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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은 임정욱님이 올린 “구글의 네스트 인수 의미“라는 블로그글에 남긴 아래의 페이스북 댓글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그리고 바쁜 분들을 위해서 이 댓글이 이 글의 핵심 요약이기도 합니다.

하루 이틀 지나니 의미를 공유하는 글/기사들이 많이 등장하네요. 모두 읽어보고 판단해야하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인텔리전트 시스템은 크게 모니터링/센싱, 디시즌 메이킹, 익스큐션 세부분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는데, 구글로써는 의사 결정, 즉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정점에 올라와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실행이 중요할텐데 (그래서 무인자동차나 로봇 등에 관심을 가지는 듯), 실행을 위해서는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모니터링/센싱의 영역이니 앞으로 이 쪽에 계속 투자하지 않을까요?

인텔리전트 시스템 Intelligent Systems의 개념에 대해서 처음 접했던 것은 2000년도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였습니다. 당시 지도교수님의 수업 초반에 다양한 인텔리전트 시스템에 대한 관점과 아키텍쳐 등을 1~2주정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벌써 10여년 전 수업이었고, 그런 개념들은 또 몇 십년 전에 나왔던 것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듯합니다.

* 사족. 지도교수님은 학력고사에서 두자리 등수를 받으셨던 분이고 전공하셨던 생산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맥을 잡고 계셨던 분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가 연구하던 시점/분야에는 (교수님의 주분야가 아니었기에) 기술적으로는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교수님이 이 글을 보시면 안되겠지만, 그래도 수긍은 해주실 듯) 그래도 밑에서 몇 년을 지내면서 당시에 배웠던 몇 가지 개념 및 사고의 틀은 여전히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지금 다루는 인텔리전트 시스템에 대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IDEF0 Functional Model을 이용해서 시스템을 모델링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제의 관계가 지식의 전수가 아닌 지혜, 또는 시각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교수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텔리전트 시스템을 다루면서 여러 논문들을 소개해줬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논문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작은 글씨로 약 40페이지정도되는) 너무 길어서 처음에 좀 읽다가 나중에는 그냥 그림만 대강 훑어봤던 논문입니다. 1991년도에 나온 “Outline for a Theory of Intelligence”라는 논문인데, 인텔리전트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논문 뿐만 아니라 다른 논문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표현/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인텔리전트 시스템의 구성요소는 모니터링/센싱 Monitoring/Sensing, 의사결정 Decision-making, 실행 Execution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모니터링 또는 센싱은 주변을 관찰해서 정보/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고, 의사결정은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다음에 취해야하는 액션을 결정하는 것이고, 실행은 결정된 방법에 따라서 실제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개념/구성요소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같습니다. 

** 기본적으로 의사결정은 소프트웨어적이고, 모니터링과 실행은 하드웨어적입니다.

지금 구글은 의사결정 및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업/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의미/패턴을 찾아내는데 아주 뛰어납니다. 물론 특정 분야에서 구글만큼/보다 뛰어난 기업 및 연구소들도 많이 있고, 비즈니스 생산성 도구 등에서는 구글은 여전히 다소 약새에 있지만, 적어도 많은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하는데는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텔리전트 시스템의 관점에서 구글은 이미 디시즌 메이킹에 대한 좋은 기술을 갖췄지만 —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인수/개발될 것이고 —, 웹 데이터 수집 및 검색 이외의 분야에서는 여전히 후발주자입니다. 즉 여전히 수집해야할 다양한 데이터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실행하는 영역은 여전히 무궁무진합니다.

구글의 M&A 히스토리를 보면 초창기에는 웹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분석 관련 회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로봇 관련된 회사들을 많이 인수했고, 또 네스트와 같이 IoT (Internet of Things 사물 인터넷) 관련 기업들입니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센싱 또는 실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구글에서 연구하는 분야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무인 자동차 기술도 처음에는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해서 셀프 드라이빙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해주는 듯했지만, 더 깊이 살펴보면 운전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여러 돌발 상황에 맞게 조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글 글래스도 대표적인 데이터 수집 기기이고, 오늘 (금요일) 나온 회로가 들어간 렌즈 또한 그렇습니다.

구글은 이미 소프트웨어 또는 데이터 분석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남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수집되고 분석된 데이터를 다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남아있습니다. IoT 기기들을 통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구글 데이터센터의 인프라를 이용해서 딥러닝 등의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로봇 및 자동차 등의 실행하는 것은 구글이 그 자체로 인테리전트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의 핵심 분야가 아닌 하드웨어 관련 기업들을 차례로 인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인수할 대상들도 비슷하리라 예측해봅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해 보입니다. 애플의 경우는 아이폰 등의 하드웨어에는 강점이 있지만, 여전히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서비스에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인수하는 기업들은 시리, 지도, 개인비서, 분석 등의 소프트웨어나 분석 분야의 기업들입니다. 모니터링이나 실행에 관련된 기술은 우수하지만, 디시즌 메이킹에 대해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 영역을 채워나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존이 킨들을 염가에 판매하고 쿼터콥터를 이용한 배달을 시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아마존의 뛰어난 AWS 및 추천시스템은 디시즌메이킹의 영역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정 버티컬에서 특화된 기업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궁극적으로 모니터링/센싱, 디시즌 메이킹, 그리고 익스큐션 각 영역을 채우는 쪽으로 향후 테크기업들의 인수/합병을 점쳐봅니다. 이런 분야에 대한 원천 기술이나 혁신적인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면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의 다음 인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국내의 기업들은 조금 더 당장 돈이 될 만한 것이나 마켓쉐어를 넓힐 수 있는 것 등에 한정되어있어서 많이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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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방송으로 대변되는 올드미디어와 인터넷/SNS로 대변되는 뉴미디어를 구분 기준은 수동성과 능동성에 있을 것같다. 올드미디어는 브로드캐스팅과 구독이라는 모델을 가지고 있고, 뉴미디어는 참여 및 협업이라는 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의 대표 서비스인 검색과 SNS도 능동성과 수동성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편의상 검색은 구글로, SNS는 페이스북으로 칭하겠다.

먼저 인터넷 참여 및 활동의 측면에서 구글은 수동형 서비스이고, 페이스북은 능동형 서비스다. 구글에서는 사용자가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검색창에 찾고 싶은 단어를 입력하고, 구글이 정열해서 보여주는 검색결과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클릭해서 보면 된다. 간혹 고급 사용자들은 검색옵션을 변경해서 2차 필터링을 가하지만 이는 TV 채널을 돌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는 모든 것이 사용자의 자유의지, 즉 능동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글이나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나 댓글을 다는 것 그리고 가장 흔한 라이크 버튼을 누르는 것 이 모든 활동이 사용자의 몫이다. 페이스북도 엣지랭크라는 뉴스피드랭킹 방식이 있지만 이는 그저 사용자의 능동성을 보조할 역할 밖에 되지 않는다. 구글의 검색옵션처럼…

반대로 정보의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구글은 능동형 서비스이고, 페이스북은 수동형 서비스다. 정보 습득이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런 측면에서 구글에서는 내가 찾고자 하는 검색어에 반응하고, 많은 결과 중에서 내 구미를 당기를 것을 선택한다. 검색이란 원래 이런 온디멘드 형식의 능동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인스탄트검색이나 지식그래프 등을 통해서 사용자의 능동성 즉 디멘드 이상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에, 페이스북에서는 나와 친구를 맺었거나 팔로잉/구독한 사용자/페이지의 글들이 그냥 뉴스피드 상에 흘러지나 간다. 친구끊기나 일부 사용자/애플리케이션 별로 뉴스피드에 노출여부를 제어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친구나 다양한 출처에서 쏟아내는 정보를 그냥 소비만하는 일종의 오프디멘드형의 수동형 미디어다. 최근에는 그래프서치 기능도 선보이고 뉴스피드 제어권한을 더 많이 부여하는 형태로 차츰 변하고 있기는 하다.

활동 측면에서는 구글이 수동형이고 페이스북이 능동형이라면, 정보소비 측면에서는 구글이 능동형이고 페이스북이 수동형이다. 그런데 앞서 언뜻 언급되었듯이 이제 서로가 서로의 영역으로 파고 들고 있다. 구글+를 비롯해서 구글은 더욱더 페이스북을 닮아가려하고, 그래프서치를 내세운 페이스북은 또 구글을 닮아가려 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모두 인터넷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둘 사이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상생의 길이 만들어질 것인지 내심 궁금하다.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다면 이 능동성과 수동성의 범주를 잘 생각해보고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괜히 어중간한 포지션의 서비스는 사용자들에게 혼란만 주고 제대로 각인을 시켜주지 못한다. 괜히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기존의 강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서비스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은 서비스의 기획 개발에서 핵심이다.

(2013.06.05 작성 / 2013.06.13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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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다보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이 글이 나에게도 그런 상황 중에 하나다. 내가 이 글을 쓸 이유가 전혀 없는데 또 쓰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난 원래부터 의지가 약한 사람이니 내 충동에 따르겠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절대 옹호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그 회사를 비판할 생각도 없다. 그냥 숫자에 관한 얘기만 하고 싶을 뿐이다. 그 뒷 이야기는 나는 모른다. 아니, 크게 관심이 없다. 난 그냥 숫자에 끌린 것뿐이다.

 오늘 애플의 삼성 제소 이야기에 완전히 묻혀버렸지만, 지난주 국내 대표포털인 네이버와 다음이 구글을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에 제소했다. 구글 안드로이드OS의 시장지배권을 남용했다는 취지의 제소였다. 나는 이 사건에 별로 관심이 없다.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도 없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구나 정도만 알려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모바일 시장과 시장지배권 2/3
 여러 신문기사에 언급된 것을 보니, 국내 시장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거의 70 %에 육박한다고 한다. 보통 특정 분야에서 시장지배권을 가진다고 말하면 특정 기업이 50%이상의 마켓쉐어를 가지거나, 소수의 기업들이 3/4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라고 한다. 안드로이드가 모바일OS 시장의 2/3를 차지하니 시장지배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머지는 iOS가 20%, WM이 10%, 그리고 나머지 RIM이나 심비안 등이 3%정도 차지한다 하더라) 그런데, 난 거짓말을 했다. 모바일OS의 2/3라니..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은 스마트폰OS 시장의 2/3가 맞는 말이다. 모바일 시장이라고 말하면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피쳐폰이라 불리는 일반 핸드폰도 포함되고, MP3플레이어나 PDP 등의 온갖 포터블기기를 모두 아우르는 표현이다. 그런데 기존에는 MP3플레이어나 PDP 등이 자체 OS를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은 그냥 iOS나 안드로이드OS를 임베드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스마트폰OS라기 보다는 포터블 스마트기기OS라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어쨌던/그래서, 피쳐폰을 제외하고, 국내 스마트OS의 2/3정도가 안드로이드OS라고 한다. 요는 모바일시장에서의 시장지배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 스마트기기시장에서 시장지배권을 가진다는 거다. 그런데, 피쳐폰에서 검색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뒤에 이어질 논의의 관점에서 보면 안드로이드OS의 모바일시장 지배권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닌 듯도 하다.

 모바일검색시장 15?
 전세계적으로 검색시장의 8~90%를 구글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곳이 몇 곳이 있으니, 바로 한, 중, 일 그리고 러시아 정도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70%, 다음이 20%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바이두가 75%정도 차지하고 있다(작년에 구글이 중국정부의 간섭 때문에 발을 뺄 당시만 하더라도 바이두의 점유률은 약 2/3정도였으나, 1년 사이에 10%이상 증가했다. 반대급부로 구글의 점유율은 1/3에서 20%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50%정도가 야후재팬이 차지하고, 구글은 최근에 많은 상승이 있었지만 아직 3~40%정도로 2위 업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구글이 약세를 보인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정확한 사실은 그냥 검색해보기 바란다. 그런데, 모바일에서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네이버의 검색점유률은 약 50%이고, 다음과 구글이 각각 15%정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네이트는 이보다 약간 낮은 10% 전후로 알고 있다. 이번 제소의 주요 골자는 PC 환경에서는 1~2%의 검색점유률을 가지는 구글이 모바일검색에서는 15% (PC검색점유률보다 10배정도 많음)의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구글이 안드로이드OS의 지배권을 남용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거 수치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모바일검색시장에서 구글의 점유률을 계산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좀더 친밀하게 준비가 되었다면, 모바일검색시장에서의 점유률이 아니라, 안드로이드OS 상에서의 검색점유률을 따졌어야 했다. 만약, 비안드로이드OS상에서도 구글의 검색점유률이 15%를 넘긴다면 어떻게 보면 이번 제소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비안드로이드OS (그냥 iOS라고 하자. 어차피 비안드로이드OS = iOS일테니)에서 구글의 검색점유률이 15%를 많이 밑돈다면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이용해서 시장을 왜곡시켰다고 볼 수도 있을 것같다. 그런데, iOS의 사파리에 탑재된 기본 검색엔진이 구글이다. (물론, 사용자가 야후나 빙을 선택할 수가 있지만, MS나 야후 직원이 아닌 이상에야 누가 귀찮게 다른 엔진으로 바꿔서 검색하겠는가?) 이 점을 고려한다면 iOS 상에서도 구글의 검색점유률이 꽤 높게 나올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물론, 아이폰을 처음 구입했을 때는 사파리를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사파리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다음앱스나 트위터 등에서 바로 URL을 클릭해서 웹브라우징을 사용한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웹브라우저보다는 그냥 앱을 통해서 인터넷을 많이 즐기는 것을 고려한다면, 검색점유률은 또 다른 얘기가 될 것같다. 그나마 네이버가 50%, 다음이 15%를 유지하는 것도 사용자들이 네이버앱이나 다음앱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내가 궁금했던 숫자는 단순히 모바일검색시장점유률이 아니라, 안드로이드OS상에서의 검색점유률과 iOS상에서의 검색점유률을 따로 집계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감으로 맹수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치밀한 데이터가 있어야 덫을 놓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OS가 탑재된 기기에서의 검색점유률을 따지는 것에 더해서, 구글검색이 기본미탑재 또는 기타 검색창이 기본 탑재된 옵티머스Q 등의 기기에서의 검색점유률 추이도 함께 분석했어야 했다. 이런 기기 (구글검색 미탑재 또는 기타검색을 동시 탑재 - 초기화면에서 큰 검색창을 뜻함)들에서의 검색점유률이 평균보다 낮다면 구글의 지배권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그러나, 역으로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높다면 논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일종의 자가당착.

 공개와 공짜.
 구글 안드로이드OS를 설명할 때 '오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보통 GNU 등의 오픈소프트웨어에서 사용하는 오픈의 개념을 그대로 안드로이드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난 늘 이게 맘에 걸렸었다. 그래서 다른 글에서 자주 안드로이드는 '프리' OS는 맞지만 '오픈' OS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분명 안드로이드OS를 사용할 때 라이센스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프리, 즉 공짜 OS인 것은 맞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오픈소프트웨어처럼 안드로이드OS의 소스코드를 마음대로 수정해서 재컴파일할 수가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소스코드가 공개되었기에 가능한 얘기다. 그런데 그렇게 커스터마이징된 소스코드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아주 극좌의 '오픈'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대부분 제조사나 이통사에서 안드로이드OS를 커스터마이징을 해서 시장에 내놓기 전에, 구글로부터 호환성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게 좀 맘에 걸리는 부분이다.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켜놓고 집에 갈려면 자습했던 내용을 검사받아야 된다는 거랑 비슷하다. 이 호환성 테스트에서 구글의 지배권이 형성된다. 물론, 그냥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철저한 도덕군자들은 선생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제 스스로 아무 것도 결정을 할 수 없는 바보들이 아닌가? 구글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라는 그 단순한 마크를 달지 않으면 마치 커스터마이징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걸로 소비자들은 인식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제조사들은 구글 호환성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둘째, 안드로이드OS 커널 관리는 구글에서 독점된다는 것도 맘에 걸린다. 일단 구글에서 진저브레드든 허니콤이든 기본 뼈대를 내놓은 후에야 개인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커널이 배포되기 전에, 개인들이 멋진 커스터마이징을 해놨더라도 전혀 새로운 배포판에는 포함될 수가 없는 구조가 극좌의 오픈과는 거리가 먼 것같다. 리눅스도 핵심 기관에서 판올림 커널을 배포하기는 하지만, 그런 판올림이라는 것이 사용자/개발자들로부터 받은 무수한 피드백과 소스코드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일텐데, 안드로이드의 판올림은 이런 일반적인 오픈소프트웨어의 그것과는 다른 것같다. 그렇게 커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오픈소프트웨어라고 부르는 것이 늘 이상하게 느껴졌던 부분이다. (이 문단의 내용은 내각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의 피드백 루프가 그렇게 오픈/투명한 것같지가 않다는 얘기다. 지난 2~3년의 시간을 되돌아 보면, 제조업체나 이통사들은 구글의 버전업만을 눈빠지게 기다렸던 것을 볼 수가 있었고, 또 그런 후속과정 후에야 다음 액션을 취했던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구글 안드로이드OS는 '0' (zero, 공짜, 프리)은 맞지만 'O' (open, 오픈)는 아닌 것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연합 2:1
 또 다른 숫자는 네이버와 다음의 연합 전선이다. 바로 지난 주에 네이버를 견재하기 위해서 다음과 네이트가 MOU를 맺었는데, 이제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서 네이버와 다음이 연합을 취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끝맺을 때가 되면 내가 다니는 회사를 스스로 욕하게 상황이 발생할 것같아서 더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힌트: 단기적으로 보면 이번 구글제소는 다음보다는 네이버가 욕먹는 구조라는 것.)

 경험 1
 다음으로써는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바로 MS가 PC  OS의 지배권을 이용해서 MSN 메신지를 끼워팔기식의 배포를 했을 때, 다음이 MS를 제소해서 좀 짭짤한 합의를 이뤘다는 거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그 경험이 이번에도 작용했을까? 미래 성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과거의 성공일 때가 종종 있다. 
 
 관계 1:N
 이번 제소는 단순히 '네이버/다음 vs 구글'의 싸움만은 아니다. 이미 모바일시장에서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이 참여했다. 단순히 검색포털은 아주 작은 일부다. 이번 거래에 잠재적으로 엮인 많은 스마프폰 제조사들이나 이동통신회사들, 그리고 수많은 앱개발자들이나 소비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 구글과의 원만한 해결로 문제가 일단락되는 것이 아닐 거다. 일이 진행되면서 제조사/이통사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궁극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진정 소비자들에게 멋진 가치를 전달해줄 수 있을까? 나만의 문제도 아니고, 나와 너만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가 있다. N이 무한대가 될 수도 있다.

 ... 최근에 구글에 안 좋은 소리를 많이 했다. 그래도 난 구글을 여전히 좋아한다. 내가 이 회사를 나가게 되면, 그때 가장 많이 쓸 검색엔진은 구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네이버나 다른 검색엔진회사로 이직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 난 여전히 구글 애용자다. 물론 구글보다 애플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애플과 비교되는 부분에서 구글을 더 가혹하게 욕하는 경향이 있음은 솔직히 인정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조건 옹호할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회사를 무조건 욕할 생각도 없지만, 어쨌던 지금 구글이 90년대에 MS가 누렸던 그것들을 몽땅 그대로 물려받았으니 90년대에 MS에게 가했던 우리의 태도/방식이 지금 구글로 향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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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이 대세다. 2010년을 살아가는 그리고 인터넷을 좀 한다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모든 서비스에 소셜이라는 타이틀을 갖다붙이기 시작한다. 게중에는 나른 소셜리티 Sociality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담긴 서비스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단순히 사람들의 군집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단순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기존 소셜네트워크들과의 약한 연결을 가지고 소셜리티를 모두 갖춘 듯이 홍보하는 경우도 많다. 이제껏 이 블로그에서 문맥 Context 정보의 중요성을 여러번 다루었고, 그 중에서 소셜, 즉 관계정보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물론 많은 포스팅들이 소셜검색, 또는 문맥/개인화검색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검색 또는 미디어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는 내가 더 자세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준이 아니기에 굳이 다른 분야에 대한 얘기들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요즘 대세인 소셜쇼핑 Social Shopping에 대해서 생각의 단편들을 풀어놓을까 한다.  

 사실 문맥정보, 특히 소셜리티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만 소셜쇼핑에 대해서는 그닥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서 입을 닫고 있는다는 것은 나름 지식인으로써 못할 짓인 것같아서 몇자 적으려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특정 시기마다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 지금은 소셜이 그런 키워드다. (대학원 때 국책과제를 따기 위해서 시기에 따라서 '인터넷' '바이오' '시맨틱' 등의 핫이슈/용어를 죄다 동원했던 분들이라면 수긍할 듯) 그래서 모든 새로운 또는 예전부터 있던 서비스를 (재)런칭할 때마다 앞에 꼭 소셜이라는 말을 붙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 말하려는 소셜쇼핑이다. 분명 소셜쇼핑이라는 영역이 존재하지만 지금 우리가 부르는 그 소셜쇼핑은 엄밀한 의미에서 소셜쇼핑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적는다. 최근에 몇 번의 트윗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했지만 더 자세히 그리고 아키이빙해둘 필요가 있을 것같다. 

 미국의 그룹폰 Groupon의 등장과 성공과 함께 소셜쇼핑 또는 소셜커머스 Social Commerce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같다. 이후 비슷한 서비스들이 국내에도 많이 출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11월의 울산대와 포항공대에서 인터넷트렌드를 얘기해주면서 소셜서비스들에 대한 얘개를 뺄 수가 없어서 잠시 다루었다. 그때는 제대로 된 비판이 없이 지금 말하는 소위 소셜쇼핑도 한 꼭지로 다루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한 것같다. 그저 남들이 부르는 그 이름을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사용해버렸다. 지금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소셜쇼핑 (편의상 이름을 계속 소셜쇼핑이라 부르겠다) 서비스들을 보면서 생긴 가장 큰 의문점은 이거 그냥 공동구매 아니가?라는 것이다. 단순히 공동구매 서비스인데, 과거와 다른 점은 트위터에 해당 구매아이템을 친구들에게 알린다는 점정도였다. 물론 이런 소셜네트워크와의 접목으로 과거 경험해보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을 공동구매에 끌어드렸다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모델을 가지고 소셜쇼핑이라는 부르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고, 돼지 목 (공동구매)에 진주 목걸이 (소셜)를 단 격이다. 지금 회자되고 있는 소셜쇼핑들은 단지 공동구매2.0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당해 보인다. 여담으로, 이런 트렌드에 편성해서 국내의 대표 포털들인 다음과 네이버도 똑같은 모델을 가지고 SSM식으로 가판을 벌이고 있으니 국내 인터넷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겨질 듯하다. 다음에 다니는 입장으로써 참 부끄럽고 할 말이 없다. 

 소셜쇼핑을 단순히 공동구매2.0으로 정의를 내리니 더 자유롭게 소셜쇼핑 서비스들을 볼 수 있게되었다. 얼마전에 벌어졌던 구글의 $6B 상당의 그룹폰 인수제안 및 거부 사태는 저의 흥미를 그렇게 많이 끌지 못했습니다. '그룹폰 = 소셜쇼핑'이라는 등식으로 생각했을 때는 단지 구글의 또 다른 소셜 시도정도 이상의 해석이 불가능했습니다. (기존의 대부분의 구글의 소셜시도들은 실패로 끝났다. 적어도 겉으로 들어나는 현재까지의 역사에서.. 성공했다면 G메일 정도, 유튜브도 소셜미디어라는 측면에서 성공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구글의 친자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비즈니스위크 BusinessWeek에 실린 구글의 그룹폰 인수 실패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전부터 줄기차게 언론지상에 등장했던 내용이지만 제가 소셜쇼핑 및 그룹폰에 대한 관심이 낮아서 무시했던 내용입니다. BW의 기사에서 그룹폰을 지역 기반의 쇼핑 사이트라고 정의를 내려놓았습니다. 네, 바로 '지역'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3간 (시간 - 공간 - 인간) 문맥의 하나인 '위치'입니다. 구글이 관심을 가진 것은 소셜과 커머스도 중요했지만 위치기반서비스 LBS였던 것같습니다. 단순 공동구매 사이트에, 물론 미국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서비스지만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사이버먼데이 등의 홀리데이시즌 중에 거의 80%정도가 구룹폰을, 나머지는 리빙소셜 등의 그룹바잉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6B라는 어마어마한 인수가격을 제시한다는 점이 믿기지 않았지만, 지역 및 위치기반으로의 확장성을 고려한다면 구글의 제안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제가 2010년을 '위치의 해' 원년으로 선포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 물론 여전히 인수제안가는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룹폰이 하이퍼로컬 hyper-local에 초점을 둔 서비스라면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에서는 큰 의미가 있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미국만큼의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의 과열은 좀 자제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기존의 공동구매의 스케일을 키운 것 이상의, 그리고 단순히 대량 할인기회 제공이라는 의미 이상을 찾기가 힘들 것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소셜쇼핑에서 큰 문제점은 (언론에서도 다룬 광고된 것과 실제 제품/서비스의 품질차이는 좀 부가적인 문제입니다) 미래의 수요를 현재 미리 과소비/충동구매해 버린다는 점입니다. 소개된 서비스나 제품이 자신에게 어떤 효용과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이 단지 5~6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만 현혹돼어서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지는 것같습니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선물옵션을 사는 것처럼 가상의 수요를 미리 소비해버리는 것같습니다. 실제 제품/서비스를 이용할 때가 되어 불필요한 소비를 했구나라고 후회는 하지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저의 기우와는 달리 현명한 소비를 하시리라 믿습니다. (적었던 부분이 날라가서 조금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소셜쇼핑을 공동구매2.0으로 정의하니 소셜쇼핑의 더 큰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트위터에도 짧게 남겼듯이 진정한 말그대로/정의상의 소셜쇼핑 모델이 가능할 것같습니다. 지금과 같이 서비스제공자들이 미리 선정된 제품/서비스에 대해서 (참여인원에 따라) 일정수준의 할인금액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매 시스템에서처럼 소비자 집단이 먼저 제품/서비스를 선택하고 이후에 판매/제공자들과 협상을 벌이는 형태의 시스템을 만들면 좋을 것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더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행해지는) 공동구매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원래의 공동구매의 특징은 이미 잘 알고 있던 지인들끼리 또는 관심사가 같은 커뮤니티 회원들이 모여서 단체로 구입하고 할인된 가격을 제시받는 형태입니다. 그런 같은 관심사를 가진 소비자 '집단'을 모으고 형성하는데 소셜네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판매자로자들이 공동구매자들에게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묶음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학술적으로 표현해서 불확실성 uncertainy를 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판매/제공자에 의한 인위적인 제품선정 및 가격결정이 아니라, 소지자들이 먼저 묶여서 진짜 관심이 있는 제품/서비스를 그룹바잉하는 형태가 더 정의상의 소셜쇼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련 트윗들
비즈니스위크 기사: When Groupon Dodged Google

 * 아이패드에서 1차 작업된 내용이라 오탈자가 다수 포함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예, 그룹홈 > 그룹폰, 서지스 > 서비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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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6일 (2010년)에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고, '다음과 네이버의 한글 자음별 검색 서제스트 비교'라는 글을 올렸는데, 어느듯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7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네이트를 3대 포털로 많이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네이트도 추가했습니다. 그래서, 지난글에서는 상위 3개의 결과를 나열했는데, 오늘은 상위 2개까지만 나열하겠습니다. (글을 다 적고 나서, 그냥 상위 3개까지 그리고, 구글의 검색서제스트도 함께 비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부분은 추후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입력자음 다음 네이버 네이트
 ㄱ  기상청 - 구글  구글 - 곱등어 김경아 - 국민은행 
 ㄴ  네이트 - 네이버 네이트 - 날씨  네이버 - 내일날씨 
 ㄷ  동이 - 다음 다음 - 다나와  다음 - 동이 
 ㄹ  롯데시네마 - 로드뷰 리니지 - 로또  레인보두 - 롯데시네마 
 ㅁ 멜론 - 메가스터디  멜론 - 메이플스토리  모레날씨 - 멜론 
 ㅂ  베스티즈 - 벅스  보배드림 - 브리치431화번역 보배드림 - 배다해 
 ㅅ 신한은행 - 사람인   신정환 - 신한카드  사람검색 - 신민아
 ㅇ  야후 - 옥션  옥션 - 야후 야후 - 옥션 
 ㅈ 잡코리아 - 주간날씨   지마켓 - 진학사 지마켓 - 장재인 
 ㅊ 쵀재림 - 최희진   천국에서온편지 - 최희진  최희진 - 천국에서온편지
 ㅋ 코레일 - 큐넷  코레일 - 케이디스크  코레일 - 큐넷 
 ㅌ  티월드 - 투니랜드  트위터 - 티월드  트위터 - 티월드
 ㅍ  팍스넷 - 피망  파일아이 - 피망  피망 - 파란
 ㅎ  현대카드 - 한게임  환율 - 현대카드  홍영기 - 현대카드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만 나열해보겠습니다.
  • 3 ~ 4위까지의 결과를 함께 보여주면, 3개 포털사들이 제공해주는 검색서제스트에 겹치는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을텐데, 상위 2개까지에서는 결과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음과 네이트의 싱크로율이 네이버와 타사보다는 더 높아 보입니다. 
  • 최근에 무더위와 태풍, 그리고 여름 휴가 등으로 인해서 날씨 관련 서제스트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다음에서 'ㄴ'에서 네이트와 네이버가 나왔고, 네이버는 네이트를, 그리고 네이트에서는 네이버가 상위에 올라왔습니다. 'ㄷ'에서는 공통적으로 다음이 상위에 올라왔습니다. 이는, 특정 포털을 초기화면에 띄워놓고, 그 후에 검색을 통해서 타포털로 이동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럴 거라면 그냥 자기가 자주 이용하는 포털을 그냥 초기화면으로 만들어놓으면 될 것을... 아마도, PC방 등에서는 업주가 임의로 (또는 회사와 계약으로) 초기화면을 설정해놓는 비율이 높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순전히 추측) 다음에서 'ㄷ' 다음을 제외하고는 네이버와 네이트에서는 'ㄴ'에서 네이버와 네이트가 검색서제스트에 등록되어있지 않습니다.
  • 네이버에서는 자사의 서비스에 대한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에서는 '다음'을 포함해서 '로드뷰' 등장합니다. 로드뷰는 다음에만 있는 특징적인 서비스라서 다음에서만 등장하는 것같습니다. 네이트에서는 '사람검색'과 '멜론' 등이 눈에 띕니다.
  • '최희진' '김경아' '신정환' 등의 인슈인물들도 여전히 검색서제스트에 등록되어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네이트에서는 '장재인' '홍영기' '배다해' '신민아' 등 다음과 네이버보다 더 많은 인물들이 상위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네이트의 서비스의 전략과 일맥상통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시장 진입 초기에 연예 등의 가벼운 주제를 바탕으로 서비스 영역을 선점해가는 것이 한국에서는 아직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 네이버에서 '케이디스크'와 '파일아이' 등의 P2P/스토리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네요. (-_-. 생략)
  • 3사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서제스트는 '다음' '멜론' '야후' '옥션' '최희진' '코레일' '티월드' '피망' '현대카드'입니다. 'ㅇ'에서 야후와 옥션이 3사 모두에서 1, 2위를 차지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 네이버의 '브리치431화번역'과 같은 저작권과 관련될 수 있는 것을 서제스트에 그냥 포함시켰다는 것이 조금 의외입니다. 물론, 다음과 네이트에서도 '블리치' 등으로 더 자세히 입력하면 '블리치 431화'등의 서제스트 등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ㅂ'에서 바로 '블리치431화번역'이 등장하는 것이 조금 의외라는 말입니다.
  • 구글의 결과도 함께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이것은 직접 비교해보세요. 나중에 다시 같은 글을 적으면 구글의 것도 포함시키겠습니다. 대략적으로 말씀드리면, 특정 업체명/서비스명에 대해서는 국내 3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구글은 단순히 검색어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 등의 이슈를 함께 분석하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1~2단어의 단문검색서제스트보다는 이슈명이 전체가 서제스트에 등록된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예, '김지혜 양악수술 후 V라인' '신정환 거짓말 들통' 등입니다. 이런 키워드들은 구글토픽스에 표제어로 등장하는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나머지 부분들도 직접 해석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에서는 1, 2위만을 보여드렸지만, 3~5위의 결과도 비교해보세요. (테이블에 공간이 좀 남는데, 3위 결과도 넣을지 살짝 고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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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철학의 오랜 논쟁 중에 하나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에 대한 논쟁인 성선설과 성악설일 것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여 인간은 선한 본성을 타고난다고 시경, 주역 등의 경전에 꾸준히 주장하고 있으며 (백과사전), 반면 순자는 인간은 원래 악하며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백과사전). 서양척학에서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기독교/유태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문명에서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이브의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신을 거역한 원죄 Original Sin를 바탕으로한 원죄론, 즉 성악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껏 계속 IT쪽의 궤변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동서양철학을 논하려는 것도 아니고, 엔지니어로 자라난 제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이 기업의 본질/본성(?)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전의 저의 블로그 글이나 트위터의 내용들을 보면, 저는 줄기차게 기업은 원래 악한 본성을 가진 기업성악설을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태동기인 90년대의 향수를 가진 이들에게는 악한 기업의 대명사로 마이크로소프트 MS를 생각할 수 있으나, 현재는 그 대표적인 기업으로 저는 구글을 주저없이 들고 있습니다. 물론, 구글의 'Don't be evil' 만트라를 모르는 바도 아니고, 이제껏 사용자들에게 제공해준 많은 혜택들을 잘 알고 있지만, 기업의 본질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결국 구글도 성악설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차차 이어가겠습니다. (여러 번 밝혔지만, 저는 구글을 매우 좋아합니다. 단순히 경쟁관계 (구글은 다음을 경쟁상대/라이벌로 생각하지 않겠지만)에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구글을 무조건 까는 것이 아닙니다. 성악설에서 인간의 노력으로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업도 본질적으로 악하지만 돈을 벌면서도 선한기업이 될 수 있다라는 가장 큰 성공사례를 구글이 보여줄거라는 큰 기대를 가졌기에, 실망감이 더 큰 것뿐입니다. 참고. 회사/다음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엄청나게 욕하고 있으니 굳이 이 블로그에서 공개적으로 회사의 치부를 들어내지 않을 뿐입니다. 남의 회사만 욕하는 게 아니랍니다.ㅠㅠ)

 기업의 존재 목적/이유를 말할 때 보통 '이유추구'라고 합니다. 이윤, 즉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존재이유입니다. 적당한 수익을 얻지 못하면 그런 기업은 망할 것이고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돈'이라는게 인간 세상의 악의 근원이 된지가 오래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단지 물질인 '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걸 사용하는 인간의 욕심이 문제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의식과 생각이 없는 사물에게 인간사이 모든 악을 체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대게 욕심의 정도를 돈의 정도로 표현해도 별무리가 없을 것같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키는 돈에 대한 욕망이 여러 면에서 악으로 향하는 듯합니다. 어쨌던 다신 주제로 돌아와서, 기업의 목적은 이 돈을 최대한 벌어들이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기업의 역할일 듯합니다. 때로는 진짜 악한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성악설의 예로 구글을 끼워넣는 것은 구글로써는 참 억울한 일입니다. 공적이었던 MS를 넣기에는 신선도가 떨어지고, 삼성을 말하자니 제 논리가 사라질 것같습니다.) 그리고, 돈이라는 것도, 은행에서 그냥 찍어내면 되기는 하지만, 그 총량이 제한되어있는 일종의 재화입니다. 그런데, 한 기업에서 일정부분을 가져가면, 사회의 다른 곳에서는 그만큼을 덜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벤담을 비롯한 공리주의자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외치면서 자유주의적 경제학을 옹호했지만, 한 기업의 측면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때론 사회 전체를 봤을 때는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렇습니다. 힘없는 다수와 무적의 소수만이 존재하는 곳이 벌써 이 지구입니다. 사회,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황금비율은 8:2, 5:3:2, 7:2:1 등의 모든 수치들이 보여주는 것도 강력한 하나 ONE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상한 얘기를 했지만, 요약하면 '돈'이 목적인 기업으로써는 돈을 버리기 전에는 선해질 수가 없는데, 돈은 절대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악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의문이 남습니다. 최근에 서점가에 쏟아지고 있는 그 수많은 경영학서적에서 다루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는 사회적 기업)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뭐냐?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사회적 기업들 때문에 이 글을 적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모든 기업이 악하다고 했는데,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는 그런 사회적 기업도 함께 사잡아서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깐요. 그런데,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무한히 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한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들도 여러 종류의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기업들보다 덜 악하다고는 말할 수 있으나, 너희들만은 선하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0을 기준으로 +는 선한기업, -는 악한기업이라고 표현을 한다면, 모든 기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마이너스 '-'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놓더라도 아주 간혹 플러스 '+'를 가진 인류가 나타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마이너스잖아요.) 제가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님이 적은 <슈퍼자본주의>라는 책입니다 (리뷰). 책에서 다루는 핵심 중에 하나가 바로 '기업의 목적은 사회선/공익의 실현이 아니라, 투자자/주주들의 사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일례로, 미국의 연안에서는 석유시추를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런 제한법안을 발효시킨 주체들이 수많은 환경단체들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는 이런 연안석유를 시추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수많은 오일콘체른들이라고 라이시는 말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경제는 뉴욕을 중심으로한 동부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한 서부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수많은 아니 대부분의 미국 회사들의 지부가 워싱턴DC에 있다. 왜 그럴까? 단순히 워싱턴 DC에 남아도는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워싱턴 DC가 미국 정치이 중심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등)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사무실은 (모두는 아니지만) 정부기관에 로비를 해서 더 많은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서, 또는 국회나 백악관을 압박/로비해서 자신들의 사업체/방향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수많은 미국의 회사들이 워싱턴 DC에서 로비자금으로 수백만$을 허비하고 있다. 기술기업들도 마찬가지다. MS가 대표적인 로비기업으로 알려졌지만 (특히 90년/2000년대에 겪었던 반독점 때문에), 최근에 구글의 로비력도 대단하다고 알려져있다. 일례로, 2009년도에 구글이 정치로비에 $4M이상을 사용했다고 한다. (관련 문서)

 자, 정치로비 때문에 구글 카드를 꺼냈으니 구글을 좀 더 보자. 관련도서로 <구글, 신화와 야망>과 <구글드>정도를 읽으보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최근에 구글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검색결과 필터링 때문에 벌어졌던 중국정부와의 충돌, 그리고 중국에서의 사업라이센스가 끝난 이후에 구글이 보였던 저자세이 모습, 그리고 더 최근에 버라이즌과 함께 국회에 제출했던 Wireless환경에서는 기존의 Wired에 적용되던 망중립성 Net-Neutrality를 무시해야한다는 제안이 세간에 이슈가 되었다. 흠.. 저게 구글이 아니라, MS였다면 모두가 이해했을 법하지만, 당사자는 MS가 아니라 구글이다. 더 일반적인 얘기를 꺼내볼까? 구글은 항상 개방을 외치면서 사용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개방, 개방, 개방, 그리고 가끔 오픈. 그런데, 구글은 자신들이 시장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경우에는 개방을 외치고, 그렇지 않은 경우네는 개방이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표적이 경우가, 도서검색인 북서치일 듯하다. 모든 것을 개방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스캔한 도서데이터는 절대 개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다.) MS나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도서스캔 작업을 진행했지만, 규모와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MS 등은 자신들이 이미 스캔한 모든 데이터를 개방했다고 하더라... (위에 소개한 책에서..) 적어도 북서치에서는 MS가 더 선한 기업인 듯하다. 물론, '개방 = 선'이라는 공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리고, 구글이 그렇게 개방을 외칠 거라면 자신들이 색인한 '구글인덱스'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절대 그렇게 못할 것이다. 바로 구글은 이미 검색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굳이 개방해서 남들에게 좋은 일시켜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구글이 매번 실패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소셜'이다. 지금은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검색딜을 맺어서, 여러 검색결과를 구글에서 제공해주고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내용을 별로 수집할 수가 없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구글의 검색봇을 막아놨기 때문이다. 이때 구글이 들고나온 카드가 바로 오픈소셜이었고, 페이스북에게 자신들이 가진 소셜정보를 개방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페이스북의 가진 정보를 공유하기 전에, 구글이 가진 구글인덱스부터 공개했더라면 어땠을까? 구글, 하나의 기업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전략적) 결정은 절대로 안 한다. 구글.org 등을 통해서 몇 십, 몇 백 달러를 일반에 환원하는 것만으로 구글은 선하고 사회적 기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더 못한 기업들보다는 선한 기업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에서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한다거나 다른 그린 에너지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해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다. 진짜 선했다면 자신만의 사일로인 그리고 전기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의 건립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최근에, 페이스북의 데이터센터가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화력발전을 주로 사용하는 지역에 건립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환경단체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를 사용했던 화석에너지를 사용했던 두 기업 모두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 그들이 데이터센터를 짓지 않았더라면, 일반인들이 사용하기 위해서 굳이 다른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된다. 구글의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한 전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이를 벌충하기 위해서 화력발전소가 건립된다면 구글데이터센터가 화력발전소의 전기를 사용한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 어쩌다보니, 또 구글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적었지만, 지금 일반인들에게 단순히 '구글은 착한 기업'이라는 밑도끝도없는 인식이 체화되었다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에 비판의 수위를 높였을 뿐이다. (자꾸 반복하지만, 구글은 그래도 다른 기업들보다는 낫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구글에서 CEO인 에릭 슈미츠는 모든 악역을 담당하고, 공동창업자인 브린과 페이지는 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같다는 거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Don't be evil'은 우리가 선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악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래도 인간의 의지로 악해지는 속도를 늦추자라는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 초창기부터 구글은 스스로 기업의 악한 본성을 찾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글도 기업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괜히 오해사지 않기 위해서 또 말하지만) 구글은 세계의 대부분의 회사들, 처음부터 CSR을 위해서 만들어진 아주 극소수의 기업들을 제외하고,보다 더 많은 좋은 일들을 하고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OS에 대한 얘기를 빼먹었군.)

 기업의 본질은 악하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애꾸즌 구글을 너무 우려먹은 듯하다. 오해는 마시라. 착한 기업들도 간혹 있다. 그런데, 마치 어떤 기업은 절대 선이고, 다른 기업은 절대 악이다라는 식으로 기업생태계를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어차피 모두 자신들 (주주를 포함해서)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애플도 그렇고, 삼성도 그렇다. 삼성의 어리석은 짓들을 욕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악한 방법을 택했을 뿐이지, 다른 기업과 다르지는 않다. 애플을 찬양하면서도 더 어두운 애플의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았던가? 다 그렇다. 모든 기업은 양면성이 있다. 한쪽이 더 짙을 뿐이겠지만...

 늘 그렇지만, 제 글은 논리적 비약이 심하기도 하고, 성급한 일반화에 이르기도 하고, 또 수사적 은유와 과장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동의도 필요없고 반대도 필요없습니다. 동의를 받으면 제 스스로 우쭐해질 것같아서 무섭고, 반대를 받으면 그 자체로 우울해집니다.

 P.S., 중요한 코멘트: 이글을 적게된 계기가 늘 구글의 'Don't be evil'에 현혹되어서 무조건 구글은 선한 기업이라고 찬양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늘 생각하던 주제였지만 (재미있는 기사. '애플은 추종 - MS, 구글 혐오 '광팬' 많다.'),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제공했습니다. 바로 다음탑이나 미디어다음에 들어가면 노출되는 광고들 때문입니다. 첫번째 짜증나는 광고는 동영상 광고입니다. 무조건 마우스가 광고위로 지나만 가도 큰 화면의 동영상이 실행되는 것입니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 close (X)를 찾지만 눈에 잘 띄지가 않습니다. 마우스클릭이 아닌, 단순 마우스오버에서 동영상이 실행되었다면 반대로 마우스아웃에서 동영상재생이 멈추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은 다음을 사랑하고 애용하는 고객들에게 보여준 대표적인 악행입니다. 두번째 광고는 조금 다른 내용인데, 로그인 사용자의 신상을 바탕으로 제공해주는 광고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음탑이나 미디어다음에서 성인남성이 로그인했을 때, 주로 듀렉스 콘돔광고와 히즈클린이라는 광고 (남성이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광고)입니다. 처음 한두번 정도는 그냥 웃고 넘어가겠는데, 짜증나는 광고가 계속 노출되기 때문에 그 짜증남이 배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상의 모든 광고에 대해서 다음 내부에서도 계속 비판을 하고 있지만, 쉽게 내려지지가 않네요. 공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이 선한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해주는 것이 선한 기업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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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도 아침에 트위터에 짧게 올린 것을 좀 더 자세히 다뤄보고 싶다는 충동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표현은 좀 러프하게 했지만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오픈을 전략적 기치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정책의 승패는 개방보다는 포용에 있다."라고 트위팅했다. (참조) 그리고 좀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제목에서 사용한 '문제는 포용이야, 바보야.'는 1992년도 미대선에서 클린턴이 사용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를 차용한 것이고, 'Openness is not open.'은 미국 워싱턴 DC의 메모리얼 몰 안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공원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 있는 'Freedom is not free.'를 차용해서 정했습니다.

 구글로 대변되는 현재의 인터넷 기업들이 자신들의 주요 정책방향을 오픈/Open/개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담. 그 대척점에 있는 기업을 애플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은데, 여러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이렇게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최근 국내기업들도 비슷한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네 회사의 주요 서비스를 Open API로 풀어서 외부에서도 사내 데이터를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아직 국내의 환경이 완숙하거나 규모가 큰 것이 아니라서, 오픈API를 이용한 서비스들을 실생활에서 쉽게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는 것같습니다. (참고. 다음 DNA 오픈API, 네이버, 네이트) 가장 최근에 네이트오픈이라는 행사도 진행을 했었죠. (여담. 실제 앞의 트윗은 운전중에 제주도 오라골르장에서 죠니워크오픈 대회가 있다는 광고판을 보고, 일전에 네이트오픈행사가 떠올랐습니다.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트위터나 블로그에서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왔었는데, 당시에 트위터에 '"네이트오픈"이라고 하니, 마치 골프나 테니스 대회를 하는 것같다.'라고 적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오픈이 뭘까? 오픈이 정답인가?라는 질문 중에 '오픈이 아니라 포용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오픈을 참 좋아합니다. 사실 어떻게 오픈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도 없지만, 마치 오픈하면은 뭐든지 다 될 것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항상 원론적인 수준에서 현상들을 다루다보니 늘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 저 개인적인 고민입니다.

 기억을 정리해보면 이미 오픈정책을 통해서 성공적인 사례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 국내에서는 딱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 없는 듯.) 대표적인 사례가 벌써 전설이 되어버린 구글맵스와 크레그리스트를 매쉬업해서 만든 부동산중계서비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를 만든 사람은 바로 구글에 채용이 되었고, 또 저 사건 이후에 매쉬업 Mashup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습니다. 구글이 자사의 지도API를 오픈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크레그리스트의 내용들이 공개적으로 크롤링되지 않았더라면 매쉬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IT 쪽에 조금만 일했다면 모두가 알고 있는 리눅스, 아파치, 톰캣, MySQL 등의 수많은 오픈소스제품들도 오픈이라는 우산 아래서 성공한 것들입니다. 그래도 현재 뭐니뭐니해도 오픈의 전도자/에반겔리스트는 바로 구글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런 우스개소리도 트위터에 떠돌았습니다. '애플은 우리 제품이 멋있으니 우리 제품을 이용하라하고, MS는 우리 제품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우리제품을 사용해야 된다고 하고, 구글은 우리 제품은 공짜니 그냥 사용하라고 한다.' 비슷한 취지로 '애플은 컨텐츠를 공짜로 주면서 하드웨어를 판매해서 수익을 얻고, 아마존은 하드웨어 (킨들)을 공짜로 주면서 컨텐츠/책을 판매해서 수익을 얻고, 구글은 서비스/컨텐츠를 공짜로 주면서 광고로 돈을 번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현재 여러 컨텍스트에서 '오픈 = 공짜'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의 트윗들도 그런 취지에서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는 부분은 모바일이고, 모바일에서 가장 이슈는 아마도 (아이폰를 제외하면) 구글 안드로이드 OS일 것입니다. 안드로이드 OS... 구글의 다른 서비스들처럼 겉보기 공짜, 즉 Open Source입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이런 트위팅도 한 적이 있습니다. '구글 안드로이드 OS는 FREE이긴 하지만, OPEN이 아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느꼈었는데, 실제 맞는 듯합니다. 1~2 달 전에 LG에서 옵티머스를 출시하면서 (옵티머스가 맞을 듯. 확인은 검색으로) 검색엔진을 구글이 아닌 네이버를 기본 탑재하면서 구글로부터 승인이 몇주/달이 늦춰졌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구글은 이를 극구 부인했습니다. 이 사건이 단적으로 말하는 것은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공짜로 푸는 것은 모든 모바일폰에 구글검색엔진을 장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조사들마다 안드로이드 기본 소스를 바탕으로 UI 등에서 조금씩 커스터마이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커스터마이징들이 리눅스시스템에서처럼 안드로이드 기본 프로그램에도 반영이 될까요? 현재까지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안드로이드의 기본 커널 (?)은 영원히 구글이 쥐고 있을 것입니다. 분명 오픈소프트웨어인데, 핵심은 꽉 움켜쥐고 나머지 곁가지들만 조금씩 수정해서 사용하라는 것이 현재 안드로이드 OS를 대하는 구글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는 그런 곁가지도 너네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고 선언할 지도 모릅니다. 단지 공짜로 제공되는 것을 제외하면, 안드로이드 OS가 MS의 윈도우모바일OS와 다른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안드로이드는 공짜OS는 맞지만, 오픈OS는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안드로이드 정책에서 구글의 야심과 야망, 그리고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지만, 현재까지의 다른 수많은 프로젝트/제품/서비스들에서도 그들이 내세우는 '오픈'이라는 의미에서 고개가 갸우뚱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구글, 신화와 야망>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아마 저 책이 맞을 겁니다. 구글관련된 대부분의 책/번역서들을 읽어봤기 때문에 조금 헷갈립니다.), '구글은 자신들이 이미 선점한 시장에서는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자신들이 비교우위가 없는 서비스들에서만 오픈/개방정책을 내세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해당 책을 리뷰하면서 "구글, 신화는 사라지고 야망만 남았다."라고 짧게 논평을 했습니다. (참고. 안드로이드에 대한 내용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제가 구글에게 야망을 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조금 '사악한' 야망을, 선한 또는 순진한 슬로건 안에 숨기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이제 본론 및 결론으로 돌아와서, 현재 수많은 기업들이 겉으로는 '오픈'을 외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오픈이란 과연 뭔가?라는 의문을 계속 가지게 됩니다. 겉으로는 오픈오픈하는데, 속으로는 늘상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픈했다는데 뭘 오픈한 거지?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만 보더라도 전략, 경영자들이 제대로된 철학을 가지고 있나?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우리는 오픈한다라는 입에 발린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객과 개발자들 (그리고 3rd 파티들)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OPEN 그들의 주장, 바램, 때론 실수도 포용을 하는 것이 진정한 오픈정책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열어놨으니 너희는 이만큼만 가져다 쓰세요라는 형식적인 오픈에서 이제 진일보할 때입니다. 오픈이 구호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포용이라는 행동으로 발전할 때입니다. 구글은 위대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기업이기에 그들의 사악함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Don't be evil'은 'Don't call us evil'이라고 말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구글보다 더 못난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입니다. 오픈이 선이 아니라, 포용이 선입니다.

 어쩌다 보니, 구글을 비판하는 포스팅이 되었습니다. '구글 = 오픈'의 등식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구글 스스로가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고, 그렇게 선전해왔던 것입니다. 구글/회사가 정의하는 오픈이 아니라, 우리/사용자가 정의하는 오픈으로 나와주세요. 제발 제가 그리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사랑했던 '구글'의 모습을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구글이 말아먹은 서비스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조롱을 하는 그런 구글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은 응원하고 있습니다. 비록 경쟁/상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우리의 희망이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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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검색의 미래'와 '검색은 미래가 아니다'라는 포스팅의 핵심은 사람들의 검색패턴이 바뀌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일종의 Rich Search라는 중간과정을 거쳐서, 궁극에는 검색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한 순간까지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문득 진짜 검색이라는 행위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맞지 않은 것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최근에 구글 Google Inc.에 인수된 Aardvark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구글이 단순히 검색어 기반의 검색이라면, Aardvark는 질의어 기반의 검색이며, 구글이 검색결과로 해당 검색어를 포함한 문서목록을 제공해준다면 아드바크는 주제어에 가장 전문성이 있는 (그리고 친밀도도 있는) 권위자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구글 검색의 모델이 인류의 오랜 지식창고역할을 했던 도서관 Library에 있다면, 아드바크의 중계모델은 인류의 더 오랜 지혜의 창고역할을 한 마을/동네 Village에 있습니다. 즉, 구글의 도서관 모델에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한 사용자 A는 도서관에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의 원인 및 해결책을 담고 있을 법한 도서를 찾아서 읽음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추천해주는 책, 가장 유명한 책, 그리고 피인용회수가 높은 책을 찾아보면 원래 가졌던 문제해결에 (그나마) 가장 빠른 길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드바크의 빌리지 모델은 사용자 A가 도서관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연륜이 높고 학식이 풍부한 동네의 유지/어르신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상담을 받는 것입니다. 보통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면 사용자 A가 가졌던 문제나 해결방식이 사용자 B 또는 그 이전의 사용자들 C's의 문제 및 해결책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친구의 문제 또는 전문가의 해결책이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도서관이라는 지식의 창고가 생기기 전부터 마을은 형성되어왔으며 각 마을에는 연륜을 가진 지도자 및 유지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도서관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마을 공동체에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던 모습이 인류 사회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검색패턴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관점에서 검색보다는 질의가 더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더 오래된 문제해결 방법입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질의가 검색보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듯이,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질의가 검색보다 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물론, 인간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질의보다는 검색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은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유치원에 갓 들어갈 나이의 아이들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런 어린아이들이 문제 (궁금증)를 가졌을 때, 가장 먼저 책을 찾아보던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로 주위의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 등의 주변 어른들에게 매번 질문을 합니다. '엄마 이건 왜 이래? 아빠 저건 뭐야? ...' 질문이라는 것이 검색보다 더 자연스럽고 태고적 모습입니다. 이렇게 질문에 익숙한 Question-Native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자라면서 질문의 회수는 줄어들고, 직접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에서 모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어른들에게 질문 (대드는?)을 하는 것 자체를 버릇없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수업/발표 중에 자유로운 질문이 오가지 않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질문/궁금증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 개인의 성장사에서 보듯이 검색보다는 질문이 더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전 글들에서 '질의'는 단순히 더 먼 미래를 향하는 징검다리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더 먼 미래에는 검색 또는 질의라는 행위 자체가 없이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정보를 원하는 시점에 당도 appearing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동네 모델에서도 보면, (농경사회에서) 봄이 되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씨를 뿌립니다. 그러면, 자신이 씨를 뿌릴 생각을 못했더라도 지금 씨를 뿌릴 시기가 왔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김매기나 추수 등도 주변의 상황/흐름을 보면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모두 알려주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성장사에서도, 유아기의 아기들을 보십시오. 한번 울기만 하면, 엄마아빠들이 젖을 먹여주거나 얼르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줍니다. 울음이라는 일종의 시그널이 없는 상태에서도 적당히 시간이 되면 젖병을 준비하고, 기저귀를 준비해서 아기에게 최상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검색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이 인간에게 더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또 그런 질문에 앞서 답을 얻는 것이 더 태고적 모습입니다. 지금 현시점에서는 온디멘드가 대세이지만, 미래에 다시 찾아올 오프디멘드의 시대를 지금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기술적인 존속혁신 (더 빠른, 더 안정적인, ...)에 정신이 팔려서, 더 근본적인 파괴혁신 (검색패러다임)을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글에서처럼 검색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검색광고의 패러다임도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의 돈줄이 광고였다면, 새로운 미래에 맞는 새로운 광고모델도 개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최근 일련의 글들에서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제까지 제 글과 모순될 수 있지만)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상할 수 없는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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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hinkco.egloos.com BlogIcon ThinkCo 2010.06.12 10: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동네 유지에게서 내 질문에 대한 '지상 최고의 답변 == 검색결과 첫페이지 첫 답변'을 얻으려 할 것인가?를 추측해 보면...다른 검색 경로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동네 유지가 언제나 최고의 답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쉽게 알테고...그러면 '어떤 질문'을 '동네 유지'에게 던져야 내가 원하는 답변이 나오는지를 여러변 경험해보아야 하는데...(세상 살다 보니 늘 최고의 답변이 필요하지는 않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내 질문에 대한 최고의 답변보다는 '내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Bahn's village 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앞으로는 수많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최고의 답변이 아니라 '내가 질문한', 그래서 '이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한' 답변을 동네 유지에게서 원하지 않을까 예측합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질문했기 때문에 '내' 질문의 의도를 나름 이해한 후 그 유지에게서 듣게 되는 '따뜻한 답변'이 차별 요소로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말하는 검색 개인화는 검색 결과를 필터링하는 것에 가깝다면, 저는 뛰어난 결과를 보여주는 검색시스템의 관점과 달리 '나의 질문'을 나보다 앞선 선경험자 -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 나의 인생 선배 등 - 에게 말하고 그들로부터 '이 정도면 충분한' 답변을 얻는 '시스템이 아닌 서비스'가 추세가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해 봅니다.

    Bahn's village 님의 글이 공감도 될 뿐더러 막 떠오르는 생각을 막 나눌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시니 매우 좋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뿅~

    • Favicon of https://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0.06.12 11:2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냥 시간이 지날수록 틀렸다는 느낌보다 진짜 이렇게 될 것같다는 확신만 깊어집니다. 벌써 누군가는 준비하고 있을테니지만.. 그냥 Bahn이라 부르세요.

  2. Favicon of http://onyoo.net BlogIcon onyoo 2010.06.14 11:2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 "어떤 검색어를 조합해야 하나" 하고 끙끙대는 자신을 보면서, 검색이라는게 얼마나 unnatural 한 일인지 통감하던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놈이 물어볼만한 사람인지 알 수도 없고, 개나 소나 쓰레기 같은 답변을 던져놓고 가는 바람에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질문한다"는 인간의 natural한 습관에 기반한 네이버 지식인이 있었던 것도 구글이 한국에서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트위터에서의 질문 RT나 (이쪽은 전파는 확실히 빠르지만 사후 관리 및 아카이빙이 안되어서 필요한 지식을 얻기에 좋은 플랫폼은 아니라고 봅니다), 페이스북의 지식인과 유사한 , 그러나 해당 답변자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주는 SNS 기반의 Q&A 서비스 도입 등을 보면 확실히 검색어를 고민해서 정보를 찾는 시대는 언젠가는 옛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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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구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가?

 2000년대 초부터 구글 Google을 알고나서부터 구글을 애용하고, 좋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일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는 여전히 구글이 낯선 회사일지 몰라도, 적어도 대학/대학원에서 연구를, 특히 영문 자료가 많이 필요한 분야에서, 꾀나한다는 사람들에게 구글은 절대로 떼놓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한참 학교에서 논문을 적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전 구글에서 검색되는 것만 인용합니다." 그래요.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적당한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서 더넓은 도서관을 헤집고 다녔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운좋게도 ScienceDirect라는 많은 논문집을 모아두고 PDF로 제공해주던 초유의 서비스도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아니면 사이언스디렉트에서 적당한 논문을 찾아서 읽어보고, 내 논문에 인용하는 것이 적어도 제가 대학원을 다닐 때의 초기 모습입니다. 그러던 것이 2003, 4, 5...년이 되면서 대부분의 논문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게 되었고, 당연히 구글을 통해서 검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구글이 선심성으로 구글스콜라 Google Scholar 서비스도 제공해주었지만, 저는 보통 '검색어 또는 논문제목 filetype:pdf'으로 제가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의 네이버나 다음의 검색은 전혀 이용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찌라시들은 네이버/다음에서 더 잘 검색해준다는 소리에, 시간보내기 위한 검색은 네이버/다음을 이용했습니다. 지금은 세마이-강제로 다음검색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단지 비교용이고, 구글은 여전히 영문자료를 찾기 위한 용도로 사용중) 제가 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은혜를 베풀어준 존재가 구글이기에, 제가 구글을 당연히 좋아했고 구글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 몇번 온라인으로 Apply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구글의 행보를 보면서 많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비즈니스적 선택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구글에 대한 호감정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수록 제가 마치 애플빠가 되어가는 착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최근의 '애플이 아니면 구글'이라는 식에 제가 대입되어버린 것같습니다. 수차례 말씀드렸지만, 구글과 애플 모두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애플쪽으로 더 기우는 것이 사실입니다. 애플을 파괴적 창조자 Disruptive Creator로, 구글을 창조적 파괴자 Creative Destructor로 묘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이게 사실이기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구글이 '창조적 파괴자'이기에 제목에서 적은 '구글역설 Google Paradox'가 생겼습니다. 분명히 구글을 애용하는 소비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서비스, 기술을, 그것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지만, 그런 구글의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구글이 더욱 무섭게 느껴집니다. 적어도 현재의 인터넷 시대에서 구글은 진짜 필요악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스스로 필요선이라고 주장하며 기업을 시작했지만, 기업의 어쩔 수 없이 선이 아니라 악이다라는 저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최근의 지속가능성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에 부합하면 많은 선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기업들 - 이익추구 -을 선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구글이 DoubleClick을 인수해서 온라인광고시장을 선점했을 때도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해서 무료 모바일OS를 선보일 때도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구글이 무료 Turn-by-turn 소프트웨어를 안드로이드폰에 탑재할 때도,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그래도 큰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다른 모든 그들의 활동을 보면서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측면/분야에서 심히 우려는 되지만...) 그런데, 지난 밤의 구글 I/O에서 구글 VP 엔지니어인 Vic Gundotra의 말에서 전 '구글도 태생적인 악이구나'라는 전률을 느꼈습니다. Gundotra의 말을 적기 전에, 2010년 구글 I/O에서는 현재까지 중요한 3가지를 선보였습니다. 1. 구글이 작년에 인수한 On2테크놀로지의 비디오 코덱인 VP8을 오픈소스화하는 WebM 프로젝트 발표, 2. 구글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의 차기작인 암드로이드 2.2 (Froyo) 발표 (프로요에 대한 세부 내용은 http://graynote.tistory.com/380 참조), 그리고 3.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구글TV (& 광고모델)를 발표했습니다.

 다시 Gundotra로 돌아가서, 그는 지난 밤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If we did not act, we faced a draconian future. Where one man, one company, one device, one carrier was the future." (정정. Android를 처음 만든 Andy Rubin이 구글에 인수될 당시에 한 말이라고 합니다.) 대강 번역하면, '우리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가혹한 미래에 직면했었을 것입니다. 한명에 의해, 한 회사에 의해, 한 종류의 기기에 의해, 한 이통사에 의해서 지배되는 그런 미래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그가 말한 한명 또는 한 회사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바일 및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애플이 절대강자로 부상했지만, (적어도) 컴퓨터 산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메인컴퓨터 시절에는 IBM, PC 시절에는 MS가 절대강자였고, 세상을 굴림했습니다. 지금 모바일 시대에 애플이 그 위치를 잠시 탈환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플을 구글이 공격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구글도 애플이 모바일에서 누리는 영향력 못지 않고, 인터넷, 구체적으로 검색시장과 온라인광고시장,에서 지배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더우기, 이들이 검색/광고시장 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한 모바일시장과 구글TV를 기반으로한 (거실) 엔터테인먼트시장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역설적인 공격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MS에 의해서 지배되던 PC와 애플에 의해서 지배되는 모바일과 같이, 구글에 의해서 지배되는 인터넷/검색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MS의 독재와 애플의 독재에 맞서기 위해서 구글이 선봉장이 되었듯이, 다른 수많은 기업들도 구글의 독재에 맞서 싸워라는 메니페스토인지 궁금해집니다. 구글의 역설은 '독재에 맞서 싸워라'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독재를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기업은 태생적으로 '악'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 어떤 기업도 MS나 애플과 다르다라는 기치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들이 되고 싶은 미래상이 MS와 애플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플래쉬 논쟁에서의 어도비의 명분도 우스운 논리고, 지금 구글의 논리도 우스운 것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전략, 전술을 택한 것뿐이니...) ... 구글은 미래의 MS 도플갱어인 듯하다.

 자, 구글 정신을 이어받은 많은 인터넷 세대여, 이제 구글에 맞서 싸우십시오. 이게 구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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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도 한번 적으려고 했던 주제인 프라이버시 Privacy에 대해서 짧게 적겠습니다. 애플의 아이패드 열풍이 지난 후에, 최근 몇 주간의 뜨거운 감자는 페이스북과 프라이버시 문제인 듯합니다. 페이스북은 전세계적으로 4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또 하나의 인터넷 자이언트 기업입니다. 이런 페이스북에서 조금의 수정작업을 단행해도 여러 파장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에 다시 크게 부각이 되었지만 그전부터 줄곳 제기가 되던 문제입니다.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하는 것보다 Matt McKeon이라는 분이 올린 Changes in default profile settings over time이라는 포스팅을 보면 현재의 상태를 명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즉 친구사이의 대화와 공유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입니다. 즉, 개인적인 이야기를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또 친구들끼리만 공유하는 서비스입니다. 그런 친구들 사이의 비미스러운 대화들이 점점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 모습을 위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페이스북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개인대화 및 활동을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수많은 기회와 이익이 있기 때문에 계속 조금씩조금씩 개인정보를 일반에 공개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물론, 19, 20세기에 제정된 프라이버시 관련 규제들이 21세기, 인터넷의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도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프라이버시 관련 법/규제들이 완화, 보완, 추가, 보강되어져야 합니다. 일전에 페이스북의 창업자 Mark Zuckerburg는 'The Age of Privacy is Over'이라는 대담한 선언을 했습니다. 비슷한 선언으로, 인터넷 시대의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개인정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런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한)에 관한 것이다라고 재정의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즉, 내 정보가 인터넷 등의 공개된 장소에서 노출된 것만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그런 정보를 누가 누구에게 노출했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내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문제가 될 때는 그런 정보를 내가 아닌 다른 이에 의해서 공개되어졌을 때, 그리고 설혹 내가 공개를 했더라도 내가 원치 않는 곳에 퍼날라진다거나 인용이 되어질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론적으로 쥬커버그의 새로운 정의인 '개인정보의 통제권'에 대해서 공감을 표합니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프라이버시 규정은 단순히 개인정보의 노출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노출했느냐를 가지고 규제가 가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인정보의 공개 통제권을 말할 때,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통제권이란 어떤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지만, 누구에게 공개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내 이메일주소나 전화번호를 페이스북의 wall에 올린다는 것은 나와 친구관계에 있는 이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인데, 현재의 페이스북이 직면한 문제는 내 친구 또는 내가 허락한 이들에게 그런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넘어서 일반대중, 특히 그런 정보를 가지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에게까지 모든 정보를 넘겨주는 것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적으로던 공적으로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모든 업데이트들은 일단은 사적인 사용 private use only를 위해서 올린 것인데, 만약 이것이 신문기사에 인용이 된다거나 제 3자에 의해서 편집되어서 제3의 공간에서 공개가 된다면 문제가 됩니다. 누가 어떤 정보를 공개했느냐를 뜻하는 프라이버시 통제권의 측면에서 쥬커버그의 접근에 원론적인 동의를 하지만, 누구에게 공개될 것인가를 무시한 현재의 접근법에는 당연히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우리는 프라이버시 세팅을 사용자들이 변경할 수 있는 옵션을 줬다고 말합니다. 물론 어떤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와 누구에게 공개할 것인가는 페이스북의 세팅부분에 들어가면 변경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McKeon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기본설정 default setting에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말하는 기본선택 opt-in 또는 기본해제 opt-out의 문제입니다. Opt-in이란 사용자의 동의를 구할 때, 사업자/제공자가 미리 체크박스를 체크를 해둔 상태로서 사용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체크상태를 off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해두는 것입니다. 반대로, opt-out은 처음에는 체크상태가 off인데 사용자가 마음에 들면 on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넛지 Nudge>라는 책에서도 설명하듯이, 이런 기본설정에 따라서 on/off의 비율이 현격히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보통 opt-in방식으로 제공하면 최종 결과에서도 여전히 on의 비율이 높고, 반대로 opt-out인 경우 off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현재 페이스북의 기본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대부분)의 개인정보를 opt-in방식으로 공개하도록 설정이 되어있고, 만약 공개를 꺼리는 항목이 있으면 사용자들이 설정창에 들어가서 체크를 제거하도록 한 것입니다. 짧게 생각하면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사용자들은 기본설정이 잘 되어있다고 믿는 이들도 많고, 또 어떤 경우는 기본설정이 모두 공개가 되어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런 설정 자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용자들도 있고, 또는 그런 설정창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용자도 있고, 또 설정을 어떻게 변경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사용자도 있고, 또 그런 설정을 변경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귀찮아하는 사용자들도 있는 등, 매우 다양한 사용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처음부터 제공하는 기본설정인 모두 공개가 영원히 그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문제는 구글이 Buzz라는 실시간 공유서비스를 오픈할 때도 벌어졌습니다. 구글은 G메일에 포함된 개인의 연락처와 최근의 송수신 기록을 분석해서, 처음 Buzz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에게 임의로 친구로 생각되는 이들의 opt-in방식으로 following하도록 만들어두었습니다. 즉, 사용자가 원하는 경우 unfollowing/unfriending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단순히 opt-out방식을 취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고, 또 개인의 연락처 및 송수신기록을 무단으로 분석을 했다는 것 모두에 문제가 있습니다. 옵트아웃방식을 취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이미 설명이 된 부분이니 넘어가겠습니다. 서비스 사업자가 개인의 정보를 무단으로 분석해서 활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업자의 측면에서 개인들이 개인정보를 올리는 것은 그런 정보를 활용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용자의 측면에서는 그냥 내 정보를 단순히 기입하는 의미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내 주소를 적고, 내 관심사를 적고, 내 친구를 명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면서, 많은 경우, 이런 정보를 서비스개선에 활용해도된다는 사용자동의를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용자의 동의없이 개인의 연락처 및 송수신기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구글과 같은 대기업의 저지런 실수 아닌 악행을 어떻게 봐야할지... (여담으로, 구글은 초기부터 자신들은 '순진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많이 내보였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규모로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순진하다. 그러니 잘못없다.'는 식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피해나간다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입니다.) 비록, 사용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활용해서 서비스 개선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민감한 정보를 활용할 때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가 말한 '개인정보의 공개와 효용'이라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 정보를 조금 포기함으로써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많은 이들이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CNN에서 다룬 'In digital world, we trade privacy for convenience.' 칼럼을 주의깊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를 포기함으로써 둘을 얻을 수 있지만, 둘을 포기함으로써 셋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정보 통제권의 측면에서 프라이버시포기와 효용/편의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21세기/인터넷의 시대에 프라이버시란 단순히 개인 신상정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정보의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 통제권이란 누가 어떤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에 대한 측면도 있지만, 누구에게 공개될 것이고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에 대한 측면도 있습니다. 현재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이 전자의 통제권에는 많은 합의가 이뤄졌지만, 후자의 통제권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선례 best practice가 없는 상태인 듯합니다. 하나를 포기해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효용/편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포기된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에 의해서 무단으로 사용이 된다면 그 수많은 효용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낡은 규칙은 바뀌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의로 그런 규칙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사용자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정보를 공개함에 있어서 더욱 주의를 기울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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