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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100이라는 세계에서...

어느 누구도 100을 전부 볼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능력이 좋아도 2~30이상을 보기는 힘들다.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5정도는 볼 수 있을 거다. 물론 1미만도 있겠지만. (PKH처럼)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평균을 사용하면 100이라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0정도는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10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그 10을 마치 100인양 착각해서 사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머지 90은 세상에 존재치도 않은 것처럼 생각한다. 다행인 점은 평균적으로 10만큼을 보지만 모두 같은 영역의 10을 보지 않는다는 거다. A와 B는 10밖에 볼 수 없지만 그들이 겹치는 영역은 5이고, 나머지 5는 서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A와 C도 10밖에 보지 못하지만 이들은 서로 겹쳐서 보는 곳이 0이어서 둘은 완전히 다른 10의 세상을 본다. 개인의 능력은 10밖에 되지 않지만 모두가 다른 영역의 10을 볼 수 있는 사회는 아름답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줄 수가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각자의 힘은 10이지만 최소 10명이 모이면 수치상으로 100의 세상을 모두 채울 수가 있다. 그런데 10밖에 볼 수 없는 개인들이 모여서 모두 같은 10을 획익적으로 보는 또는 볼 것을 강요받는 그런 집단도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집단들이 합쳐도 10밖에 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소위 전문가라는 무리들이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리고 특수한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모인 무리들도 그렇다. 보통 이들을 이익집단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정치집단은 이익집단과 다르다고 배웠다. 그런에 요즘 정치집단들을 보면 이익집단을 뛰어넘는 초이익집단인 것같다. 굳이 새누리를 예로 들지는 않겠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특정 기능에 특화된 팀에서는 그 팀의 전문성 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팀들이 모여서 큰 회사를 이루기 때문에 어쩌면 문제가 별로 크지 않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될 수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경영진들, 이사회, 또는 리더모임이 획일적인 10의 집단으로 되는 것을 종종 본다. 어떤 결정이 그들의 스펙트럼 내에서 정해진다. 그래서 나머지 90의 직원들의 행복이 희생되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집단일수록 소위 말하는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다. 포퓰리즘이란 '현상에 대해서 1차원적인 해법만 제시하고 생생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강압적이다. '니 들이 뭘 알겠어' '다 니들을 위한 결정이었어' 등으로 무시하기도 하고 자기 위안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본다. 나도 아무리 잘난 척 하더라도 100중에 10이상을 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와는 조금은 다른 10을 본다. 겹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가능하면 겹치지 않기를 바라며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보는 부분에서는 옳다. 그들도 그들이 보는 부분에서 옳은 결정을 내렸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욕했지만 후회되기도 한다. 그냥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려니... 지난 글에서 밝혔던 '우리는 여전히 파편만 보고 있다'라는 말도 누구도 100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부러 문단을 나누지 않았다. 이 또한 글을 적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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