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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의전과 상조



세월호 사건 후에 조금 관심있게 본 기사/칼럼 중에 하나가 의전(儀典)에 관한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인명구조보다는 높으신 분들 (VIP를 포함해서 총리나 장관 등)의 동선이나 행사(?) 순서 그리고 안전 등을 챙기는 모습이 신문방송에 자주 등장했고, 이후에도 청와대에서 VIP 보고와 관련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반대급부로 미국에서는 대통령도 백악관 청소직원과 스스럼없이 주먹인사를 하는 사진이나 빈 라덴 사살 작전 중에 대통령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켜보는 사진 등이 다시 이슈가 돼기도 했다. 의전은 중요하지만 모든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의전 매뉴얼만큼이라도 잘 정해진 사고후 수습 매뉴얼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렇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주말에 숙부님이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에 다녀왔다. 슬픔도 슬픔이지만 장례/조문에 필요한 여러 뒷일을 처리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각종 단체/사람들로 부터 근조화환이나 근조기가 배달돼오면 사인해주는 것도 한 가지 일이었다. 내 이름을 적고 상주와의 관계만 적는 작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 뿌리 잡힌 의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보통 장례식장에는 화환이 10여개가 보통이겠지만, 숙부님은 오랜 교편을 잡고 교감선생님을 역임하셨고 교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신 것도 있지만 상주가 최근까지 부장검사를 하고 최근에 변호사 개업을 했기 때문에 대략 100개가 넘는 화환/근조기가 배달돼왔다. (현직이었으면 배는 더 많았으리라…)

아래의 사진처럼 장례식장 안쪽 벽을 다 둘러싸고 문밖에도 두줄이상 (뒤쪽에 더 있음) 화환이 늘어섰다. 화환값을 10만원으로 계산해도 100개면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이 화환에 허비됐다. (무조건 허비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들 화환은 재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뼈대 정도를 제외하고) 모든 꽃들은 그냥 쓰레기처리 된다. (근조기는 그나마 매번 재활용이라도 된다.) 이런 화환을 만들고 근조기 등을 배달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일이기는 하겠지만, 전체로 봤을 때는 분명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현금으로 조의금을 내주면 장례식을 치르는데 도움이라도 됐을 건데…

저 많은 화환을 보낸 분들 중에서 망자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상주와 연이 있는 분들이 많기는 하겠지만, 실세나 권력자들이 이런 상을 당했다면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줄을 대기 위해서 꽃을 보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화환을 받고 나면 그 반대 상황이 되면 비슷한 규모의 화환을 보내야 한다. 한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어쩌면 몇 차례) 왕복하는 이벤트다. 모든 것을 낭비, 허례허식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도의 범위를 넘으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장례식이란 망자와의 이별을 애도하며 추억을 되새겨보는 것이 본래의 취지일텐데… 장례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나 불순한 인맥 수단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의전이라는 문제와 함께 생각해본다.

장례식장 내부가 화환으로 완전히 둘러쌓였다.


장례식장 밖은 다른 의미에서 꽃길이 됐다. (오른쪽 앞에 네이버 김상헌 대표도 화한을 보냈는데, 서울대 법대 선후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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