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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네트워크 효과 깨기

작년에 <벨연구소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했던 글입니다. 벨연구소는 잘 알다시피 미국의 통신회사 AT&T에서 전화통신과 관련된 산업연구를 하기 위해서 세워진 사설연구소입니다. AT&T가 미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현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의 기초가 되는 연구성과를 냈습니다. 화상전화와 무선전화 등의 전화 관련된 기술 뿐만 아니라, 반도체/트랜지스터, 레이더, 메이저/레이저, 광섬유, 위성 등의 수많은 과학/공학 업적이 벨연구소가 없었다면 그 기술이 세상에 나오는 시간이 몇년, 몇십년은 뒤쳐졌을 것이고, 현대의 ICT기술도 엄청 낙후되었을 것입니다. 사설연구기관이지만, 모기업의 독점적 지위 때문에 국가연구소급의 연구를 수행했고 또 대부분의 연구결과들이 민간에 전해졌습니다. 벨연구소의 히스토리를 읽으면 생각해볼 내용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화상전화와 무선전화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에 대해서 생각해볼까 합니다.

글에 앞서, 위키백과는 네트워크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의 효용이 한 개인의 소비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용자들의 소비에도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네트워크 외부성이라고도 한다. 다시말하면, 구매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그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사용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상호 연결의 수가 증가할 수로 전체의 효용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를 말합니다.

최근에 스마트폰이나 인터넷폰의 등장으로 화상전화가 많이 보급되고 있지만, 최근에 개발된 기술이 아니라 이미 1960년대에 벨연구소에서 시제품 및 상용화를 했던 기술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통신 및 위성기술의 발전과 함께 무선전화도 상용화되었습니다. 80년대나 90년대의 영화를 보면 간혹 화상전화나 무선전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실제 기반기술은 60년대에 이미 발명되었던 것들입니다.

화상전화와 무선전화가 연구된 시점에는 무선전화보다는 화상전화에 거는 기대가 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래서 화상전화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많은 연구비를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다소 저변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화상전화는 실패한 기술로 남아있습니다. 애플의 페이스타임이나 기타 이통사들의 다양한 화상서비스들이 등장했지만 보이스에 비해서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사생활 보호 등의 심리적인 저항선 때문에 화상전화는 생각과는 반대의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멀리 떨어진 손자, 손녀의 얼굴을 보기 위한 용도 외에는 그닥 잘 활용되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무선전화의 경우 초기에는 다소 느리게 기술이 개발되고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유선전화를 뛰어넘는 성공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화상전화와 무선전화의 이런 명암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요?

답을 하자면 둘다 네트워크 효과 때문입니다. 두 기술 모두 초기에 네트워크 효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선전화는 극복했고, 화상전화는 실패했습니다. 일단 초기의 화상전화의 경우 스크린 단말기의 가격도 비싸고 모양새도 좋지 않아서 잘 보급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네트워크 효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폰에는 기본적으로 화상기능이 제공되는데도, 화상전화의 사용빈도/사용성이 낮은 것은 -- 앞서 언급해듯이 -- 좀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무선전화도 초기에는 벽돌폰이라는 별명이 붙었듯이 크고 투박했으며 가격도 매우 비쌌습니다. (꾸준한 연구개발과 개선이 있었기도 하지만) 초기의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유선전화보다 더 사용성 및 커버리지가 높은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깊은 산이나 사막과 같이 인구밀도가 낮은 오지에서도 무선통신이 가능해서 그런 물리적인 장벽까지도 무너뜨렸습니다. 제대로된 네트워크 효과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화상전화의 경우 화상전화 간의 네트워크만 만들어지지만, 무선전화의 경우 기존의 유선전화의 네트워크를 확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화상전화를 위해서는 상호 간에 화상단말기가 필요하지만, 무선전화 사용자와 통화하기 위해서 굳이 무선전화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으로 무선전화에서 무선전화로만 전화를 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무선전화는 기존의 유선전화 네트워크를 그대로 흡수해버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큰 네트워크가 갖춰졌다는 것입니다. 무선전화는 유선전화 네트워크를 흡수했고, 유선전화는 무선전화 네트워크로 확장했습니다. 유무선 모두에게 긍정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 깨기'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실은 기존의 네트워크를 흡수해서 자신의 네트워크로 재편하는 것입니다. 화상전화와 무선전화의 승패는 바로 여기에서 갈렸습니다.

조금은 다른 의미지만, 이미 확고하게 갖춰진 플랫폼이 있다면 그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이용해서 기능을 확장해가는 그런 레버리지 전략을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고민해봐야 합니다. 특히 최근의 스마트폰 환경에서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특화된 서비스를 만들어낼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기존의 사용자층을 그대로 흡수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수가 워낙 다양해서 어느 한 전략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개념적 완성도나 전략적 타이밍 등에 따라서 서비스의 승패가 결정나는 경우가 많지만, 기존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는 승패의 속도를 높여줄 것입니다. 지금은 카톡으로 평정되었지만, 대한민국에 아이폰이 처음 보급되던 2009년 말에 주소록 기능만 갖는 마이피플이 출시되어 사용자를 끌어모은 후에 메시지/전화기능이 점진적으로 추가되었더라면 현재 (무료)문자 시장의 지형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물론, 마플의 실패는 전략적 타이밍을 놓친 것 외에 ID연동 등의 다른 판단미스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인가 아니면 기존 사용자들에게 확장된 경험을 줄 것인가? 인터넷 초기에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에서 그런 고민을 했듯이, 요즘 모바일 시대에는 온라인과 올라인/모바일의 경계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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