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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제주는 지속할 수 있을까?

모처럼 날씨 좋은 토요일 오전, 아점을 먹고 애월 해안가를 드라이브한다. 푸른 하늘, 광활한 바다, 따뜻한 봄바람… 드라이브하고 사진 찍기에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운전을 계속 하면서 마음 한켠에 허전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혼자라서 그런 걸까?

3년 전에 봤던 바닷가가 아니다. 아니 작년에 봤던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다. 경치 좋은 곳마다 부자연스럽다. 목좋은 곳은 어김없이 새로 건물이 들어서있다. 새로 생긴 펜션이다. 새로 생긴 식당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카페다. 제주를 여행하면서 이제는 편해졌다. 그런데 숙박시설, 식당, 카페는 서울에 없어서 서울 사람들이 제주까지 여행을 오는 걸까? 그들은 제주에 잠을 자러 오는 걸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걸까? 아니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려고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려서 제주로 오는 걸까?

작년 초에 제주의 동쪽 해변인 월정리에 직장동료와 함께 간 적이 있다. 생각 속의 월정리 해변을 그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선택에 후회를 했고,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몇 년 전에 ‘아일랜드 조르바’라는 작은 카페가 생겼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던 적이 있다. 여러 사정에 따라서 그 카페는 ‘고래가 될 카페’로 재개장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의 장소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 월정리 해변은 카페촌이 되었고, 해안가 도로변은 주차장이 되었다. 3년, 5년 전에 그곳에서 좋은 기억을 가졌던 이들이 그 기억만을 가지고 다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다시 그곳을 찾는다면 그들은 분명 실망할 것이고 내가 작년에 가졌던 미안함을 가족/친구들에게 가질 것이다.

1~2년 전에 페이스북에 ‘오늘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내가 좋아하던 제주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라고 짧게 글을 적었던 적이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그것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작년 가을에 — 11월 20일이니 겨울 초입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듯 —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섭지코지 옆을 지나갔다. 멀리 섭지코지가 보이는데 바다 빛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너무 슬펐다. 페이스북에 “섭지코지가 거대 자본에 잡식되기 전에 이곳에 와보지 못한 것은… 저걸 보면 앞으로의 모든 세대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다.”라고 남겼다. (원문에는 오타/자동수정 ‘기준’으로 남겨졌다.) 이런 느낌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한편의 글을 보게 됐다. 제주 한라일보에 조미영 여행작가님이 적은 “더 이상 비밀의 정원은 없다”라는 글이었다. 내가 받은 그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조작가님이 내심 부럽다. 그녀는 그래도 섭지코지의 원래 모습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다.

최근 중국 거대 자본이 들어와서 한라산 중산간에 난개발이 진행중이다. 신문방송에서는 이것에 대한 문제점을 계속 얘기하는데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더 최근에는 송악산 일대가 중국자본에 넘어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외에 많은 난개발 소문이 있다. 어쩌면 5년, 10년 뒤에는 제주가 제주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제주의 모습은 오로지 지금 제주를 본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해야할지도 모른다. 몇 장의 사진으로만 제주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 슬프다. 잠시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리고 한 곳 더… 강정.

TV에 잠시 소개되거나 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우후죽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애월 해안가 드라이브의 끝은 한담해안에서 마쳤다. 먹물과 봄날. 이제 이 좁은 도로에 차를 끌고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지난 가을에 조천의 한 피자가게 앞을 지난 적도 있다. 그곳도 그랬다. 이유는 똑같다.

제주의 아름다운 곳, 특히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발굴해서 책이나 블로그 등으로 남기려는 계획을 작년에 세웠다. 그런데 이제는 망설여진다. 알려지면 또 없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사진을 찍으러다닐 예정이다. 누군가의 기억이 사진으로라도 남겨주는 것이 미래 세대들을 위한 도리인 것같다. 어쩌면 약올리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글을 시작했지만 끝을 맺을 수가 없다. 아, 질문(제목)에 대한 답변이 빠졌다. 지금처럼이면 결국 No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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