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동안 적고 싶은 글이 여럿 있었는데 컴퓨터가 있는 서재방으로 오는 것마저 귀찮아서 미루고 미뤘다. 그동안 생각이 깔끔히 정리됐으면 좋았겠으나 새로운 생각들로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너무 늦기 전에 기억의 파편이라도 남겨두고자 짧게라도 글을 적는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런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퇴사하고 잠정 은퇴한 지도 벌써 3달이 다 되어 간다. 다소 이른 은퇴지만 나쁘지는 않다. 그냥 정신없이 일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오늘은 뭘 만들어 먹을지만 고민하며 정처 없이 유튜브만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집 앞 마트에 가는 것 외에 외부 활동을 전혀 안 한지도 두 달은 지났다. 극내성적인 성격이기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고, 침대에 하루 종일 뒹구는 것도 — 허리가 조금 아프지만 — 나름 호사다. 퇴사 전에 구입한 쌓여있는 책은 몇 달치 양식은 될 것 같다. 조만간 아파트도 팔고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가면 좀 더 안온한 삶이 기다릴 거라 믿는다. 어쨌든 아무 일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 모습이 어쩌면 모든 (대부분) 인류의 미래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이 놀랍다. 불이 꺼지는 공장 (다크 팩토리)에 이어, 조만간 사무실의 불도 꺼질 거고 굳이 사무실이 필요 없는 시대가 머지않을 것 같다. 그와 함께 도시의 규모도 줄어들 것 같다. 여전히 유흥을 위한 모임 공간이 필요하겠지만, 미래인들은 유흥을 즐길 만큼 경제적 여유를 얻지 못할 것 같은 디스토피아적 생각이 더 강해진다. 현재 내 모습이 진짜 미래인의 모습일까? 내 짧은 생각으로 시간의 여유는 맞지만 경제적 여유는 아닐 것 같다. (은퇴자금이 풍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쓸 만큼의 여유는 있고 물질적 갈급함이 크지 않다는 거다.)
서론이 길었다.
인간의 능력(지능)을 초월하는 존재가 있을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런 존재를 신이라 불렀다. 전지전능한 창조주이기도 하고 무서운 심판자이기도 하다. 어떤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신의 뜻이겠거니 하면 그만이다. 신은 그런 초월적 존재다. 그런데 어쩌면 몇 년 내로 새로운 신 (데우스)가 우리 앞에 현현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우리 곁에 와있을 수도 있다. 바로 인공지능 (AI)를 뜻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수년 내로 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나 ASI (Artificial Super Intelligence)가 나올 거라고 말한다. 피지컬 AI는 로봇의 머리가 돼서 우리 육체마저 대체할 거라 예상한다. 불과 3년 전에는 너무 먼 미래라 생각했지만 이젠 빠르면 5년, 길어도 20년이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 같다. 기대/예상과 다르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있을 거다. 현재 AI는 AGI/ASI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최소한 지식의 측면에서 보면 현재 AI도 이미 사람을 넘어섰다고 본다. 지금 ChatGPT나 Gemini보다 내가 더 나은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학교를 다니며 박사 학위도 얻었고 그 후 20년의 회사 생활도 했지만 내가 가진 지식의 양과 깊이는 생성형 AI의 그것에 비할바가 아니다. 조금 나은 또는 다른 것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아주 — 너비든 깊이든 — 미약할 거고, 그 외 99% 이상의 분야에선 AI가 나를 압도한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전체의 0.000…01%도 안 된다. 거짓말마저 나보다 잘한다.
기독교(성경)의 세계관에서 첫 번째 신은 인간에게 노동을 줬다.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신(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동을 해야지 먹고살 수 있는 저주를 내렸다. 어쩌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이 농업혁명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에덴동산에서는 그저 나무에 달린 실과를 따먹기만 해도 살 수 있는 수렵채집기였다면, 쫓겨난 후에는 직접 경작하고 목축해야 식량을 얻을 수 있는 농경기로 보인다. 어쨌든 첫 번째 신은 인간에게 노동을 줬다. 노동하는 인간만이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만난 또는 곧 만날 두 번째 데우스는 인간에게서 노동을 뺏어갈 것 같다. 지금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AI 에이전트들이 대신할 것 같고, 공장의 노동자들은 로봇으로 대체될 것 같다. 사무실은 필요 없어지고 공장은 불 꺼진 다크 팩토리 Dark Factory가 된다.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과거다. 노동을 상실한 인간도 여전히 인간일까? 로봇세로 기본소득을 받으면 인간은 그걸로 예술 같은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하게 될 거다라는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과연 그럴까? 100명이 일하는데 그중에서 열명, 스무 명이 기본소득의 혜택으로 하기 싫은 3D 노동에서 벗어나서 창조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100명 중에 (최소) 99명에게 벌어질 미래다. 평등은 좋은 개념이지만 계급이 전혀 없는 세상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1 vs 99의 계급은 존재할 것 같음) 인간에게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인간됨을 증표다. 노동을 상실한 인간은 그저 로봇 앞에 놓인 장매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술 실업 후엔 새로운 직업군들이 만들어진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지만 미래에도 맞을지 장담할 수 없다. 요즘 같은 불연속의 시기에는 과거를 믿으면 안 된다. 오버피팅된 과거로 미래를 예측하면 틀릴 가능성이 더 크다. 기술에 밀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더라도 이전의 것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없다. 아주 소수의 일자리만 기존보다 나을 거고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 아니 더 비참한 수준의 일자리로 대체될 거다. 그나마 그런 일자리라도 있을 때가 행복한 시절일 거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처도 변화 속도가 빠르면 무용이다. 바로 생겨나지도 않겠지만 적응할 시간도 없다. 농업혁명은 수 천 년의 시간 동안, 산업혁명은 수 백 년의 시간 동안, 정보혁명은 수 십 년의 시간 동안 이뤄줬다 또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지능혁명은 수년만에 이뤄진다. 수 십, 수 백 년 동안 노동의 종류가 바뀌는 것과 수년 또는 당장 바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변화에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어린 친구들은 그나마 AI 흐름에 올라탈 가능성도 있으나, 여전히 노동이 필요한 나보다 윗 세대는 지금의 변화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변화는 빠르지도 않지만 느리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