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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구루대담. IT가 건축을 만나다.

지난 달에 열심히 포스팅을 했던 GET Greate Escape Tour 세번째 여행이 어제 시작했습니다. 첫날 첫번째 행사로 다음스페이스.1에서 몇 가지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은 고제량님의 제주 생태관광 소개, 고건혁님의 GET 오리엔테이션, 조재원님의 제주와 건축, 그리고 전정환님의 Daum의 중간지대 실험의 4꼭지로 이뤄졌습니다. 강연이 모두 끝난 후에 조재원 @citysoul 0_1 Studio 소장님, 황지은 @JieEun 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님, 그리고 전정환 @drawnote님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건축종사자와 IT종사자가 만나서 2:2 대담이 이뤄졌습니다. GET 3차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는데, 평소에 제주에서 집짓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더 좋은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2:2 대담이라고 했지만, 저는 여전히 주로 듣는 역할이었습니다. 약 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떠올랐던 생각의 단편 몇 점을 그냥 적으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축은 IT와 다르다. 그렇지만 같다."입니다. 

건축과 IT는 겉보기에는 너무 다른 분야입니다. 건축이란 건물의 컨셉을 정하고 그 컨셉을 구현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예술적 창작 활동입니다. 이에 비해서 IT, 적어도 인터넷 포털은 서비스의 컨셉을 정하고 그 컨셉을 구현하기 위한 코딩을 하는 일종의 기술적 생산 활동입니다. 하나는 예술적인 면이 강하고, 다른 것은 기술적인 면이 강합니다. 그런데 영어에서 예술도 Art이고 기술도 Art입니다. 전혀 다른 두개의 분야이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눌수록 서로가 서로를 닮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건축은 그냥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서 생활할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IT도 그냥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사용자들의 생활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건축의 시작이 사람 (건축주)이었고 또 그 끝도 사람 (거주인)입니다. 그렇듯이 IT 서비스의 시작과 끝도 그것을 사용할 사용자들입니다. 건축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 맞는 (그리고 주변 환경에 맞는) 건물을 짓는 것이 건축가들의 사명이라면, IT 기획/개발자들의 사명도 사용자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리고 현재의 기술 트렌드를 이해하고) 그들이 편하게 사용할 서비스를 만들어서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늘 사용자들의 행동패턴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쉽게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만든어 낸 것이 현재의 다양한 서비스들입니다. 물론 모든 서비스가 다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적어도 모든 서비스가 많은 고민을 거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용자를 잘못 판단해서 만들어진 서비스도 있어서, 결국 망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대형 건물을 짓기에 앞서, 클라이언트위원회를 구성하여 건축주와 설계사가 함께 컨셉을 정하고 여러 디자인 요소를 추가/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더 만족스러운 건물이 탄생합니다. (다음스페이스.1의 실패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건물은 그냥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과 그들의 삶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건물에 녹아있어야 합니다. 서비스도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들의 삶을 반영한 것이어야 합니다.

(단편적인 것이지만) 이야기 중에 나왔던 모듈화 Module 내용은 단적으로 건축에서 지향하는 하나의 방향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지향하는 하나의 방향과 너무 닮은 쌍둥이처럼 느껴졌습니다. 각양각색의 레고 블럭들을 조립해서 다양한 구조물을 만들듯이, 요즘 건축물들도 다양한 자제들을 미리 공장에서 만들어서 조립만해서 집을 완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방이나 거실 등도 미리 공장에서 만들어서 그냥 현장에서 조립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단어만 조금 바꾸면 CS 강의 시간에 들었던 Object-Oriented 이야기와 너무 닮았습니다. 여러 객체를 미리 설계해두고 재사용한다는 OO개념이 건축에서 모듈화 시공과 너무 똑같습니다. CS 수업시간에도 OO 개념을 설명하면서 레고블럭을 예로들어 줬던 오래전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개념이 건축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최근에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과정이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과정과 너무 닮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건축에서 개념을 빌려왔다면 역으로 IT에서 활발히 발전된 개념이 건축에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바로 오픈소싱 개념입니다. 오픈소스를 이용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듯이, 건축 컨셉이나 디자인을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모든 건물이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져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 사람의 건축 과정이나 경험담을 서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저 집은 어떻게 지어졌을까?를 생각해본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해서 도저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러서 집주인과 이야기를 해본다거나 건축설계사를 찾아가서 문의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어떤 이가 자신의 집을 설계도와 그리고 그 집을 지으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 노하우는 블로그나 책으로 잘 정리해서 일반에 공개한다면 어떨까요? 이것이 일종의 오픈소스입니다. 그런 경험을 읽어보면서 나의 집은 어떻게 짓겠다는 감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건축설계도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마음이 맞는 4~5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한 컨셉의 집을 지어서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을 상상해보셨을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건축가를 선정해서 마을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한명이 먼저 집을 짓고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각자의 개성에 맞도록 2호, 3호 확장/변형해서 지어나가는 것도 같은 컨셉 아래 마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IT 서비스는 빠르게 프로토타이핑을 해서 바로 시연을 해보고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고 더 개선을 해가거나 아니면 바로 접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그런 래피드 프로토타이핑 rapid prototyping이 불가능합니다. 한번 지어진 집은 쉽게 고칠 수도 그냥 부숴버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의 문제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기 때문에 실제 시공에 앞서서 다양한 모형을 제작하고 도면을 바꿔 그리는 과정이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 서비스들을 보면서 너무 오래 고민해서 만든 서비스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많은 서비스의 성공이 거의 우연으로 보입니다. 모든 서비스의 성공이 그냥 우연으로 보이지만, 면밀히 조사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성공하는 서비스는 단지 시대의 흐름/트렌드를 잘 탔다고만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서비스는 분명 신선한 개념이 있고 또 그 개념을 사용하기 쉽게 구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가 온다 A Whole New Mind>에서 대니얼 핑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High Concept과 High Touch를 구현한 서비스가 성공합니다. (이번 주 내내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적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서비스가 하이컨셉과 하이터치를 가지려면 많은 시간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좋은 집, 즉 하이컨셉과 하이터치를 가지는 집을 짓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 외에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벌써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두번째로 좋은 선물입니다. 첫번째 선물은 죽음입니다. 둘 다 상실이네요.) DIY나 뉴얼바니즘 등의 얘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면 갈수록 집을 짓는 것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접 코딩을 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어쩌면 집을 지으면서 경험해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평소에 제주에서 나만의 멋진 집을 지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늘 상상만했지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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