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오름에 갔을 때 일입니다. 그냥 웃고 넘겨라고 적는 글입니다.
2010년 5월에 SM5로 차를 바꾸고 나서 줄곳 운전을 맨발로 합니다. 맨발로 운전하면 차의 미세한 떨림도 감지할 수 있고 뭐 그런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순간적으로 과속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맨발로 운전을 하다보니 차에 탈 때마다 신반을 벗기가 번거로워서 평소에 슬리퍼 또는 샌들을 주로 신고 다닙니다. 겨울에도 그냥 양말만 신을 뿐 샌들로 다닙니다. 출퇴근도 1~20분밖에 소요되지 않고 제주도는 그렇게 춥지도 않기 때문에 평소에 샌들만 신고 다녀도 별로 불편하지 않습니다. 차트렁크에 운동화 및 구두가 항시 준비되어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그냥 갈아신기만 하면 됩니다.
지난 주말에 근처 세미오름에 갔다가 코스가 너무 짧아서 다시 백약이오름을 다녀왔습니다. 백약이오름은 세미오름보다는 높고 길었지만 그닥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왕 온 김에 길맞은편의 동검은이오름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가까이에 있고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아서 문석이오름까지 하루에 오름 네개를 정복할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동검은이오름 입구가 멀었고, 또 점점 오름에 다가갈수록 오름의 높이와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문석이오름은 포기하고 그냥 동검은이오름만 올랐습니다. 그런데 걷다보면 욕심이 생겨서 오름 둘레를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왔던 길과 다른 쪽으로 계속 걸어서 주차장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오름을 내려와서 길의 끝자락에는 트래킹코스가 사라지고 그냥 수풀과 밭이어서 조금 힘들게 왔습니다.
날씨가 덮지는 않았지만 가파른 오름을 오르고 좀 긴 거리를 걸어왔더니 땀이 많이 났습니다. 차로 돌아와서 일단 운동화를 벗고 샌들로 갈아신었습니다. 땀흘리고 더워서 그냥 운전석 차문을 열어두고 오른발은 브레이크를 누르고 왼발은 차 밖에 내놓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신발을 벗고 차문을 닫고 근처 식당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시식당의 순대국밥을 먹는 것에 기분이 들떠있었고 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길로 온다는 설레임을 가득했습니다. 약 20km정도를 운전해서 가시리에 주차를 하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왼쪽 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약이오름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로 그냥 차밖에 신을 벗어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일단 식당에 왔으니 트렁크에서 운동화를 꺼내서 갈아신고 밥을 시켜먹는데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돌아갈까? 그냥 새로 살까? 빨리 집에 가서 무한도전을 봐야하는데... 굳이 그 먼데까지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지루할텐데...? 등의 많은 생각 때문에 밥도 먹는둥 마는둥했습니다.
그냥 집에 도착해서 신발이 없는 것을 알았다면 포기했을텐데, 그래도 근처 식당에서 알아차렸기에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다행히도 주차장 한 구석에는 제가 벗어놓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샌들이 있었습니다.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도 많이 다니지 않고 또 허름한 샌들 한짝을 주워갈 사람도 없었테니... 그런데 막상 샌들이 놓여있는 곳 바로 옆에 주차를 했던 커플이 등산을 마치고 차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차에서 내렸을 때 신발 한짝을 보며 웃고 지나갔을텐데 또 돌아오니 주인이 찾아간 것을 보면서 한동안 웃었을 듯합니다.
이렇게 저의 샌들 에피소드는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삼다수목장에서 사진을 찍으려 마음을 먹었었는데, 시간에 쫓겨 (무한도전 보려고) 그냥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