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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인터넷과 사고

Edge.org에서 세계의 석학 150명에서 '인터넷이 당신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꿨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들이 짧은 답변/에세지를 엮은 책 '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최근에 읽었습니다. 각자의 전문분야 및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변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답변은 크게 5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는 답변이 다수를 포함하고 있지만, 역으로 부정적으로 바꿨다는 답변도 눈에 띕니다. 그 외에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양상은 달라졌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았다는 답변들도 있고, 뭔가 바뀐 것같은데 그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아니면 변화시킨 것이 아닌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는 불가지론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그냥 자신의 환경에 맞게 변형시켜서 답변한 조금 동문서답형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도 스스로에게 '인터넷이 나의 사고방식에 어떤 변화를 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봤고, 또 블로그에 공개할 글이 없어서 급하게 이 질문에 짧게 답변을 해볼까 합니다.

엣지의 질문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인터넷, 사고방식, 그리고 변화입니다. 먼저 사고방식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이나 중고등학교 10대 시절에는 별로 사고에 대한 의식이 없었습니다. 맹목적 주입식 교육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 때는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때 어떤 식으로 사고했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별로 내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같고, 20대 중반 이후에 비로소 제대로된 사고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던 것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 비판적이 되어가는 기현상을 보인다는 점이 함정이긴 하지만...

그런데 제가 인터넷을 처음 사용한 때가 대학을 입학한 1996년부터이고, 그해 겨울 HTML을 공부해서 홈페이지를 만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후 본격적으로 (반항적이든 순응적이든) 사고를 하기 시작한 시점은 20대 중반은 시기상으로 2000년대 초반이고 이때는 이미 인터넷이 우리 생활 저변에 확대된 이후입니다. 즉, 저의 입장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전에는 사고에 대한 생각이 없었고 사고에 대한 생각을 가진 이후에는 이미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점입니다. 그래서 사고 또는 의식 방식에 대한 인터넷의 영향을 명확히 구분짓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위의 엣지 질문에 답변했던 세계 석학들은 대부분 40, 50대 또는 그 이상입니다. 일부는 그들이 젊었을 시절, 인터넷 태동기 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한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사회적 지위를 갖춘 3~40대가 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하는 20대 (이전)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 이후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한 이후에 인터넷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이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고 체계가 갇춰진 이후에 인터넷이 소개된 사람들과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에 사고체계가 갇춰진 사람 사이에는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에 태어난 제 또래 세대는 완벽한 인터넷 네이티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터넷 이주자도 아닙니다. 저와 비슷하게 어릴 적에는 인터넷이 전무했고 (PC통신은 있었지만), 철이 들고나서 보니 인터넷이 보편화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보다도 어린 세대들은 성장하던 10대 때 또는 태어난 그 시점에 이미 인터넷이 보편화를 넘어 생활화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 네이티브들에게 '인터넷이 사고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느냐?'라는 질문을 한다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본투인터넷 세대들은 인터넷이 그들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 인터넷은 디폴트로 주어진 환경에서 그들의 사고체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인터넷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줬느냐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주어진 인터넷을 이용해서 어떻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숙명입니다.

(2013.05.21 작성 / 2013.05.23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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