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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하늘을 보고 싶다.

제주는 산/오름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그냥 여행이 아니라 살다보면 느끼는 것이 하늘이 좋다는 거다. 섬이라 날씨가 변화무쌍하지만 날씨가 좋을 때의 하늘은 매번 감동이다. 진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좋고, 상상력을 마구 돋우는 뭉게구름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형형색색 변하는 노을이 백미다. 경상도 촌구석이나 도심지에서는 산과 건물에 가려져 지는 해를 제대로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저녁 노을을 본 후로 내가 제주에 왔음을 실감했었다. 매일 스치는 풍경이지만,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면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게 되고,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안타깝다. 더 좋은 뷰/사진을 얻기 위해서 바다도 나가보고, 더 높은 곳도 가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이 늘 아쉽다. 여담이지만 특히 더 좋을 때는 선글라스를 끼고 볼 때다. ^^ (노을 사진을 찍을 때는 카메라에 필터를 끼거나 후보정을 좀 심하게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사무실을 GMC에서 하늘과 조금 더 가까이 닿은 다음스페이스.1으로 옮기고 나서 그런 저녁 노을을 보는 것은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한다.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문득 최근에 노을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옥상이나 건물 밖에서 자유롭게 노을을 감상하지는 않았지만 사무실 이전 초기에는 북서쪽에 위치해서 매일 지는 해를 등뒤로 느끼며 살았었는데, 두달 전에 남동쪽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로는 그런 호사를 못 누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능동적으로 시간 맞춰서 지는 해를 볼 수도 있었을텐데, 수동적인 자세로는 절대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저녁 노을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건물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그 밀폐된 공간에서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가? 하늘부자가 왜 이 좁아빠진 땅에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안에 갇혀서 밖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제주의 자연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에 갇혀서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나 잘난 맛에 도취되어 더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줍짢은 엘리트주의나 선민사상, 선지자적 마인드로 더 넓고 낮은 세상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늘을 막고 있는 이 건물보다 세상과 나를 차단하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이 더 두텁고 높다. 부끄럽다. 조그만 충격에도 깨어져버리는 껍질 뒤에서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샤워하면서 이명호 작가님의 바다 연작이 생각났다. 사막의 바다를 생각하는 순간,

사막은 그저 모래가 많은 황량한 땅이 아니다.
사막은 물이 없는 바다고 풀이 없는 초원이다.
지금 그대는 바다와 초원을 꿈꾸고 있는가?

우리내 삭막한 인생은 마치 사막과도 같다. 그 사막을 보면서 늘 불평한다. 왜 내 인생에는 모래밖에 없는거야?라고... 그런데 사막은 그저 모래만 채워진 버려진 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물이 빠진 바다의 모습이 사막이고, 풀만 없는 더 넓은 초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버려진 삭막하지 않다. 그저 몇 가지가 부족할 뿐이다. 그걸 채워넣으면 다시 생명의 기원인 바다가 되고 삶을 품는 초원이 된다. 우리 삶의 물과 풀을 찾아서 다시 채워넣야야 한다. 나는 나를 사막이 아닌 바다와 초원으로 만들고 싶다.

에코랜드의 기차를 타고 돌아보는 중.

다희연에 다녀오는 내내 하늘이 붉게 물들었는데 운전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집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아름다워서 찍은 한 컷. 그냥 볼 때는 입간판이 거슬렸는데, 사진에서는 나름의 장치가 된 듯하다.

어느 여름날 그저 노을 사진을 찍고 싶어서 저녁을 먹자 마자 바다로 달려갔다.

(같은날) 이날의 보라빛 노을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있다.

이호테우해변에서의 일몰. 이호해변이 가장 가깝고 여러 행사도 있어서 이호에서의 일몰/노을 사진이 많은 편이다.

오설록녹차박물관에서.. 구름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태양빛이 아름다웠는데, 그것을 사진에 제대로 담지 못해 여전히 아쉽다.

탐동 광장 방파제에서.. 지는 해와 부푼 기대를 안고 제주로 오는 사람들.

(같은날) 탑동광장에서.. 염장질이지만 이 순간을 사진에 담아서 볼 때마다 뿌듯하다.

서쪽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던 중에...

이건 저녁 노을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제대로 못 잔 상태로 축구를 나갔던 날이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차를 타고 한라산 위로위로 올라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리고 이때 제주에서 전원주택을 구입하겠다고 제주 전역을 돌아다니던 때이기도 하다.

이호테우해변에서의 일몰. 태양은 잠시 하늘을 떠나 바다로 간다. 사진에서는 선글라스를 끼고 봤던 느낌이 안 난다. 그렇다고 이 사진을 선글라스를 끼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GMC에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밖에 다녀오면서 한라산에 이상한 모양의 구름이 둘러있었다. 구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눈에 비친 모습이 사진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너무로 비쳐오는 태양빛은 여전히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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