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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조금 고민하던 것을 순간의 생각이 더 해져서 일단 일을 벌려봤습니다.
다음인들의 삶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발적인 컨퍼런스인 D30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게시판에 글은 올렸습니다.

===
“누구나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고, 누군가는 그 스토리를 듣고 싶어 한다.”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한 것은 아니나, 얼핏 재미있는 생각같아서 의견을 구합니다.

다음 내에 자발적인 TED(Touch Every Daumin)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오랜 생각 중 하나인데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30분동안 (또는 15분 + 15분동안)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제는 업무 관련된 내용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형식도 강의가 될 수도 있고 시연이 될 수도 있고 그냥 30분동안 기타치고 노래하고 끝낼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동료 다음인들과 얘기하고 듣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와서 빅데이터에 관한 최신 동향을 30분동안 정리해줍니다.
다음주에는 어느 동호회에서 그들의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동지를 모집합니다.
그 다음주에는 팀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만들어놓은 서비스를 소개하고 시연합니다.
그 다음주에는 육아 노하우를 공유하고,
또 누군가는 집짓는 이야기를 펼치고,
또 누군가는 2박3일동안 제주도 여행하는 자신만의 코스를 소개하고,
또 누군가는 제습기를 살것인가 에어컨을 살 것인가를 얘기하고,
또 누군가는 새로 오픈한 서비스의 뒷얘기를 늘어놓고,
또 누군가는 안식휴가 다녀온 여행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기타 하나 들고 나와서 같이 노래하고,
또 누군가는…
그 어떤 지식이든 경험이든 유희든 헛짓이든...

회사 내에 섬들이 늘어나지만 섬을 연결하는 다리는 여전히 없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맨날 보는 팀원들이나 친한 사람들과만 무리지어 다닙니다.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와도 접점이 없으면 쉽게 어울려 동화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가진 문제를 잘 해결해줄 누군가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있는데
도움을 요청하기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어렵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움은 익숙함에서보다 새로움과 다양성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구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모으고 잇고 흔들 수 있습니다.
서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클을 부수는 것입니다.

30분 동안 자기 이야기를 하고 또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서 자신과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발견하고,
공통점은 발전된 어울림의 기회로 차이점은 또 다른 보완의 기회로 삼습니다.
나를 알리고 또 동료를 알아가는 것도 회사라는 울타리 내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딴 세상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닷투 2층 갤러리에 ‘process is more important than outcome’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세스나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와 철학입니다.



늘 그렇듯 -- 하게 된다면 -- 일단 제주 기반입니다.
잘 되면 서울에서도 비슷한 형식을 취해도 됩니다.
원한다면 출장와서 30분동안 얘기해주는 것도 환영합니다.
동호회가 아닙니다. 누구나 와서 발표하고 누구나 와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댓글들을 살짝 기대합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동참해보고 싶어요.
저는 이런 주제/내용을 공유할 수 있어요.
누가 이런 걸 많이 알고 있어요.
이런 주제를 누군가가 공유해줬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여러분(나) 자신이 가장 강력한 스토리입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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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개발 방법론

Gos&Op 2013.01.21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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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신규 서비스를 위한 기획회의에 참석한 직후에 적고 싶었던 글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글을 적고 싶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일반론이지만 정리해두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처음부터 제대로된 컨셉/기획안을 만들어서 빈틈없는 개발을 하거나 빠르게 개발하고 사용자들의 반응에 맞춰서 빠르게 수정보완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적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문장이외에 덧붙일 내용도 없었기에 그냥 글을 적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더 생각나서 글을 완성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새로운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기획중심의 개발과 개발중심의 기획을 확장/변형한 방법론입니다.

성공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획 또는 개발을 '설계'라는 용어로 아울러서 말하겠습니다.

기획중심의 설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시대의 트렌드와 사용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서 그 트렌드와 니즈를 파고드는 서비스의 컨셉을 정하고, 그 컨셉에 충실한 완벽한 서비스를 기획한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기획이라는 것이 그 기획대로만 개발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같지만, 말그대로 기획이 완벽했다면 개발 및 운영에 문제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의 기획서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실패하는 많은 기획서를 보면 대충 리소스를 산정해서 서비스 개발에 대략 10주 걸리고, 테스트하는데 2주면 되기 때문에 3달 후에는 서비스를 런칭할 수 있다 식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실제 개발에 착수하면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고 리소스는 늘 부족하고 개발기간은 늘 촉박하고 그래서 대강 나온 서비스를 제대로 테스트도 하지 않고 런칭을 합니다. 그러면 런칭 직후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고 초기의 버그는 사용자들을 떠나게 만듭니다. 요즘처럼 대체제가 많은 시기에는 그런 초기의 서비스 불만은 치명적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서비스들은 기획에서부터 시작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대체제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기다려줬고, 그래서 현재는 나름 성공/정착한 서비스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획에서 시작한 서비스들이 제대로 성공하는 경우를 못 봤습니다.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기획안을 못 만들면서도 우리는 늘 관념적으로만 이런거 좋겠지?라고 생각하고 불완전한 기획에서 개발에 들어가고 서비스를 런칭하고 그래서 실패하고 맙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획이 완벽하면 서비스는 성공합니다. 제품의 개발주기가 몇년씩 걸리는 산업에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개발중심의 설계.
두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적당한 감을 가지고 초기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일부 사용자들에게 테스트를 받아보고 보완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서비스를 런칭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이런 기능/서비스가 필요해라고 말하면 그걸 바로 구현해서 적용해보고 사용자들이 꾸준히 사용하면 기능을 더 개선하고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없애거나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구현해서 런칭을 하는 것입니다. 구글의 성공 이후에 영원한 베타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지금 가장 많이 사용하는 Gmail도 초기 몇년동안은 계속 Beta 표시를 달고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일반 사용자들은 그냥 괜찮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베타 마크를 붙이고 서비스했습니다. 알파, 베타 마크가 사용자들에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이해해주세요라는 그런 무언의 압력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고 꾸준히 개선해나갈께요라는 그런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기획중심의 설계가 완벽한 기획이 필요했다면, 개발중심의 설계에서는 빠른 구현 및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극단적으로 몇 시간에서 며칠내로 초기 버전이 구현되지 못하면 또는 초기 반응이 시큰둥하면 바로 접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긍정 또는 부정적인 사용자들의 (명시적/암묵적) 피드백을 얼마나 빨리 많이 수집해서, 그것들을 얼마나 빨리 수정/개선해서 차기 버전으로 만들어내느냐가 성공의 관건입니다. 초기 서비스에 버그가 있었지만 사용자들이 완전히 실망하기도 전에 며칠 또는 몇 시간 내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여준다면, 아무리 초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더라도 사용자들은 그 문제가 며칠 내에 해결될거다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고 나의 피드백이 바로 반영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느낀 사용자는 해당 서비스의 열혈 사용자가 될 가능성도 더 높습니다. 적당히 좋은 아이디어/컨셉을 빠르게 구현해서 적용해보면서 가능성이 없으면 초기 비용이 별로 안 들었을 때 바로 접으면 그만이고, 가능성이 있으면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해서 더 나은 서비스로 발전시켜나가면 됩니다.

데이터중심의 설계.
세번째 방법은 기획과 개발의 중간 쯤에 위치하면서 개발중심의 변형입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 구현하기에 앞서서 현존하는 데이터들을 모으고 분석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검색엔진에서 어느날 갑자기 특정 패턴의 검색어들이 많이 유입된다면 그런 패턴어를 처리해줄 수 있는 검색서비스를 만들어서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영화, TV프로그램, 인물 등의 다채로운 정보가 검색에서 스페셜로 노출되는 것도 그런 종류의 검색어들이 상시적으로 많다는 것을 관찰/분석한 이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간혹 경쟁사에서 서비스를 오픈해서 따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 기획중심의 설계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음.) 아니면 트위터에서 오프라인 번개에 대한 니즈가 급증하는 것을 관찰했다면 트위터와 매끄럽게 연계된 번개서비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트위터의 초기에 트위터를 둘러싼 수많은 독립 서비스들이 개발되어 트위터에코를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데이터중심의 설계는 신규서비스의 설계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이미 런칭한 서비스의 개선에 더 큰 역할을 합니다. A/B 테스트로 알려졌듯이 새로운 기능이 사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기존 기능과 신규 기능 사이의 버킷테스틀르 통해서 새로운 서비스에서 사용성이 더 좋으면 새로운 기능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데이터중심의 설계는 개발중심의 설계와 밀접하게 커플링되어있습니다.

경험중심의 설계.
네번째는 기획중심의 설계의 변형이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은 관념과 실제에 있습니다. 기획중심에서는 그냥 주변의 트렌드나 설문조사 등에서 나타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이라면, 경험중심에서는 나 자신이 실제 사용자가 되어서 그 속에서 느꼈던 불편한 점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극볼할 서비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존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해서 대체제/경쟁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작년 말에 사내외에 다양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글을 적었었는데, 그 속에는 기본적으로 그런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해보면서 스스로 불편함도 느껴보고 또 사용자들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관찰해보고 그들의 불편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보고 그걸 서비스화시켜보고 싶다는 것을 염두에 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여행을 해보면서 불편한 점이나 좋았던 점 등을 경험해보지 않고, 관념적으로만 이런 게 필요할 것같고 이런 건 ROI가 안 나올 것같고 등과 같은 관념으로만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다보면 결국 리소스는 많이 투입했는데 결과는 좋지 못한 그런 경우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실생활에서 참가해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어떤 서비스가 진짜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 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관찰해보면 그들이 인터넷과 너무 동떨어져서 생활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생활에서는 인터넷/모바일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인터넷/모바일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제대로된 것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상으로 네가지로 나누어서 서비스 개발방법론이라고 거창하게 적었지만, 뭔니뭐니해도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래피드프로토타이핑 rapid-prototyping입니다. 빨리 구현해서 테스트해보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기획중심의 설계에서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런저런 기능을 테스트해보고 실제 데이터를 보면서 파이널 제품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실제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이나 데이터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 위에서 시킨 업무라고해서 끝까지 기획서만 만드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정작 기획서가 나왔을 때는 이미 트렌드는 끝나가거서 유사제품들이 시장에 넘쳐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특히 이미 성공한 제품/서비스를 가진 기업들일 수록, 후속 서비스에 대한 (대박) 압박 때문에 이런 오류를 자주 보입니다. 그럴수록 초기 단계에서부터 테스트 및 분석을 거치면서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합니다. 확고한 (초기) 컨셉이 정해졌다면, 작게 생각하고 빠르게 만들어서 사용자들의 반응을 관찰/분석해서 좀더 강건한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애플에서 매킨토시를 처음 만들 때 케이스만 수십가지/차례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새로운 애플 제품은 적어도 100가지 디자인 중에 하나가 선택된다는 이야기, 페이스북에서 Q&A기능을 넣었다가 사용자 반응이 미비해서 그냥 빼버린 사례, 그리고 앞서 말했던 구글의 영원한 베타전략 및 A/B테스트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대학에서 품질공학 수업을 들으면서 초기 기획/설계 단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최종 제품 개발에서 실패가 적다는 것을 정석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실물 경제에서는 초기 디자인 단계에서 많은 것들이 검토되면 뒤쪽의 생산 단계에서 문제가 적게 발생한다는 얘기입니다. 몇 년의 준비과정이 필요한 제품의 경우에는 맞는 말이지만 인터넷/모바일 서비스처럼 몇 개월 또는 수주 내에 서비스의 승패를 결정하는 분야에서는 재고되어야할 내용입니다. 그리고 기획/설계 단계에 많은 것들을 점검하고 긴 회의를 거치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꾸준한 프로토타이핑 및 테스트를 거치지 않으면 완벽한 서비스가 그냥 좋은 서비스에 밀려나고 맙니다. 그리고, 3~6개월만 개발이 지연되어도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6개월 ~ 1년 이상의 장기적인 마일스톤을 세워두고 꾸준히 개발/개선해야할 서비스나 기반기술들도 있습니다. 양자 모두에서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테스트는 여전히 필수/유효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실에서는 다양한 경험에서 서비스 아이디어를 얻고 빨리 구현해서 데이터로 검증을 받아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만으론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린 친구들에게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창업해보라고 부채질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가진 재능과 패기를 바탕으로 조언하는 것이지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런 조언도 해주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일반적인 내용을 너무 길게 적었습니다. 앞서 '정석'이라는 표현도 사용했지만, 실제 성공하는 서비스의 왕도는 없습니다. 각 기업/조직의 문화에 따라서 더 적합한 방식이 따로 있습니다. 일반론에 함몰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PS. 웃픈 글이 있어서 링크를 겁니다. 게임업계인에게 직접 듣는 게임업계의 슬픈 현실. 대화내용에서 카툰 아래에 나오는 '기획자가 필요없다'는 대목이 최근 IT업계의 현주소입니다.

(2013.01.14 작성 / 2013.01.21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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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주제 넘게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우민화, 즉 생산적인 근로자 양성을 목적으로 했던 근대 교육체계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미래의 사회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한다면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아니 학생들이 그런 인재로 자라나게 하는 환경을 준비하면 됩니다. 근대 우민화 교육의 종말을 선언했을 뿐, 교육 그 자체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실생활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지식을 흡수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버려둔다는 말의 함의는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창의적 자유를 허용하고, 또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도전을 가로막는 교육은 이제 시효를 종료해야 합니다. 미래의 교육은 분명 뇌를 사용하는 것 (암기)이 아니라 뇌를 활용하는 것 (사고/창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3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교육에 대한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근대 교육의 문제와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전개해놓은 것을 읽고 놀랬습니다. 리프킨도 근대 교육이 단순히 이미 죽은 그래서 더 이상 효용가치도 없는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리프킨이 분명히 밝히는 대안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작 <공감의 시대>를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은 자연과의 교감을 의미하고, 또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인간/동료와의 교감을 의미합니다. 물론 직접적인 교감에 더해서, IT기술 등의 현대의 이기를 이용해서 전 세계와의 교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시야를 세계의 수준으로 넓히고 지구 반대편의 인류들과도 소통하라는 것임)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 또는 교감 또는 소통은 결국 interaction을 의미합니다. 자연과의 interaction, 그리고 사람과의 interaction입니다. Interaction이란 달리 표현하면 곧 '경험 Experience'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 달리 말해서 -- 저의 표현대로라면 -- 주어진 자연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습, 즉 문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문자로 된 지식을 읽고 흡수하는 20세기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서, 주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또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21세기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풀이법을 던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문제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 문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정 assumptions을 더 하거나 제약조건 constraints을 설정해서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더 발전하면 그런 가정이나 제약사항 중에 일부를 제거하면서 문제를 일반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리프킨도 강조한 '토론'을 통해서 공동으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의 학생들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일전에 다음 제주에서 <인사이드 애플>에 대한 임정욱님의 강연 후에 적었던 <기업의 문화와 철학과 가치는 소중하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에서는 쿨선언 The Cook Doctrine으로 알려진 'We believe in...'이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에 바로 정욱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팀쿡이 즉석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쿡의 모교인 Auburn University의 신조인 Auburn Creed를 평소에 외우고 다녔고, 이 Auburn Creed이 'we believe in..'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는 미래 교육 (적어도 한국에서는)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생각의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팀쿡이 평소에 Auburn Creed를 암송하면서 수백 수천번 'we believe in...'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재직하는 회사의 신조는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도록 해줬을 것이라 유추가 가능합니다. Auburn Creed의 내용을 통해서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신념, 또는 정심을 심어주었고, 그 형식을 통해서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줬습니다. 추측하건데 팀쿡이 언젠가는 'we believe in...'로 시작하는 멋진 말을 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총회의에서 우발적으로 쿡선언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결국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좋은 생각의 틀/템플릿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경험하고, 교감하고, 생각하고, 창조하고... 교육의 미래는 결국 미래 인재들의 창의성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이 직접 만들어가야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더 쉽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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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stima.tistory.com BlogIcon estima 2012.05.25 12: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환님은 참 생각이 깊군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5.26 01: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정리도 못하고 적는 것입니다. 요즘은 업무 외의 문화프로젝트 때문에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중요한 단어나 개념들을 자주 듣게되고 그러면 또 그것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 엮어서 글을 적고 싶어집니다.

문화가 서비스다.

Gos&Op 2012.04.27 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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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할 반응은 '뭐야 이거?'일거다라고 추측한다. 논리로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 
서비스는 사람이다. 사람으로 향하는 것이 서비스고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서비스다. 언제부턴가 기술 중심의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제품은 그저 제품일뿐 서비스가 아니다. (편의상 글에서 제품 또는 서비스는 인터넷 제품/서비스를 뜻한다.) 서비스한 사람의 경험에 바탕을 둔다. 그저 제품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잘 활용하는 걸로 착각한다. 그렇게 나온 많은 제품들이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제품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제품이 나온다. 그렇게 경험에서 나온 제품이 서비스다. 사람을 향한 제품이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되고, 사람으로부터 나온 제품이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된다. 경험이란 한번의 실행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누적된 일관된 실행이 패턴이 되고, 경험이 된다. 그런 경험이 시대에 전해지고 세대에 전파되면 문화가 된다.

문화
다음이라는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말 고집스럽게도 카페와 메일을 사랑한다는 거다. 벌써 성장의 모멘텀과 변화의 시기를 놓쳐버린 그걸 끝내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다. 카페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편하게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서 비롯되었다. 메일이라는 것도 형태가 이메일이나 웹메일로 바뀐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사람들 간의 소통의 경험이 새로운 수단으로 변화된 거다. 아고라라는 토론의 장도 결국은 광장이나 시장과 같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제품이 된 거다. 카페, 한메일, 아고라 등의 나름 성공했던 모든 제품들은 사람의 경험이 새로운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다음
언제부턴가 다음에서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서 성공한 제품이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카피캣이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품 (또는 회사)을 바라볼 때 기술중심인가? 아니면 사람중심인가?를 묻곤한다. 단언컨대 다음은 기술중심의 회사는 아니다. 기술은 그저 거들뿐... 그렇다고 사람중심의 회사인가? 그럴뻔은 했었던 것같다. 가끔 사람들 사이에 '다음은 뭘 하는 회사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검색에 종사하고 있지만, 다음은 그냥 검색도 하는 미디어회사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과연 다음이 미디어 회사인가?라고 직설적으로 묻는다면 또 망설여진다. 그런데 어제 대화 (거의 듣는 수준이었지만) 중에 다음의 시작이 문화였다는 얘기에 나름 힌트를 얻었다.

시작과 끝
다음이 초기에 인터넷 갤러리를 시작했다. 오프라인의 갤러리라는 경험을 인터넷의 서비스로 만들었다. 그런 서비스를 통해서 사람들은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친목모임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카페를 만들 수 있었던 것같다. 그와 같은 경험들이 한메일도 만들었고, 아고라도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다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전반에서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마을 공동체에서의 품앗이 전통이 서로 묻고답하고 하는 지식iN이 되었고, 굳건한 단일민족이니 친족중심의 문화가 1촌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후에도 카카오톡이니 몇명 성공한 제품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이제는 더 이상 욹어먹을 문화적 토양을 상실한 느낌이다.

핀터레스트
처음 이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핀터레스트 Pinterest'때문이다.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핀터레스트 이전에도 대한민국에 비슷한 제품이 나왔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어째서 미국에서 핀터레스트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약 1년반정도의 미국 생활에서 나름 힌트를 얻었다. 대부분의 공공건물 입구에는 게시판이 놓여있다. 대학/연구소의 소식을 알리는 경우도 있고, 축하메시지를 알리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파티를 알리는 경우도 있고, 벼룩시장이나 구인구직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게시판이 핀터레스트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대학에도 다양한 게시판들이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같다. 단순히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당국의 일방적 통보의 장으로 활용되었지 속의 사람들끼리의 친목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같다. 가끔 대자보는 붙지만, 그것은 당국에 대한 저항정신의 표현일뿐...

즐거움
언제부턴가 우리는 즐거움을 잃었다. 다음이라는 곳이 그냥 치열한 삶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렇게 문화의 토양이 잠식당했다. 그 이후부터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는 전쟁의 산물이 아니라, 유희의 산물이다. 즐거움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나올 수 없고, 빈약한 문화적 토양에서는 문화를 누림으로써 얻는 경험이 없고, 그렇기에 경험이 서비스가 되지 못한다. 그냥 사람들을 가정하고 제품만 찍어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제품들은 사람들이 외면한다. 다음을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속으로는 박봉이니 승진의 기회가 없다느니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재미가 없다'라는 거다. 재미는 태생적으로 일의 결과물이 아니다. 어쩌면 결과물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 

결실
재미는 그냥 결실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부대낌을 통해서 조금씩 쌓여갔던 삶의 패턴들. 그 일상들이 모여서 하나의 문화가 된다. 다양한 패턴들이 다양한 문화를 이룬다. 그런 인고를 통해서 얻어진 문화. 그걸 누리면서 만들어낸 결실이 재미다. 그런 재미가 사라졌다고 한다. 도전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전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된 욕구가 아니다. 그냥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것이상의 의미가 없다. 더이상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줄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기대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떠난다. 문화의 존재가 새로운 서비스라는 결실을 만들듯이, 문화의 부재가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

이식
문화의 부재는 어쩌면 조직의 경화에서 온건지도 모르겠다. 부드러움을 상실한 조직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 다양함을 잃은 조직이 새로움을 창발시킬 수 없다. 입에 자유가 없는 인간에게서 몸의 자유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게 조직이 굳어지고 사람은 그 조직에 적응한다. 적응하면 그냥 만족하고 그렇지 못하면 처음에는 욕도 해보지만 결국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떠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조직의 안전이 지켜진다. 이렇게 경화된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공신들부터... 그러나 산에서 거목을 옮겨심는 경우는 없다. 어린 묘목을 옮겨심는다. 어린 묘목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꿔나가야지 새로운 푸른 산을 만들 수 있다. 잘 가꿔진 거목은 문화재가 되고, 그렇지 못한 거목은 그냥 뗄감이 될 뿐이다. 푸르고 푸른 우리의 강산은 거목이 아닌 어린 묘목에 달려있다.

희망
그렇기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묘목들에게 기대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문화의 가능성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서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래서 조만간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글을 적을 예정이다. 아님 말고) 어린 세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한다. 그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다음이라는 회사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희망이 있다. 지금은 희망의 씨앗을 뿌릴 때... 중세의 암흑기 이후에 르네상스의 시기가 도래했다. 해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 대설과 한파 이후에 봄이 찾아온다. 지금은 분명 대한민국 인터넷의 중흥기는 아니다. 그저 오래 전 유물을 그냥 사용만 하고 있을 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유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다.

무논리
참 글을 길게 적었지만 논리도 없고 핵심도 없다. 이런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제 밤에 글을 적다가 지웠던 이유가 있었다. 말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고 싶었던 말은 서비스는 문화의 결실이고, 경험의 결심이고, 사람의 결실이다라는 거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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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인데 (사실 어떤 식으로 글을 적을지 전혀 구상은 되어있지 않음), 오늘 도로사정상 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글/생각을 적을려고 합니다. 제주에는 어제 밤부터 눈이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양이 내린 것은 아닌데,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집으로 통하는 길은 이미 어려붙어서 통행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번 퇴근을 시도했다가 사무실에 돌아와있습니다. 여느 글들과 마찬가지고 글의 논리흐름이 엉망입니다. 글을 적는 순서를 꺼꾸로 적을 예정이라서 글의 흐름이 더 많이 꼬여있습니다.

 최근에 자주 '21세기는 유희의 시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머리에서 나온 결론은 아니지만,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저를 붙잡습니다. 제러미 러프킨의 '소유의 종말 Age of Access'를 읽은 이후로 이 생각이 확고해졌는 듯합니다. 그 전에도 은연 중에 느끼고는 있었지만, '유희의 시대'에 도립했다는 결론은 못 내리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현재의 여러 사건/흐름들을 보면서 그 결론이 맞다는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유희의 시대를 다른 말로 소비의 시대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여러 맥락에서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유희/놀이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 큰 유희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여러 단계상 지금을 유희의 시대로 불러도 괜찮겠다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유희의 시대/세기라고 부른다면 지난 19/20세기는 생산/노동의 시대정도로 불러도 될 듯합니다. 대량생산 Mass-Production의 시대가 20세기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21세기도 여전히 대량생산이 경제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앨빈 토플러의 정의에 따르면 19/20세기는 제조업의 시대였고, 21세기는 정보의 시대가 되겠죠. 정보의 시대는 정보의 생산보다 정보의 소비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소비의 시대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가 단순히 삶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소같은 정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욱 윤활하게 해주는 그런 촉매제같은 정보들이 범람하고 그런 것들을 소비하고 즐기기 때문에 유희의 시대라고 정의 내립니다.

 지금 정보의 시대, 소비의 시대, 유희의 시대에는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갖춰야할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Play & Fun'입니다. 21세기에 성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용자들은 그냥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즐기고 나서 얻는 것이 바로 재미입니다. 고단한 회사의 업무도 플레이&펀의 영역에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은 재미가 없으면 더 이상 흥미가 없습니다. 자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돈이나 명예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택할 것입니다. (물론, 불확실성이라는 미래의 특징을 어떻게 매니징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자/소비자들이 쉽게 즐기면서 사용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재미/FUN을 얻어가는가?를 물어보면서 제품/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제품/서비스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플레이&펀 이전의 제품들은 Look&Feel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품/서비스가 쉬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매뉴얼의 도움이 없이 그냥 턴온/턴오프를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애플의 제품들이 룩&필에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 유수의 기업들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잡스의 키노트에서 자주 말했던 'It just works'이라는 말은 그런 룩앤필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노력을 기울렸고, 수면 아래의 제품 설계/개발에서는 엄청난 복잡도가 있었지만 최종 결과물에서는 그런 모둔 수고와 복잡성이 모두 감춰지고 단지 손에 잡힐듯한 심플한 제품/서비스만 남습니다. 그런 미니멀리즘 또는 심플리서티가 바로 룩앤필 시대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 애플의 디자인이나 사용성이 이제 점점 대중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중성 또는 보편성 이후에 제품의 차별화 또는 독창성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 플레인앤펀이라고 생각합니다.

 룩앤필 이전의 제품들은 어쩌면 make&work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든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야 했던 시대입니다.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무의 시대였기에 어떤 모양/기능의 제품이더라도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가 있었다면 판매가 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량생산체계에서 프레스로 찍어내면 팔리던 그런 시대 말입니다. 그런 시대의 정신이 바로 메이크&워크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시대를 종언한 시도가 바로 애플의 룩앤필입니다. 물론 애플만이 아닙니다. 다이슨이라던가 아이데오같은 회사들도 그런 궁극의 사용성을 보장해주는 디자인의 제품들을 설계/생산했습니다. 메이크&워크 시대에는 그냥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싸게 만드러서 더 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가격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가격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고, 더 대량생산에 치중했습니다. 그런 (가격전쟁)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다른 전략으로 소니나 도요타 등의 일본기업들은 품질이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우수한 품질의 제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그래서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능, 가격, 품질이 보편화된 시점에 나왔던 디자인 차별화/독창성이 큰 무기였습니다. 20세말과 21세기 초의 애플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기 포드의 T모델로 대변되는 미국의 자동차는 마차를 대신해줬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이 형성되었습니다. 독일의 자동차가 성공했던 것은 우수한 기능이었습니다. 지금 현대차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낮은 가격이기에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겠죠.) 일본 도요타가 미국시장을 석권하는 이유는 우수한 품질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동안 그리고 앞으로 몇년 사이에 앞서 말한 기능, 가격, 품질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이를 것입니다. 이 시점에 여러 기업들이 들고 나온 것이 독특한 디자인의 차동차들입니다. 스포츠/슈퍼카들은 성능이 우수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사용자들에게 주는 멋스러움이 주가되고, 또 미니쿠퍼를 비롯한 박스형자동차 등도 새로운 트렌드/디자인을 무기로 들고나온 케이스입니다. SUV는 그런 흐름에 역행하게도 기능에 초점을 맞췄는데, 안타깝게도 고유가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발 후퇴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기능, 가격, 품질, 디자인... 그 이후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재미라는 요소일 겁니다. 재미라는 것은 단순히 '웃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경험', 좋은 경험을 뜻합니다.

저렴함의 시대는 갔습니다. 복잡함의 시대도 갔습니다. 아름다움의 시대도 갔습니다. 이제 모든 제품/서비스가 웬만하면 저렴하고, 단순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그 제품/서비스에 재미를 첨가해야 합니다. 이제 제품을 판매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경험을 판매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해준다면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할 것입니다. 저렴함이 브랜드였던 시대, 다기능이 브랜드였던 시대, 심미주의가 브랜드였던 시대... 이제는 재미가 브랜드인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경험, 재미를 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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