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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한달에 한번꼴로 판교로 출장가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공항셔틀로 서현역까지 이동하고, 서현역에서 다시 택시로 사무실로 이동합니다. 사무실에서 예약해둔 숙소로 이동할 때도 그냥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합니다. 주초에 출장갔다가 강남역 일대로 나갈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그때 조금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일상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분들은 이게 뭐가 신기한 현상이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골에 살다가 가끔 지하철을 이용한 저에게는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러시아워를 지난 이후의 한산한 지하철 안에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립니다. 방금 전까지 의자에 편히 앉아있던 분들이 지하철이 정차하기 직전에 출입문 쪽으로 몰립니다. 이것만으로는 별로 신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앉아있던 자리 근처에도 출입문이 있지만 멀리 칸의 반대편으로 몰렸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정차해서 내렸더니 사람들이 몰렸던 출입문 앞으로 환승구/출구로 나가는 계단이 바로 있었습니다. 계단과 가까운 출입문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바로 뛰쳐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일 같은 지하철로 같은 역을 지나는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사람들이 기계화됐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도 인간이 공장 또는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움직이고 취급받는 것을 상기시켰는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최적화된 루트를 따라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그냥 기계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서울에 사는 대학친구들과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어느 역에서 환승해야 하기 때문에 환승이 편한 칸이 정차하는 플랫폼 위치에 미리 가서 기다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마저 느꼈습니다.

직접 로봇을 개발하거나 인공지능을 연구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데이터 분석 업무를 수행했고 다양한 머신러닝 (기계학습) 알고리즘도 공부했고 주변에 그런 연구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SF영화 이상의 것들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로봇 및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공통된 꿈 또는 목표라면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기계 (예, 이족보행로봇)나 지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 많은 알고리즘들은 인간 (또는 자연)의 모습을 모사한 것입니다. 인간의 오랜 꿈이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목격한 것은 오랜 반복을 통해서 채득한/몸에 배어버린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최적화, 효율, 학습 등이 인간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광화문의 촛불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발적 객체들의 집단행동을 봤다면, 지하철에서는 코드화된 인간의 모습을 봤습니다.

'인간을 기계답게'는 산업화의 오랜 곤조였고,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 근대식 교육 시스템입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목표는 그래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고 주어진 목표치를 채워야 하는 산업화를 만들었고, 그런 산업화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하루에 몇시간씩 어린 아이들인 닭장같은 교실에 쳐박아넣고 사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년 20년 전, 심지어 50년 전에 배웠던 것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10년이나 20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이 지도층에 올라가있고 (그래서 만들어진 괴물이 김기춘이나 우병우 같은 이들) 그저 종이쪼가리 면허증을 기계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사가 된 것이 현실입니다 (김영재나 백선하같은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또 피터지게 싸웁니다. (그렇게 올라간 자리에 김진태나 이완영, 최경환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살려두는 것이 기계학습의 한 분야인 강화학습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필요할 때는 갖다쓰고 불필요해지면 버려지는... 그래도 더 오래 더 중요한 위치의 부품이 되기 위해서 택한 것이 교육이라는 현실... 결국 재능의 낭비일 뿐이다.

본인은 러다이트주의자는 아닙니다. 최적화의 최전선에 있는 산업공학을 전공했고 데이터가 답이다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또 사람들을 현혹시킬 기술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겠다고 노력하는 사람이 러다이트주의자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내 게시판에도 짧게 적었지만 기계화된 인간에게 다시 인간성을 돌려주는 것이 지금 제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궁극의 기술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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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https://brunch.co.kr/@jejugrapher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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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재고

Gos&Op 2014.08.13 2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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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아래의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R.I.P. Robin Williams) 이 영화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대구 시내 극장에 가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여서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클립을 보면서 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도 모두가 다른 꿈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불필요한 획일적인 학습만 강요한다는 글을 적었습니다. (참고. 교육과 평등) 영상을 보면서 다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육의 목적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지도자(리더)를 양성하는 것도 한 축이라 생각합니다. 영상에 나오는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교육을 통해서 과연 지도자가 양성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보여지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식의 강압과 획일화가 현재 교육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교육에서 지도자로 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닌 보스와 리더를 구분하는 유명한 짤방(아래)이 있습니다. 그림에서 리더는 팀원의 앞에서 그들을 이끄는 사람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가장 앞에 있다는 것은 여러 불확실한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해서 그것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하고 대응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자율적인 사고가 없이는 절대 리더의 위치에 갈 수 없습니다. '자리에 똑바로 앉아라 Sit down' '가만히 있으라'의 명령에 순응한 학생들이 과연 자라면서 불확실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지금 교육은 리더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는 추종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이 생각에 잠시 눈물이 났습니다.



이어서 '명량'에 관한 글도 읽고 (참고, 진중권에게 '명량'이 졸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필즈상에 관한 기사도 읽고 (젊은 천재 4인.. 수학으로 우주와 미래에 더 다가갔다), 금강의 큰빗이끼벌레에 관한 기사도 읽으면서 (나는 큰빗이끼벌레를 먹었다) 같은 생각이 반복됩니다. 교육은 튀는 지도자를 키우는 것일까 아니면 얌전한 추종자를 양산하는 것일까? 리더십의 부재는 결국 그걸 바라는 자들의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조금 더 철이 든 다음에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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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8.13 22:2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들렀다 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구요. ^^

교육과 평등

Gos&Op 2014.08.06 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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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두맹이 골목을 다녀왔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벽화로 이어지만 마지막에는 어린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타일로 만들어서 벽에 붙여놨다. 그림의 주제는 자신의 꿈, 즉 장래희망이다. 아이들은 각자가 되고 싶은 미래의 직업 (미래의 직업을 장래희망 또는 꿈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은 늘 나를 슬프게 한다)을 서툰 솜씨로 그려놨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작품인 듯하다. 서툰 그림이지만 모든 그림은 제각각의 꿈이 그려져 있다. 웃음이 나는 그림들을 보면서 한순간 스쳐간 생각이 있다.

두맹이 골목의 꿈 벽화


아이들의 꿈은 모두 다 다른데 왜 이들은 다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걸까?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아이도 있었고 경찰이 되고 싶어한 아이도 있었고 소방관이나 운전기사 등 실로 다양한 꿈들이었다. 나의 어릴 적을 회상하더라도 대통령에서부터 과학자, 군인 등 모두가 다른 희망을 얘기했던 것같다. 나이가 들고 학급이 올라갈수록 그 종류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목격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해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철이 들면서 자신의 어릴 적 꿈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철듬의 증거로 삼는다. 빌어먹을.) 그리고 지금은 그저 편한 직장 생활, 안정된 직장 생활, 아니면 돈 많이 버는 직장 생활, 그나마 나은 것은 즐거운 직장 생활…?

제각각 다른 꿈을 꾸는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커리큐럼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이상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음악가가 되고 싶은 학생과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의 교과과정이 대동소이하다. 그나마 부자집 아이들은 돈지랄이라도 하면서 조금 차별된 교육을 받기는 한다. 아니면 재능과 무관하게 성적이 좋아서 과학고나 예술고로 가는 경우는 좀 나은 경우라 생각한다. 그나마 자유롭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은 꿈과 재능보다는 성적, 커트라인에 따라서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교육의 목적은 장점을 살려주는 것일까? 아니면 단점을 보완해주는 것일까? 교육의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지 못한 교육은 실패한 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의 꿈은 학교가 지켜주지 못하고 어른들의 꿈은 회사가 지켜주지 못한다.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꿈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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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nunmankm.tistory.com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8.06 21: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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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신사 Bloomburg에서 2014년도에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았다. R&D 투자, 제조능력, 생산성, 하이테크 밀집도, 고등교육 효율성, 연구원 분포도, 특허 등록 등 7개 부분으로 나눠서 평가했는데, 생산성 부분만 33위로 다소 낮을 뿐 다른 항목들은 2~6위로 골고루 상위권을 차지했다. 개별 항목에서 (특출나게) 1위를 한 것은 없다. 실제가 그렇든 아니면 그냥 자조든 대한민국하면 창조성이나 혁신이 뒤떨어진 나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런 평가가 나왔는지 의아하다. (이미 국내 언론사들을 호들갑을 떨었다.) ** 참고. Bloomberg: Most Innovative in the World 2014

(어제) 낮에 우연히 TED 동영상을 하나 시청했다. Andreas Schleicher가 2012년에 발표한 “Use data to build better schools”이라는 동영상인데, 제목과 같이 교육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고 발표 내용 중에 아래와 같은 자료를 젯했다. 뒤쪽에 하이라이트된 곳이 대한민국이다. 즉 대한민국은 현재 학업 성취도가 매우 높다는 얘기다.

"TED: 더 좋은 학교를 구축하기 위한 데이터 사용하기" 동영상에서 캡쳐함


문득 떠오르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종종 공개연설에서 우리 나라의 교육 수준 및 학구열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호들갑을 뜬 참고 기사들은 그냥 다음에서 검색해서 보기 바란다.)

그래서 페이스북이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아침에 블룸버그의 가장 혁신적인 국가를 랭킹한 것도 그렇고, TED 동영상이나 오바마의 연설에서 한국의 교육 수준이 높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수치로 보여지는 대한민국은 참 환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그냥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 대한민국을 칭송하는 것을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즉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되어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거다.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공교육은 무너지고 대부분 사교육, 즉 학원과 과외로 채워져있다. 체육이나 음악/악기, 미술 등의 다양한 인성교육보다는 국영수에 대부분 치중되어있다.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으로 대변되는 닭장에 가둬서 사육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다. 창의성이나 다양성, 자율성과는 전혀 먼 주입식 교육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수치로만 보여지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참 환상적인가 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하루에 12~14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고,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가계소득의 상당액을 교육에 투자하고 있는 모습에서 학구열을 느끼는 것같다. 물론 단기적으로 그런 노력의 결실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스스로 비판하는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이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같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미국에 사는 중국인 부모의 Tiger Mom도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비정상화를 논하기에 앞서, 이런 인식의 부조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간 및 투자액 등) 수치에 함몰되어 숨겨져버린 학생들의 인권, 개성, 다양성, 자율성 등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가?

갑자기 며칠 전에 본 글이 생각난다. 리가르드 IMF 총재가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게 한국은 스웨덴과 함께 학업성취도가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는데, 김용 총재는 8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한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리가르도 총재가 하루에 3시간만 공부하고도 이런 성과를 내는 것에 놀라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이해했을 거다. 위의 11시는 밤 11시라는 것을...

앨빈 토플러가 말했던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말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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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교육

Gos&Op 2013.01.11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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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지휘자 헤르베르트 본 카라얀. 그의 평전을 읽으면서 '카라얀이 만약 음악/지휘를 하지 않았다면 그가 천재로 인정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에 기계 메카닉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어쩌면 엔지니어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지니어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만약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경제학 등의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했다면 그는 그 분야의 천재가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카라얀은 운좋게도 지휘/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현재까지 음악에 문외한 나조차도 알고 있는 지휘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고. 카라얀 평전 1, 카라얀 평전 2)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선택해서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천재적 기질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분야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재능을 썪히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짧게 "모든 사람은 천재다. 만약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최적의 분야를 찾는다면… 그래서 대부분은 바보다."라는 글을 남겼다.

카라얀 평전 초반부에 마리아 칼라스의 명언이 한 줄 나온다. "좋은 교사와 위대한 교사의 차이: 좋은 교사는 제자의 자질을 최고로 끌어올릴 줄 알고, 위대한 교사는 제자의 장래를 내다볼 줄 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재능을 발견해주고 그 재능을 극대화시켜주고 또 그걸 통해서 미래를 개척/변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그런 부모/스승/멘토/지도자를 만난다면 우리 모두가 천재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현재처럼 자신의 소질과 흥미와는 무관하게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책에만 파묻혀서 지내지는 않아도 되고, 그래서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어릴 때 한 작은 행동이나 말을 보면서 '천재가 아닐까?'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고, 자식들이 진짜 흥미를 느끼고 또 재능을 보이는 것이 아닌 (부모의) 착각 속의 분야로 자식들을 내모는 경우를 자주 본다. 대부분은 안 좋게 끝난다. 자식들의 실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모두 해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무진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람이 천재가 되는 길은 참 험하고 멀다.

흔히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적어도 3가지 기준으로 그 일을 평가해본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인가? 내가 진짜로 잘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진짜로 해야만 하는 일인가? 즉, 흥미와 관심 Love to, 재능과 소질 Able to, 그리고 당위 Have to에 대한 자문이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 하는 일을 해야만 할 때, 가장 퍼포먼스도 잘 나고 어쩌면 그 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때로는 자신의 관심과 재능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도 종종 본다.

어릴 적에는 부모나 주변의 강요에 의해서 싫든 좋든 많은 것을 해본다. 운좋으면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에게 시대적 소명이나 당위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경우라면 그것을 즐기며 갈고 닦으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콤 그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1만시간의 법칙을 지킨다면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의 전문가로는 명성을 쌓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운좋게 발견한 그 분야가 진짜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괜히 적당히 좋은 분야에 올인하느라 진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 다른 뉘앙스지만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발견할 때도 -- 짐 콜린스가 말한 -- '좋은 것이 위대한 것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참고,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꿈을 꾸게 된다. 보통 그 꿈이란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꿈을 꿀 기회조차도 박탈당하는 것같다. 나만 하더라도 어릴 적에는 막연한 장래희망이 있었지만,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내면서 특별한 목적의식은 없었던 것같다. 짜여진 획일적인 커리큘럼에 따라서 교육받아지는 우민 백성들이 만들어지는 사이에, 진짜 소중한 우리의 꿈과 개성과 재능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만 한다. 최근에는 그런 몰개성 교육의 무용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미래를 위해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단순히 새로운 커리큘럼을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바보만 양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육 자체가 없어져야할지도 모르겠다. 2차산업의 역군을 키우기 위해서 갖춰졌던 현대 교육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놀거리와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서, 스스로 자신의 꿈과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 대목에서 앨빈 토플러의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한국의 학생들은 10년 후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한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과거가 아닌 자신이 설계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도 소위 말하는 머리에 피가 마르는 시기가 되면 성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흥미와 소질을 재평가해서 미래의 직업을 선택한다. 우민화로 인해서 그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여기서 좋아하는 것은 유희적/소비적 취미를 뜻하지는 않는다. 생산적 취미와는 어느 정도 맞다.

개인의 개성 (흥미와 재능)에 더해서, 당위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문화, 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불가능한 것들도 많다. 그런 하드한 제약조건이 아니더라도, 특정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또는 소명이 있다. 그런 시대정신과 소명에 맞는 일이 무엇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 같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유아독존이 될 수가 없다.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 그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되갚아줘야 한다. 즉, 사회기여 contribution가 필요하다.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이 사회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또는 역으로 어떤 해를 입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면서 일을 선택해야 한다. 우려되는 점은 이 사회의 저소득, 하층민, 소외계층의 경우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 전혀 없다는 그런 좌절감을 느낀다. 최근 대한민국의 양극화/불평등/불확실성 상황을 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런 인식을 갖는 사람이라면 역사회기여의 행위를 자행할 수도 있다. 실제 최근 자주 발생하는 묻지마 사건들이 그런 부작용의 일종이다. 개인이 사회에 느끼는 당위성은 사회가 그 개인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줄 때만이 생겨난다. 개인의 사회 당위성은 사회 (국가)의 개인에 대한 공정성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카라얀 평전에 나오는 글귀 (챕터제목) 하나로 글을 마친다.

천재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노력이다.

[업데이트 20130114] 주말에 안타까운 뉴스가 있어서 업데이트 합니다. 13세의 나이로 RSS (Rich Site Summary, formerly Really Simple Syndication)의 표준화에 참여했고 Creative Commons에도 참여했고 Reddit도 공동창업했던 Aaron Swartz의 자살소식입니다.  (참고. Prosecutor as bully, by L. Ressig) 그냥 유명 연예인의 죽음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데, 이런 기술분야의 천재들의 뉴스에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소에 이런 천재들이 더 많이/오래 사회에 공헌/기여하는 것을 원했던 사람으로써 그의 요절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깝습니다. 앞서 천재는 적성과 재능과 당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와 함께 '인성'에 대한 부분도 필요합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은 이들은 자신만의 인성을 갖기도 전에 주변의 주목부터 받기 때문에 제대로된 인성을 기를 겨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본 윤석찬님의 아론에 관한 글의 말미에 나오는 대한민국의 김웅용씨가 말한 'NASA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만 필요로했다'는 말에서 이들에게 자존감과 사회공동체의식과 같은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직 그들의 재능만을 빨아먹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성은 당위성과 함께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릴 적부터 천재성이 부각되기 때문에 그런 재능을 소진한 이후에 당위성과 인성을 자각하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검찰과 MIT에서 과도하게 그를 옥죄었다는 것이 그의 자살/우울증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가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받았다면 이번 사건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MIT JSTOR의 해킹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신념 때문에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위해서 JSTOR를 해킹했을 개연성은 높았지만, 그래도 당위성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무모하게 행동에 나서지도 않았을테고 제대로된 인성이 갖춰졌다면 그 이후의 사회적 압박/괴로움 그리고 삶을 포기하는 것을 그렇게 쉽게 자행하지는 않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한 분야에 적성과 재능을 가졌다지만 천재도 또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강요하는 것에 앞서서, 사람으로써의 자존감을 갖도록 인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청소년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도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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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주제 넘게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우민화, 즉 생산적인 근로자 양성을 목적으로 했던 근대 교육체계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미래의 사회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한다면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아니 학생들이 그런 인재로 자라나게 하는 환경을 준비하면 됩니다. 근대 우민화 교육의 종말을 선언했을 뿐, 교육 그 자체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실생활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지식을 흡수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버려둔다는 말의 함의는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창의적 자유를 허용하고, 또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도전을 가로막는 교육은 이제 시효를 종료해야 합니다. 미래의 교육은 분명 뇌를 사용하는 것 (암기)이 아니라 뇌를 활용하는 것 (사고/창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3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교육에 대한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근대 교육의 문제와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전개해놓은 것을 읽고 놀랬습니다. 리프킨도 근대 교육이 단순히 이미 죽은 그래서 더 이상 효용가치도 없는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리프킨이 분명히 밝히는 대안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작 <공감의 시대>를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은 자연과의 교감을 의미하고, 또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인간/동료와의 교감을 의미합니다. 물론 직접적인 교감에 더해서, IT기술 등의 현대의 이기를 이용해서 전 세계와의 교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시야를 세계의 수준으로 넓히고 지구 반대편의 인류들과도 소통하라는 것임)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 또는 교감 또는 소통은 결국 interaction을 의미합니다. 자연과의 interaction, 그리고 사람과의 interaction입니다. Interaction이란 달리 표현하면 곧 '경험 Experience'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 달리 말해서 -- 저의 표현대로라면 -- 주어진 자연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습, 즉 문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문자로 된 지식을 읽고 흡수하는 20세기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서, 주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또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21세기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풀이법을 던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문제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 문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정 assumptions을 더 하거나 제약조건 constraints을 설정해서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더 발전하면 그런 가정이나 제약사항 중에 일부를 제거하면서 문제를 일반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리프킨도 강조한 '토론'을 통해서 공동으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의 학생들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일전에 다음 제주에서 <인사이드 애플>에 대한 임정욱님의 강연 후에 적었던 <기업의 문화와 철학과 가치는 소중하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에서는 쿨선언 The Cook Doctrine으로 알려진 'We believe in...'이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에 바로 정욱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팀쿡이 즉석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쿡의 모교인 Auburn University의 신조인 Auburn Creed를 평소에 외우고 다녔고, 이 Auburn Creed이 'we believe in..'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는 미래 교육 (적어도 한국에서는)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생각의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팀쿡이 평소에 Auburn Creed를 암송하면서 수백 수천번 'we believe in...'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재직하는 회사의 신조는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도록 해줬을 것이라 유추가 가능합니다. Auburn Creed의 내용을 통해서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신념, 또는 정심을 심어주었고, 그 형식을 통해서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줬습니다. 추측하건데 팀쿡이 언젠가는 'we believe in...'로 시작하는 멋진 말을 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총회의에서 우발적으로 쿡선언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결국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좋은 생각의 틀/템플릿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경험하고, 교감하고, 생각하고, 창조하고... 교육의 미래는 결국 미래 인재들의 창의성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이 직접 만들어가야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더 쉽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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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stima.tistory.com BlogIcon estima 2012.05.25 12: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환님은 참 생각이 깊군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5.26 01: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정리도 못하고 적는 것입니다. 요즘은 업무 외의 문화프로젝트 때문에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중요한 단어나 개념들을 자주 듣게되고 그러면 또 그것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 엮어서 글을 적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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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아마 지난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인 듯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후로, 그저 우민화를 위한 교육은 더이상 힘을 쓰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 잘 먹히던 시대는 끝났다. 과거가 미래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교육의 시대가 끝났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지만, 어쨌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충분히 공감가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현재 교육체계의 틀이 갖춰지던 그 시대부터 교육이 미래에 더 이상 맞지 않았다. 현대 교육체계는 일종의 우민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국가의 지도자로 성장할 상위 1%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교육체계이고, 반대급부로 나머지 99%를 그들의 피지배계층으로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현대의 교육체계다. 1% 지도자가 갖춰야할 능력과 자질이 필요하듯이, 나머지 다수들이 현재의 지배체계에 순응하고 일을 잘 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교육/학교 시스템이다.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는 국민들을 위한 세뇌수단이 교육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교육의 모습도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여전한 것같다.

미국에서는 어릴 적부터 'You'll get what you got'이라는 것을 교육시킨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직업의 다양성이라던가 아니면 천한 직업은 없다는 등의 평등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교육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분리고착화를 위해서 고안되었다는 논리에 의한다면 UGWUG은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라는 강한 메시지가 있다. 네가 지금 가난하면 앞으로도 가난할 것이고, 네가 지금 힘이 없으면 앞으로도... 그렇게 힘없고 백없고 능력도 없으면 그냥 그렇게 평생 살아라. 그냥 위에서 주는대로 받아 먹고 불평불만하지 마라라는 강한 메시지가 UGWUG에 담겨있다. 

교육체계가 만들어지던 그 때부터 '교육이 기회의 균등을 제공한다'라는 헛소리를 전파했다. 그냥 그런 피지배계층의 무리들 사이의 평등일 뿐, 절대 1%의 상위로는 진입할 수가 없도록 고안된 것이 현대교육체계라는 거다. 그런데 가끔 1%에 진입하는 영웅신화에 도취되어서 나도 그런 운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헛된 기대를 갖게 된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일부러 잭팟이 터지면 요란하게 소리를 낸다고 한다. 마치 잭팟이 많이 터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자기도 조만간 잭팟을 터뜨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고취시켜주며 계속 갤블을 하도록 유혹하는 거다. 로또 1등 당첨을 크게 홍보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터... 

교육이 우민화를 위해서 탄생되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현대 교육체계는 그저 산업화시대에 특화되었다. 소위 산업일꾼이라 미화된 그런 노동자들의 근로 매뉴얼을 알려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서 농업생산량도 많이 늘었고, 산업에서의 대량생산이나 자동화도 이뤄졌다. 그런데 그기까지다. 정보화 시대를 위한 코더들만 양산하고 있다. (스스로 개발자라고 믿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진정 개발자인지 자문해보고 깨닫기 바란다.) 창의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해결해낼 능력은 교육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틀에 박힌 사고를 전수하는 것이지, 다양성이나 새로움을 전하는 수단이 아니다. 공고해진 현대 교육체계에서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

현재 교육이 충분히 좋은 자료를 제공해준다손 치더라도 현실의 삶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Numb3rs에서는 수학천재가 나와서 인간의 모든 심리와 행동이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이상한 수식들을 적고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연산 이상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미분적분이니 확률함수니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의 움직임을 설명해주는 것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밥을 먹고 사는 것과는 무관하다. '네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수학원리에서 나왔고, 컴퓨터도 그렇고...' 등과 같은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게 나의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런 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그냥 그러려니하고 자동차를 타고다니고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면 그만이다.

창의적인 인재 또는 스스로 사고하는 인재를 키울려면 -- 그런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 고쳐야할지도 모르겠다. --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저 정혀적인 문제를 풀도록 사육하고 있다. 그렇기에 교육의 시대가 끝났다라고 말하는 거다. 여전히 1차, 2차 산업에 더 많은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현대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사명을 감당한 창의적인 인재를 위한 교육은 분명히 현대 교육은 아닌 듯하다. 그저 변하는 환경에 반응해서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닌, 변화 이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런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커가기 위해서는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교육의 시대가 끝났다'라는 생각은 '문화라는 것은 그냥 경험하면서 습득하는 것이지 교육을 통해서 일일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것같다. 주변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또 스스로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가야할 사람들에게, 그저 주어진 문화환경에 순응하도록 교육을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그런 것이 자연이듯, 그저 그렇게 만들어지고 익히는 것이 문화다. 몸이 움직이게하는 그런 획일적인 교육이 아닌,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게하는 그런 다양한 문화가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고 스티브잡스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도 인문학에는 젬병이지만 그래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술에 앞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지금 나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룩한 사회도 관심이 있다. 그런 사회의 결실인 문화도 관심이 있다. 그런 문화적 토양 위에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현재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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