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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나는 살아남았는가?

나는 올해를 시작하면서 -- 더 정확히는 작년 대선 결과를 보고 나서 -- 2013년도의 목표를 '살아남기'로 정했다. 그래서 2013년 첫 포스팅의 제목을 '2013, 살아남아라.'로 정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그 글을 찾아서 읽는다. 과연 나는 지금 살아남았는가?

치열하게 살아남기로 다짐했지만 지금은 그저 가느린 산소호흡기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을 뿐, 자생으로 살아남지는 못한 자가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위로 아닌 위로를 얻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아남은 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죽지 못한 자들의 세상이다.

11월 어느날 이 글을 적으며 한해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채워넣는 지금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장의 대자보가 세상이라는 큰 호수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참고 기사) 우리가 답해야할 물음을 후배들에게 떠넘겨버린 것같아 마음이 아프다.

2013년도 첫 포스팅의 마지막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마라. 적어도 두 분야 이상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이 둘을 결합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라'라고 명시했다. 페이스북에서 자동으로 설정한 Year in Review의 첫글도 이 글귀가 선택되었다. 지난 1년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올해는 매일 새로운 생각을 하고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한편 이상의 글을 적는다는 나름의 작은 목표를 세웠다. 상반기 6개월동안은 실천에 옮겼고, 어느 순간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글쓰기로는 내가 평생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7월부터는 예전처럼 생각날 때만 글을 적고 있다. 그래서 간혹 중요한 주제를 그냥 흘려보내버리는 우도 범했다.

하반기에는 사진에 다시 미쳤다. 제주 생활 6년이지만, 올해처럼 어두운 시간에 돌아다녀본 적도 없다.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야간에는 별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또 늦은 밤에 차를 몰기도 했다. 한달에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나름 즐거움을 만끽했지만, 또 그 모든 것이 너무 허무하기도 했다.

특히 제주의 새로운 곳, 아름다운 곳을 여행할 때면 늘 먼저 떠난 그 녀석 생각에 잠시 빠져든다. 늘 보고 싶고 또 늘 미안하다. 그 녀석을 보낸 이후로 내일도 눈을 뜰 수 있을까?를 늘 근심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같다.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지만 그 또한 소중한 경험이었고, 또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그 녀석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한다. 나는 세상에 뭘 남겨놓고 떠날 것인가?

근심으로 시작한 2013년이었기에 지금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솔직히 나는 2013년에 살아남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고 또 주어진 시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것이 모두의 소극적 사명이다. 그러나 더 적극적인 사명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또 하게 된다. Quo Vadis, Domine? 제가 함께 가도 되겠죠?

이제는 뭔가를 새로 시작하면 끝낼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그것을 끝내고 나면 다른 것을 시작할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제발 이것만은 제 손으로 끝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그것이 당신의 결정이라면 저는 따르겠어요라고 내려놓는다.

다시 오지 않을 2013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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