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ving Jeju

시간이 멈춘 모슬포, 공간에 갇힌 방주교회

지난 일요일에 하가리에 다녀온 이후로 다음주말을 기다렸습니다. 딱히 할 일이 정해져있지 않았지만, 그냥 근처에서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만 가졌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모슬포입니다. 일전에 짬뽕로드에서 먹지 못했던 홍성방도 가보고 싶었고, 2010년도에 일제치하에 만들어졌던 적산가옥을 찾아나섰던 때 (결국 적산가옥은 보지 못함) 처음 봤던 마치 70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세트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그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길을 나섰습니다. 모슬포를 다녀오면서 GET5 때 갔던 알뜨르비행장에도 잠시 들렀고, 그리고 계속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이타미준의 방주교회에도 다녀왔습니다.

모슬포에 있는 홍성방은 매운 짬뽕으로 유명합니다. 빨간해물짬뽕 보통 맵기로 시켰는데 (진짜 매운 것도 있음) 다른 짬뽕보다 조금 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게 두마리, 홍합, 오징어 등이 들어있습니다. 가격은 7,000원. 모슬포를 지나는 길에 한번정도는 먹을만하지만, 굳이 찾아나설 필요까지는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모슬포/대정하면 산방식당의 밀면과 수육 (제주점도 생겼지만)과 경쟁을 해야하는데, 그냥 지나는 관광객들의 선택은 어느 것이 될지...

홍성방 빨간해물짬뽕 보통맛.

홍성방을 나와서 골목길을 접어들면 모슬포 항구로 들어갑니다. 항구 옆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모슬포토요시장이 열리는데, 지금은 겨울이라서 열린 점포가 몇 되지 않았습니다. 방어축제를 할 즈음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지 않나?라고 추측만 해봅니다. (아직 방어축제도 못 가봄.ㅠㅠ)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입니다. 80년대의 골목길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항구 옆의 가파도/마라도 매표소도 이제 이전해서 그냥 창고로 사용되고 있고, 주변의 식당/상가들의 간판도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홍성방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이발소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쩌면 모슬포의 전성기는 일제치하의 알뜨리비행장과 6.25 당시에 만들어졌던 육군훈련소가 운영되던 그 때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슬포 입구에 아직도 남아있는 육군훈련소의 정문설주가 모슬포의 시간이 멈춘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홍성방을 나와서 모슬포 항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모슬포항의 맞은 편에 옛모습을 간직한 조선소/정비소의 모습이 보입니다.

항구에 정박해있는 한치잡이 어선.

시장에 갔으면 꼬치 하나정도는 먹어줘야죠.

모슬포항을 빠져나와서 2010년도에 봤던 오래된/버려진 상가골목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어진 주택의 모습에서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뿔사... 오래된 폐가들은 모두 허물어져있고 이제 새로운 도로와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옛모습에 대한 정취를 느끼고 싶었는데... 그래서 2010년도에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이 폐가만이 예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줍니다.

2010년 5월에 찍었던 사진들.. 페가로 버려져있었지만 뭔가 모를 애틋함을 느꼈었는데... 3자리의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가 아쉬워서 송악산/산방산 쪽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산방산 사진도 찍고, 작년 GET5 때 갔던 알뜨르비행장도 잠시 보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알뜨르비행장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차장에 온갓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 방송국 차량이 모여있습니다. 경찰차도 보이고 소방서 119차량도 보입니다. 방송국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냥 헬기가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누가 제주를 방문하나 싶어서 무턱대고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차에서 기다리는데 방송국 차량이 모두 빠져나갑니다. 행사가 취소됐나?라고 생각하며 저도 차를 돌려나오는데, 알뜨르비행장 활주로 부근에 방송국차량들이 다시 모여있습니다. 그래서 이왕 기다리던 거 계속 기다려보자고 했는데, 남쪽 가파도 너머에서 해경 헬기 2대가 급하게 날라오고 있습니다. 뭐지? 유명한 사람이 오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첫번째 헬기는 시동도 멈추지 않고 급하게 부상자를 119 구릅대로 옮깁니다. 그리고 두번째 헬기에서는 4구의 시신이 옮겨집니다.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그냥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참고. 침몰 갈치어선 생존·사망자 제주 도착…수색은 난항)

멀리 보이는 산방산.

길/차에서 보는 가파도. 오는 봄에는 청보리를 보러 가파도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알뜨르비행장 주차장에 마련된 비행기조형물.

멀리 보이는 산방산과 더 멀리 보이는 한라산/서벽, 사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앞에 보이는 말인데... 너무 작게 나왔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의 비행기 격납고. 멀리서 볼 때는 별로 크게 보이지 않았는데, 근처에서 보니 생각보다 엄청 컸습니다. 이런 흉물스러운 것들이 여전히 주변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주의 자연을 파괴한 그들이 우리의 역사와 민족정신도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의 망령.. 우리는 언제 온전히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친몰어선의 사망자를 옮기는 해경 및 이를 보도하는 취재진들.

조금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고, 에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방주교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방주교회는 중문쪽 중산간에 위치해있습니다. 재일건축가 고 이타미준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주변에는 그가 함께 설계했던 물 바람 돌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제한구역 (회원제)이라서 들어가볼 수는 없습니다. 방주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했기 때문에 주변에 물로 채워져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물의교회와 은근히 비교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다오의 노출콘크리트를 좋아하지만, 각자의 개성에 의해서 건축된 우수한 작품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는 이타미준이 설계한 건물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들 (섭지코지), 그리고 승효상씨의 작품 (추사김정희추모관)이 모두 있습니다. 지금 철거 찬반논쟁이 한참인 멕시코 건축가 고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카사델아구아도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하는 첫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을 따라다니며 감상하는 것도 좋은 여행코스가 될 듯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주의 본모습/본질과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는 마구잡이 난개발이 너무 진행되는 것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강정의 해군기지가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자본에 의해서 개발되는 한라산 중산간 (해발 200~600m) 지역도 문제입니다.

이타미준의 방주교회.

방주교회 내부의 예배당.

물과 방주의 대비.. 겨울이라 물은 거의 채워져있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방주교회. 교회가 여전히 인간들을 죄악에서 보호하고 구원해줄 그런 방주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써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비기독교적인 기독교인들의 만행에 마음이 아픕니다.

나름 의미있는 하루였습니다. 좋은 것도 먹고 좋은 것도 구경했지만... 시간이 멈춘 도시, 오래된 것은 무조건 부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넣으려는 모습, 과거의 만행과 여전히 이러지는 아픔, 누군가의 가족의 죽음, 건물에 갇힌 예수님의 눈물... 그렇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