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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지성과 야성

오전에 드라이브를 하는데 중산간도로 옆에 차들이 많이 정차되어있는 것을 봤습니다. 사말오초에 제주에서 고사리를 뜯기 위해서 나온 차들입니다. 고사리는 독이 있다는데 야생동물들은 그것을 어떻게 알고 먹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방목된 소나 말이 고사리를 뜯어먹고 죽는다고 합니다. 야생 초식동물들도 어쩌면 고사리를 먹고 죽는 듯합니다. 사람이나 가축이 죽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야생동물이 죽으면 별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야생 초식동물들이 고사리를 먹지 않아서 죽지 않는구나라고 잘못 유추했나 봅니다.) 큰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동물들이 이상 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의 경우 사람보다 소리에 더 민감하고 후각 등이 많이 발달해있습니다. 동물들이 더 민감하게 진화했다는 생각보다는 인간이 (자연의 변화에) 덜 민감하게 진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짐승을 구분짓는 것 중으로 언어나 문화를 많이 말합니다. 언어/말을 통해서 서로 소통을 하고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구전되고, 그렇게 구전되는 공통의 경험들이 지식으로 축적되고 삶의 지혜가 됩니다. 짐승들도 어느 정도의 양육 기간이 있지만, 모든 판단들이 본능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맛있어 보이는 풀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독초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먹습니다. 기후나 자연 재앙에도 본능적으로 대처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재 그런 능력이 거의 없습니다. 풀을 보고 독초인지 아닌지는 구전된/배운 지식에 의해서 또는 식물도감을 확인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맹독성 식물을 판단하는 것이 한 사람의 경험 -- 이미 죽어버린 -- 에 의해서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지식으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식물을 보고 독초 여부를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인간은 미래를 예측합니다. (데이터마이닝에서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대비하는 것이 전형적 예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in normal cases) 과거의 경험과 지식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데 유용합니다. 사말오초에 고사리를 뜯는 것은 수십년을 거쳐서 축적된 지식입니다. 올해도 사말오초에 고사리를 뜯듯이 2014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구온난화 등의 팩터를 무시한다면) 사말오초가 되면 사람들은 고사리를 뜯기 위해서 고사리밭으로 모일 것입니다. 기온이나 습도를 측정해서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4월 5월이 되면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심도록 이미 프로그래밍되었습니다. 과일이 다 익어서 수확하지 않습니다. 다 익은 과일은 바로 먹기는 좋지만 보관 및 운송이 어렵기 때문에, 과일이 다 익기 전에 수확을 합니다. 이런 것이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고 미래 예측입니다.

그런데 미래 예측이 잘 작동하는 경우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입니다. 요즘은 슈퍼컴퓨터의 도움이나 많은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일기예보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을 합니다. 그러나 순간 발생하는 돌풍이라던가 파괴적인 태풍/허리케인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현재 발생한 태풍의 규모는 측정가능하고, 그걸 바탕으로 궤적 시뮬레이션 가능하지만, 언제 정확히 얼마의 규모로 발생할지 미리 (예, 몇 달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지진이나 해일 또는 화산 폭발과 같은 대재앙을 예측해서 대비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내진 설계된 건축물을 지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특정 시점/규모의 지진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언제라도 발생가능한 지진을 대비한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은 소위 말하는 블랙스완과 같은 경우에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렇게 인간들이 경험과 지식을 쌓으면서 미래를 적절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믿는 사이에 사람들은 야성을 잃었습니다. 아마도 수천 수만년 전의 인류는 지금 짐승들과 엇비슷한 감각을 가졌을 것같습니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각종 동물들이나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생활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야생생활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야성, 동물적/본능적 감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야성을 가졌을 때는 지진 전에 두꺼비들이 물밖으로 나오듯이, 인간들도 지진을 대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순간 자연/야생에서 그들에게 필요했던 야성은 잃어갔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야성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야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상실된 인간의 야성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하고 맙니다.

동물들은 야성을 지키기 위해서 군집을 이룹니다. 그러나 인간은 군집을 이루는 사이에 야성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도시인들의 무기력한 걸음걸이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릅니다. 어제 올라온 미생 125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고사리 때문이 아니라 미생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농부가 되어가면서 헌터 본능을 상실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입사 초기에 팀워크샵에 갔을 때, 사람들 앞에서 '나는 야성을 잃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적으로 지성이 올라가면 야성이 내려옵니다. 그러나 나는 지성과 야성이 꼭 반비례 관계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제 모습은 많이 측은해 보입니다. 잃은 야성만큼 지성이라도 얻었으면 다행인데...

(2013.05.04 작성 / 2013.05.15 공개)

(2013.05.08 추가) 참고글: 창의성에 대한 이해와 모순 http://www.venturesquare.net/51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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