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옥을 옮긴 후에 사람들이 당황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화장실의 위치입니다. 대부분의 화장실이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 중간에 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문에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남성과 여성을 형상화한 표식이 붙어있습니다. 함께 놓고 보면 치마를 입고 있는 날씬한 여성과 상체근육운동을 열심히 한 남성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를 따로 놓고 봤을 때는 (특히 남성형상화) 도대체 이 표식이 뭘 의미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건물에 상주하는 이들은 그래도 익숙해지겠지만 처음 건물을 방문한 사람들은 적절한 화장실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임시로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이라는 스티커를 붙여놨다가, 이제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M자와 W자를 형상옆에 조그맞게 붙여서 남성/여성화장실임을 알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화지만 위의 아이콘을 보면서 우리가 서비스를 만들거나 기능을 추가하면서 너무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서비스/기능을 기획하고 개발한 사람들은 왜 그런 기능을 추가했고 그런 서비스를 기획했는지에 대한 공통된/공유된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서비스/기능을 처음 접한/사용하는 사람들은 왜 이런 모호한 기능을 넣었을까?라며 당황해하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의 많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UI에서 아이콘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아이콘은 충분히 간단하면서도 해당 기능/서비스를 확실히 각인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비스나 아이콘/메뉴 등을 만들면서 너무 단순화시켜서 해당 기능/서비스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시켜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너무 상세하게 묘사해서 사용하는데 불편함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해서 넣은 기능이지만 사용성이 떨어진다면 추가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족(蛇足)이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일을 덧붙여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중국 초나라의 영윤 소양이 위나라를 치고 다시 제나라를 치려할 때의 일화입니다. 제나라의 세객 진진이 소양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 사람이 술 한 대접을 놓고 가장 먼저 뱀을 그린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내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 한명이 가장 빨리 뱀을 그리고, 왼손으로 술대접을 들면서 오른손으로 뱀의 발까지 그리면서 '나는 발까지 그렸다'라고 뽐내면서 술을 마시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뱀 그림을 끝내고 그 술대접을 빼앗아들면 '뱀은 원래 발이 없다. 그런데 자네는 발까지 그렸으니 그건 뱀이 아니다'라며 술을 마셔버렸습니다. 장군은 지금 위나라를 치고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나라의 최고 벼슬에 계시는 장군이 거기서 더 얻을 것이 무엇이며, 만에 하나라도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뱀의 발을 그리려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소양은 과연 그 말이 옳다고 여겨 군대를 철수시켰다라는 일화에서 나온 성어입니다. '사족'은 전국 시대인 초나라 회왕 때의 일화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던 불필요한 것을 추가하는 것이 일을 그러친다는 말해주는 성어입니다.

위의 화장실 마크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콘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W와 M자를 붙였다고 말햇습니다. 그런데 화장실문에 M/W자를 붙이면서 남자샤워실 (못 들어가봐서 모르겠지만 당연히 여자샤워실도 그렇겠죠.) 내에 있는 화장실 문에도 M자를 붙여놨습니다. 당연히 남자샤워실이라면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그 내부에 있는 화장실이라면 당연히 남자만 이용할 것이 분명한데 굳이 샤워실 내의 화장실 문에도 M/W를 붙여서 남/여구분을 했어야 할까요? 금남 또는 금녀 구역 내에서의 W와 M자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즉, 불필요한 서비스 또는 기능입니다. 서비스나 기능을 추가하다보면은 너무 모호하게 표현해놓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진짜 사용자들이 필요로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그냥 덧붙여놓은 것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를들어 간단하게 사진을 찍어서 몇 가지 필터를 적용해서 공유하는 모바일앱에서, 불필요하게 수십가지의 필터긴능을 넣어서 무슨 필터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든 분들은 당연히 좋은 의도로 추가했지만, 앞서 모호한 기능과 같이 사용성만 떨어뜨리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미 모바일 서비스가 대세가 되었지만, 모바일 환경에 맞는 UI나 기능을 개발하지 않고, 그저 PC 환경에서 잘 맞던 UI/UX를 고집해서 정이 가지 않는 서비스/앱들을 종종 봅니다.

모호한 기능이나 불필요한 기능... 기획자들은 정말 욕심쟁이입니다. 개발자들도 귀찮아하면서도 기획자들이 원하면 모든 기능을 구현해줍니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정작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기능이 아니라, 꼭 필요한 기능입니다. 여러 기기들이 하나의 기계 (특히 스마트폰)으로 통합되는 시대지만, 모든 것이 하나로 묶이지 않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더욱 복잡하고 다원화되면서 모호함과 불필요함을 최대한 제거한 그런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더욱 어필을 할 것입니다. 많이 만드는 것보다 잘 만드는 것.

추가 (2012.05.15). 지금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를 읽고 있는데, 이 포스팅에 맞는 문구가 있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어떤 도구에 신호나 문구가 붙어 있다면 그 디자인이 나쁘다는 뜻이다.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P.05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unknown0.tistory.com BlogIcon Unknown_ 2012.04.11 13: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 솔직히 회사사람들(일부겠지만)의 센스에 좀 실망했습니다;;
    모호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정도의 픽토그램은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전에 띡 붙었던 A4의 프린트 뿐만 아니라 지금 붙어 있는 M/W도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