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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지식과 경험 (전문성)의 함정

같은 팀은 아니지만 같은 본부에 유능한 개발자 한 분이 있습니다. 검색엔진과 검색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오랜 경험을 쌓은 분입니다. 그 분과 얘기해보면 검색과 제반 사항에 대한 깊은 전문성과 디테일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입니다. 이 글의 시작은 그분과의 대화 중에서 관찰한 것을 적고 있지만, 나의 이야기이며 또 많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분야에 많은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축적한 이들을 가리켜서 전문가라고 칭합니다. 세계가 발전하고 다원화되어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업무가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험 덕분에 해당 분야의 업무를 매우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관록이 쌓이면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디테일까지 매끄럽고 완벽하게 처리합니다. 그런데 한 분야에 오래 몸을 담고 있다보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그동안 길들여진 업무스타일을 벗어나기 힘들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에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적응은 전문가로 가는 길이면서 또 (과거 스타일의 고수라는) 함정에 빠지는 첩경입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다양성이 떨어지는 과정이 되면 안 됩니다.

'정의'를 영어 단어로 뭐냐는 물음에 인문학 계열의 학생들은 Justice라고 말하고, 이문학/공학 계열의 학생들은 Definition이라고 답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백그라운드에 따라서 세상이나 사물을 달리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가치관이 형성되면 다른 가치관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하나의 확고한 가치관 또는 생각의 틀을 갖는다는 것은 성장에 매우 중요하지만,  타인의 의견이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 그 유능한 개발자와 얘기하면서 어떤 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색인 Index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 분은 검색엔진에서 사용하는 색인과 역색인 Inverted-Index이라는 용어로만 색인을 이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익숙한 단어나 개념에 쉽게 빠집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중요한 세가지 물음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 what을 어떻게 how 왜 why 하느냐?입니다. 그런데 왜?와 무엇?은 상대적으로 가지수가 적고 통일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노하우 know-how라 부르는 어떻게?는 매우 많은 가지수를 가집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될수록 '어떻게'에서 가장 효율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Best Practice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베스트 프랙티스를 많이 알고 실행하기 때문에 관록이 있는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지만, 역으로 베스트 프랙티스가 아닌 방법으로는 전혀 시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때로는 처음에 주어졌던 문제의 환경과 조건이 변경되었는데도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보다는 그저 과거의 비슷한 경험에 바탕해서 과거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꺼집어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이 맞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효율성의 극대화가 유연성과 다양성의 희생으로 얻어지면 곤란합니다.

실수를 적게 하는 이가 전문가지만,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얻지 못하는 것도 전문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실수를 경험하고 그리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유연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매번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봐도 예전 방식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더 나은 방법을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전문가와 대화 또는 논쟁을 하면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서 자신의 의견이 100% 맞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치도 않고, 그들과 다른 개념과 정의를 바탕으로 그들의 용어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개념/단어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의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일반 범인들은 시장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전문가들은 너무 고귀한 자신만의 언어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전문가들이 자신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야지 전문가로써 권위와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장의 언어를 입에 담지 못합니다.)

ps. 친하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미화시켜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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