는데도, 아무도 게이트볼을 하지 않습니다. 게이볼은 문화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공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공감이 없으면 문화로 발전할 수 없나 봅니다.

역으로 사내에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새 사옥에 축구장은 안 만들어졌습니다. 축구장은 부지가 커니... 좀 무리긴 합니다. 그러나 테니스장 크기의 풋살장은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에 대한 공감은 있지만 축구장/풋살장이라는 공간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한번 농구장에서 미니축구를 한번 한 것을 제외하면, 두달이 지나도록 다음스페이스.1에서는 축구/풋살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주말에 모여서 축구장에서 축구를 합니다만...) 공만있으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것이 축구인데, 공감만으로는 축구문화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풋살장이 만들어졌더라면 눈치를 안보고 저녁 시간에 모였을 법한데 말이죠.

공간과 공감이 동시에 생겨서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현실에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공간을 먼저 만들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봐라라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공감을 바탕으로 사업계획서라면 작성해서 오면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줘야할지... 하나의 성공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공감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오랜만에 참 성의없는 글을 적었습니다. 역시 생각을 좀 더 해보고 글을 적을 걸 그랬습니다. 글은 적고 있지만 글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더 이어가기도 힘들고 또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적도의 남자'식으로 바로 엔딩크레딧 올라갑니다. ... 다음에...

...

추가. 2012.05.25. 이 글을 처음 적을 때부터 '공'자로 시작하는 한 단어를 더 애타게 찾았습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위치를 타나내는 단어이고, 공감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감정의 교감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즉, 시간, 공간, 인간의 3대 문맥 축에서 공간과 인간의 축에서 공간과 공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 축에서 '공'자로 시작하면서 문화혁명의 시발이 될 수 있는 단어가 뭘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우연히 '공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공강이란 대학교에서 강의 사이의 비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렇게 업무 등의 일 속에서 여유 시간이 주어져야지 즐길 수 있고, 문화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 축에서 문화의 동력으로 공강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좋을 듯합니다. 이름도 '공가' + 'ㄴ / ㅁ / ㅇ'으로 일부러 맞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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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주제 넘게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우민화, 즉 생산적인 근로자 양성을 목적으로 했던 근대 교육체계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미래의 사회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한다면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아니 학생들이 그런 인재로 자라나게 하는 환경을 준비하면 됩니다. 근대 우민화 교육의 종말을 선언했을 뿐, 교육 그 자체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실생활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지식을 흡수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버려둔다는 말의 함의는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창의적 자유를 허용하고, 또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도전을 가로막는 교육은 이제 시효를 종료해야 합니다. 미래의 교육은 분명 뇌를 사용하는 것 (암기)이 아니라 뇌를 활용하는 것 (사고/창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3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교육에 대한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근대 교육의 문제와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전개해놓은 것을 읽고 놀랬습니다. 리프킨도 근대 교육이 단순히 이미 죽은 그래서 더 이상 효용가치도 없는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리프킨이 분명히 밝히는 대안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작 <공감의 시대>를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은 자연과의 교감을 의미하고, 또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인간/동료와의 교감을 의미합니다. 물론 직접적인 교감에 더해서, IT기술 등의 현대의 이기를 이용해서 전 세계와의 교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시야를 세계의 수준으로 넓히고 지구 반대편의 인류들과도 소통하라는 것임)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 또는 교감 또는 소통은 결국 interaction을 의미합니다. 자연과의 interaction, 그리고 사람과의 interaction입니다. Interaction이란 달리 표현하면 곧 '경험 Experience'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 달리 말해서 -- 저의 표현대로라면 -- 주어진 자연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습, 즉 문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문자로 된 지식을 읽고 흡수하는 20세기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서, 주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또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21세기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풀이법을 던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문제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 문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정 assumptions을 더 하거나 제약조건 constraints을 설정해서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더 발전하면 그런 가정이나 제약사항 중에 일부를 제거하면서 문제를 일반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리프킨도 강조한 '토론'을 통해서 공동으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의 학생들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일전에 다음 제주에서 <인사이드 애플>에 대한 임정욱님의 강연 후에 적었던 <기업의 문화와 철학과 가치는 소중하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에서는 쿨선언 The Cook Doctrine으로 알려진 'We believe in...'이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에 바로 정욱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팀쿡이 즉석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쿡의 모교인 Auburn University의 신조인 Auburn Creed를 평소에 외우고 다녔고, 이 Auburn Creed이 'we believe in..'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는 미래 교육 (적어도 한국에서는)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생각의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팀쿡이 평소에 Auburn Creed를 암송하면서 수백 수천번 'we believe in...'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재직하는 회사의 신조는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도록 해줬을 것이라 유추가 가능합니다. Auburn Creed의 내용을 통해서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신념, 또는 정심을 심어주었고, 그 형식을 통해서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줬습니다. 추측하건데 팀쿡이 언젠가는 'we believe in...'로 시작하는 멋진 말을 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총회의에서 우발적으로 쿡선언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결국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좋은 생각의 틀/템플릿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경험하고, 교감하고, 생각하고, 창조하고... 교육의 미래는 결국 미래 인재들의 창의성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이 직접 만들어가야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더 쉽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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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stima.tistory.com BlogIcon estima 2012.05.25 12: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환님은 참 생각이 깊군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5.26 01: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정리도 못하고 적는 것입니다. 요즘은 업무 외의 문화프로젝트 때문에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중요한 단어나 개념들을 자주 듣게되고 그러면 또 그것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 엮어서 글을 적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