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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제주에서 여권 갱신하며..

이런 사소한 것을 굳이 블로그에 글을 남겨야하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사소한 일 속에서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또 글을 굳이 남깁니다.

제주도로 내려오기 직전인 2008년도 초에 포항에서 여권을 갱신했던 것같다. 군미필자로 전문연구요원을 하는 중에는 보통 국방부의 허락을 받아서 단수여권만 만들 수 있는데, 2003년도에 미국에 잠시 프리닥을 가면서 체류기간도 1년이 넘을 것같고 그 이후에도 학회에 자주 갈 것같아서 서류를 보강해서 5년짜리 복수여권을 만들었다. (그 전에는 학회 갈 때마다 병무청에 들러서 허가를 받아서 1년 단수여권을 계속 만들었음. 그래서 1년 단수여권에 미국 관광비자를 받아서 이후에 미국에 갈 때마다 여러 개의 여권을 두껍게 포개어나가곤 했음) 2003년도 받은 복수여권을 갱신했던 것이 2008년도 초였는데, 또 5년의 시간이 흘러서 여권을 갱신하라는 우편이 왔습니다. 2008년도에 여권을 갱신한 이후에는 한 번밖에 외국에 나가지 못했다는 슬픈 사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해서 오늘 여권을 갱신하고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1번 갱신된 여권이라, 10년 복수여권으로 신규발급받고 왔습니다.

여권을 갱신하라는 우편을 받고 가장 먼저 걱정된 부분은 최근 6개월 내의 증명사진을 들고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권사진의 규격은 흰 배경에 양쪽 귀가 모두 보이도록해서 3.5 x 4.5 cm입니다.) 입사한지도 오래되고 하니 증명사진을 사용할 일도 없고, 최근에는 웬만하면 그냥 디카로 사진을 찍다보니 인화된 사진 자체가 없습니다. 이런 여권 사진은 그냥 도청/시청 내에서 바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바로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전에 민원인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렇게 도청 내에서 바로 사진을 찍어서 여권에 붙이도록 하는 입법화를 추진했지만, 영새 사진관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전에 포항시청에서 여권을 갱신할 때는 (미리 사진을 준비해갔지만) 시청 내에 즉석사진부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어서 제주 도청에도 그런 즉석사진부스가 있는지 문의해봤는데 (국번없이 120번으로 전화걸면 제주도청 민원실로 연결됨) 제주도청 내에는 그런 설비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청 근처의 사진관에서 바로 사진을 찍어서 인화해서 갔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사진관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졸업식 장에서 예전에는 사진사들이 돌아다니면서 액자사진을 찍어서 우편으로 보내주는 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그냥 디카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서로 고유하는 바람에 사진사들의 밥줄이 끊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졸업식 외에도 유명 관광지에는 예전에는 사진사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그냥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권용 증명사진까지 디지털화되면 그런 사진사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질테니, 어쩔 수 없이 민원인들의 불편을 감내하면서 그들은 여권사진 디지털화에 반대를 했던 것이 이해가 갑니다. 예전에 사진관에 가면 필름 원판에 한두장 찍어서 빠르면 몇 시간 또는 며칠 내에 다시 찾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거의 10분 만에 모든 과정이 끝났습니다. 필름원판에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관에서도 그냥 DSLR로 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포토샵에서 바로 열어서 그 중에 가장 괜찮은 사진을 한장 선택해서, 이런 저런 보정작업을 거쳐서 바로 포토프린터로 사진을 인화프린트했습니다. 포토샵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관의 모습도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인화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사진을 보정하는 것이 주 목적으로 바뀐 듯했습니다. 아기 돌사진이나 결혼식 등의 행사 사진을 찍어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서 포토북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진관의 주 업무가 된 듯합니다. 그리고 사진관 한켠에 마련된 화장도구나 의상들을 보면 사진관을 스튜디오라고 부르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사진을 찍고 보정하고 프린트하는데 20,000원이 소요됨. 조금 비싸다는 느낌도 받으면서 다음에는 내가 그냥 찍어서 가져갈까?라는 고민도 잠시했지만, 그들도 먹고 살아야하고 또 전문성에 대한 수고비를 주는 것을 너무 아깝게 생각하면 안 될 것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진을 준비해서 제주도청 별관에 갔습니다. (서귀포는 서귀포시청에서 여권업무를 해줌) 바로 여권(재)발급 서류를 작성해서 10년 복수여권을 신청했는데, 55,000원의 인지세가 필요했습니다. 경북도청에서 여권을 만들 때는 옆에 농협에 가서 직접 인지필증을 사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제주도청에서는 여권을 신청하면서 신용카드로 바로 결제할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경북도청에서는 2003년도에 마지막으로 여권을 발급받았으니 이제는 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1번 갱신된 여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재발급 (25,000원)이 안되서 어쩔 수 없이 신규발급 (55,000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권은 비즈니스데이로 5일 이후에 도청에서 직접 수령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도청민원실은 오전 9시부터 문을 연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여권을 신청하면 영문이름을 띄어서 표기했는데, 이제는 붙여서 표기해준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예전의 제 여권은 모두 'BU HWAN'으로 표기되어있는데, 이제는 'BUHWAN'으로 기본 표기된다고 합니다. (물론 여전히 띄어쓰기도 가능함) 지금 신용카드에도 'BU HWAN'으로 띄어쓰기되어있는데, 어쩌면 나중에 해외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미리 여행 전에 카드에 표기된 이름을 여권의 그것에 맞도록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여권갱신을 위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여권을 가져가야하고, 신규발급이라면 당연히 주민증/면허증 등의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기존 여권은 현장에서 바로 VOID 처리합니다.

세상이 점점 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간편해지고 있다는 것도 실감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여권사진도 그냥 도청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바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진사들도 같이 먹고 살아야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난 주말에 대형마트들이 정기휴업을 하면서 겪은 불편을 생각하면 너무 규제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면서, 또 이렇게라도 해서 주변상권을 살릴 수만 있다면 나의 작은 불편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의 편의와 우리의 공생 사이의 갈등은 사회가 변해가면서 더 크게 부각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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