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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비용에 대한 생각.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일요일 오전 일정은 족구동호회 모임과 예배참석으로 정해져있지만, 오후에는 그날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가변입니다. 어제는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도 많이 불고 쌀쌀해서 그냥 사무실에 잠시 들러서 이번 주에 회의하기로 데이터 분석작업을 (분석 내용은 간단하지만 데이터 사이즈가 커서) 미리 해두로 했습니다. 그렇게 뿌듯하게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놓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서야 꼭 필요한 내용을 추가하지 않고 분석프로그램을 돌려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무실과 집 사이가 약 2km로 5분 거리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사무실로 돌아오기에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오늘 다음 제주 오피스가 기존의 오등동의 GMC Global Media Center에서 영평동의 제주첨담과학기술단지 내에 새로 지어진 다음스페이스닷원 (다음스페이스워/Daum Space.1)으로 이사해서 첫 출근일입니다.)

결국 어제 실행했던 프로그램을 조금 수정해서 지금 다시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어제 제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래서 결과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한 일이 진짜 아무런 소득이나 성과가 없는 일이었을까요? 만약 어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분명 어제와 같은 조건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지금 한참 실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가 다 나온 이후에야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오늘 아침에 했던 재작업을 오늘 오후에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제 허비했다고 생각되는 그 시간과 노력이 오늘 오전 또는 오후에 분명 발생했을 그런 헛수고를 덜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어제의 그것은 완전 헛된 시간과 노력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A라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A대신 선택할 수 있었던 B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 또는 비용의 차이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비용일 때도 있지만 심리적인 비용이 강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회비용이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행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모든 것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아깝게 얻지 못한 기회에 대해서 늘 한탄하고 아쉬워하는 것같아서 별로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비용기회 Cost Opportunity (비용을 투입해서 얻은 기회와 경험)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B를 하지 못함으로써 여러 기회비용이 발생했지만, A를 선택함으로써 얻었던 경험과 가치가 지금은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B는 어차피 상상 속의 결과지만 A는 현실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집행된 (기회)비용을 매몰비용 Sunken Co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비용을 집행했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뜻합니다. 이 매몰비용은 다시 회수가 불가능한데 사람의 심리에는 큰 영향을 줍니다. 현재는 A라는 것을 계속 하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래서 과거에 B를 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했던 기회비용/매몰비용이 너무 커서 지금 A를 그만 둔다면 왜 과거에 B를 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자신의 과거 선택을 아쉬워하고 그래서 그렇게 매몰된 비용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A를 그만두고 B를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 얻게 될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지금 당장 A를 그만 두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매몰비용 때문에 A를 선택했던 과거가 아쉽고, 미래의 기회비용 때문에 지금 당장 B를 시작해야될 것같고... 우리가 한번도 가져보지도 못했던 또는 가져보지 못할 과거의 매몰비용과 미래의 기회비용.

비용은 단순히 수치적 가격이 아니라 심리적 가치를 반영한 것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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