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수비드 (Sous Vide) 기계를 구입하고 싶어서 열흘간의 열병 후에 구입했다. 다른 사람들이 에어플라이어를 사는데 나는 수비드에 꽂혔다. 사람들이 공기라 할 때 나는 물이라 답한다. 갖고 싶다고 그냥 충동구매할 수도 없으니 사고 싶다는 욕구, 어떤 요리가 가능한지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산다면 어떤 걸 구매할지에 대한 결정 등의 복합적인 생각으로 열흘을 보냈다.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가 든 그날 고향집으로 내려가서 4일 동안은 그저 갖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욕구는 더 커졌다. 그리고 주중을 무사히 보내고 주말을 보내면서 어차피 구매할 거니 그냥 구매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제까진 쉽지 않았다. 유명한 격언 '망설임은 배송만 늦춘다'는 진리다. 어차피 구매하게 될 거라면 빨리 구매해서 최대한 우려먹어야 한다.
처음 수비드 요리의 개념은 영국인이 고안했고 이게 미국에서 기계가 만들어졌는데, 본격적으로 프라스 요리사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명칭이 Sous Vide라는 프랑스어로 정착이 됐다고 한다. (믿거나말거나)
오랜 고민 끝에 나는 WMF사에서 만든 Lono 2in1이라는 일체형 수비드 머신을 구입했다. 수비드 머신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서 내가 어떤 과정으로 이걸 구입했는지를 설명한다.
수비드 머신은 업소용과 가정용이 있다. 업소용은 100만 원을 훌쩍 넘으니 열외로 하자. 초기 가정용 제품들은 3~40만 원 선이었지만, 최근 들어 5~6만 원 정도면 저가 모델을 구입할 수 있다. 바 (bar) 형태로 된 것이 가장 흔하지만, 내는 고민 끝에 일체형을 구입했다. 수비드 요리의 원리가 간단해서 기계가 비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원리나 기능에 비해서 다소 비싼 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물을 데우는 장치와 물을 순환시키는 장치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설정 온도를 맞추기 위한 센서와 타이머 정도만 있으면 머신을 만들 수 있다.
늘 그렇듯 중국이 참전하면서 수비드 머신의 대중화(아직은 대중화까지는 아니지만)가 이뤄졌다. 보급형 수비드 머신을 검색하면 BioloMix 제품이 가장 많이 나온다. 세대별로 기능과 가격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5만 원에서 10만 원대 초반이면 구입할 수 있다. 처음에는 바이올로믹스의 3세대나 4세대 제품을 구입할까를 고민했지만, 다소 거친 평이 있어서 다음으로 알아본 제품이 Anova의 Nano 수비드 머신이다. 아노바가 가장 대표적이고, 돌고돌아 아노바로 온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후기를 보면 10만원대 초반이면 구입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110V 제품은 10만원대 초반인데, 220V 제품은 5만 원 정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제품이 비쌀 이유도 없는데, 220V라고 해서 또 더 비싼 데서 기분 상했다.
수비드 요리를 하려면 수비드 머신 외에 (아이스박스로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음), 식재료를 밀봉하는 진공팩과 데운 물을 담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그냥 큰 냄비로 대체해도 되고, 진공팩은 (수비드 요리는 보통 50~80도에서 이뤄지므로) 내열온도 100도인 지퍼팩으로 대체 가능하다. 어쨌든 제대로 갖추고 요리를 할려면 수비드 머신, 진공팩 (및 진공포장기), 수비드 용기가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국내 제조사 AIO에서 만든 올인원 수비드 머신이 눈에 띄었는데, 앞서 말한 진공포장기와 용기를 함께 제공하는 제품이다 ('머신 + 진공포장기 + 용기' 그래서 올인원). '나 혼자 산다'에서 김영광씨가 사용해서 더 유명해졌고 나름 유명한 요리 유튜버들도 사용하는 제품이다. 가격은 30만 원대로 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국산품이고 (A/S 고려) 필요한 액세서리가 함께 제공해서 나름 괜찮은 선택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용기의 뚜껑이 없다는 점과 포장기를 본체에 연결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들었다. 포장기는 수비드 요리를 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식재료 보관을 위해서 사용할 텐데 아무래도 본체와 연결해야 하는 점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보급형 진공포장기는 4~5만 원, 수비드 용기는 2~3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액세서리를 포함해서 바이올로믹스 제품을 구입한다면 15~20만 원, 아노바 제품은 20~25만 원, AIO는 35만 원 선이면 구입 가능하다. 그랬는데 이때 눈에 들어온 제품이 수비드 머신과 용기가 함께 있는 일체형 머신이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몇 제품이 눈에 띄는데, 중국어가 많이 적힌 제품보다는 독일에서 만든 게 나을 듯해서 WMF로 정했다. 진공포장기는 따로 구입해야 했지만, 용기 뚜껑도 있고 음식물을 고정하는 데크도 제공한다. 용기를 따로 분리해서 물을 버리거나 씻을 수 있는 점도 맘에 들었다. 아노바 머신을 알아볼 때 220V에 추가 금액이 필요한 데서 기분 상했는데 WMF는 콘센트 플러그가 220V인 점도 좋았다. 사람이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의외로 사소한 것이 결정적이다. 일체형의 단점이라기 보단 Bar형의 장점은 보관과 이동이 더 용이하다는 점이다. 캠핑을 좋아하고 캠핑에서 수비드를 하겠다면 Bar형이 더 좋겠지만, 만약 캠핑을 가야 한다면 저가형을 추가로 구입하면 된다.
'WMF 수비드 머신을 구입하자.'라고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선뜻 구매할 수가 없었다. 이때 기적의 논리를 만들어냈다. 수비드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음식을 진공 포장해서 보관해야 하지 않을까? 수비드 머신은 30만 원으로 비싸서 구입하지 않더라도 5만 원짜리 진공포장기는 구입해도 당장 큰 부담은 없잖아. 지금 구입해두면 나중에 수비드 머신을 구입할 때 그때 잘 활용하면 된다 등의 논리로 일단 6만원짜리 진공포장기를 주문했다. 인터넷으로 진공포장기를 막상 주문하고 나니 가끔 삭재료를 진공 포장해서 보관하는 것 외에 어디에 사용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혼자 살면서 음식을 많이/자주 남겨서 장기 보관할 일도 거의 없는데 진공포장기가 왜 필요하지?라는 의문이다. 수비드 요리를 한다며 진공포장이 필요하고, 그러면 진공포장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라는 답정너의 결론에 다시 이르렀다. 그래서 30만원짜리 수비드 머신으로 5만원짜리 진공포장기를 살렸다.
물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일단 기계를 구입하고 나면 얼마나 자주 해 먹을지 모르나 욕심이 생긴다. 진공 포장지도 미리 준비해놔야 하고, 평소 사용하던 식도는 고기를 써는데 적당치가 않다. 에프딕의 정육칼을 많이 사용하던데, 나는 비녹의 걸로 하나 구입했다. 수비드 후에 시어링을 위한 가스 토치도 눈길이 갔지만 이건 위험하니 안 사기로 했다. 바베큐용 분말 소스는 또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당장은 스테이크와 수육만 해먹을 거라서 일단 지갑을 열진 않았다.
수비드 요리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 전문가들이 고기를 실패 없이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점도 있지만 (보통 덜 선호하는 고기/부위도 평균 이상으로 만들어줌. 아래 사진은 보통 수육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앞다리인데 산방식당의 수육만큼 부드럽다.), 요리 중에 연기과 냄새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비드 후에 마이야르를 위한 시어링 하면서 연기와 냄새가 발생하겠지만 프라이팬에 그냥 구울 때보다는 적게 발생할 거다. 생선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지만 결어적으로 연기와 냄새 때문에 집에서 안 하는데, 수비드로 고등어 등의 생선 요리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수비드는 최소 1~2시간에서 하루, 이틀의 요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큰 단점이다. 스테이크는 한두 시간 수비드 후에 시어링 해서 바로 먹으면 되는데, 돼지고기 수육은 24시간 정도 필요해서 미리미리 계획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물 온도를 고르게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순환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잔 소음이 생각 외로 귀에 거슬리는 것도 단점이다. 외출하면서 준비한다거나 아니면 베란다나 빈 방 등 닫힌 공간에서 요리해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