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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기획은 참 좋은데... 개발은 참 잘하는데...

요즘 기획 회의에 자주 들어갑니다. 기획자뿐만 아니라 개발자들도 함께 모여서 그동안 내부에서 논의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저는 그냥 옆에서 듣고만 있는데 그냥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그냥 기획은 참 좋은데 왜 그런 불안감이 올까요?

기획자들은 몽상가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은 참 긍정적입니다. 꿈꾸는 모든 것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개발자들은 참 현실적입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달려듭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또는 바로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기획자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특히 예쁜 기획자 앞에서는 더 자신만만해집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기획자와 개발자가 모여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으면 둘 다 문제의 본질은 놓처버린 것같습니다.

기획자들끼리 모여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추려서 가져옵니다. 비슷한 부류끼리 오랜 시간을 얘기하다보니 그들이 보는 한 가지 세상에 대한 얘기들만 가득찹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다좋다 얘기하다보니 자신이 꺼내는 이야기의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꿈같은 기획서를 만들어옵니다. 꿈이 항상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개꿈이나 깨어질 것들이 더 많습니다.

개발자들은 그거 내가 해줄 수 있는데라고 우쭐댑니다. 꿈같은 기획서에 유능한 개발자의 조합이 참 좋아 보입니다. 어느 순간 개발자의 시야도 기획자의 그것과 같아집니다. 이제 마치 꿈이 이뤄질 것만 같습니다. 더이상 이들의 대화에서 틀렸다거나 나쁘다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꿈같은 기획서가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큰 비전을 공유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서로가 다른 것을 보는 무리에서 큰 줄기의 비전이 중요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말하는 무리에게는 굳이 비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따로 달려가도 같은 곳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모여서 레이저가 되서 단단한 물체도 뚫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리가 막무가내로 내달리다보면 결국 낭떠러지로 모두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기획, 개발회의를 들어가보면 이런 동질성에 동화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다름이 전제되지 않은 동질성은 결국 레이저가 아니라 낭떠러지로 향하는 한 무리의 짐승떼일 뿐입니다. 모든 기획서는 마치 성공할 것같습니다. 모든 개발은 칼같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꿈이 꿈인 이유는 그냥 꿈이기 때문입니다. 더 현실적인 기획이 필요합니다. 더 시니컬한 개발이 필요합니다. 부정성을 더하고 싶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혁신은 100번의 NO에서 탄생합니다. 1000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빛을 정제해야지 레이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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