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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왜 서비스는 산으로 갈까?

지금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는 발표자료가 있습니다. KTH의 분산기술Lab의 하용호님 (@yonghosee)이 작성한 '화성에서 온 개발자 금성에서 온 기획자'라는 자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자료를 참조하세요. (내용은 그닥. 제목은 굿.) 자료의 제목은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차용해서 정한 것입니다. 존 그레이가 그의 책에서 남성과 여성의 생각구조가 다르고 그래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화성과 금성에 비유해서 풀어나갔듯이, 서비스 개발에서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소통의 어려움을 같은 식으로 금성과 화성에 비유해서 적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성은 영어로 Mars로 전통적으로 남성을 상징하고 있고, 개발자도 비슷하게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둔 남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반대로 금성은 영어로 Venus로 여성을 상징하며, 기획자들이 더 인문적 배경을 가진 소프트한 여성적 측면이 강합니다. 그렇게 기획자와 개발자들의 백그라운드가 다르고 대화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소통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료는 기획자들에게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단어를 보여주는 측면이 강합니다.)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소통이 부재하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기획한 또는 개발한 서비스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만을 말하다 보면 초기 기획의도를 잊어버리고 영 엉뚱한 서비스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각자의 요구사항을 맞춰주기 위해서 불필요한 기능들을 하나둘 추가하게 되고, 그렇게 되다보면 처음에 잡았던 서비스의 크기보다 덩치가 엄청나게 커지게 되고, 프로그램의 덩치가 커지면서 사용하는 리소스는 증가하고 속도는 떨어지고... 등등의 이상 현상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은 사용자들이 해당 서비스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서비스는 또 다시 대표적인 실패사례라는 주홍글씨를 남긴채 기획/개발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아픔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소통부재가 서비스를 망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분명 그들 사이의 의견불일치 및 합의부재가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그런 것은 시간이나 리소스를 더 투자해서 합의의 과정을 거치면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올 수가 있는 부분입니다. 서비스가 엉망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기획자는 금성에서 왔고 개발자는 화성에서 왔기 때문보다는 그들이 기획/개발한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사용자들은 '지구'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지구인 사용자들에게 화성의 언어로 말하고 금성의 생각을 전하기 때문에 서비스는 결국 지구인의 입맛에 맞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산으로 간 배를 다시 강/바다에 띄울 수 없게 됩니다. 

서비스의 기획이나 개발 단계에서 사용자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개발되는 많은 서비스들을 보게 됩니다. 물론 기획자나 개발자들이 스스로 사용자가 되어서 그들의 불편사항을 제거하기 위해서 서비스를 만들 때는 성공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히 사용자가 아닌 다른 목적/이유를 가지고 시작한 서비스의 경우 사용자를 배제해서 제대로 성공한 경우를 볼 수가 없습니다. (다른 목적/이유라함은 사용자의 편의나 재미가 아니라, 사업자의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 화성인과 금성인 사이의 자연스러운 소통은 단기간에 적은 리소스로 매끄러운 서비스의 개발을 가능하게는 하지만, 그것이 지구인들에게 적합한 서비스가 탄생되었다라는 보장은 할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그래서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서비스는 화성인과 금성인 간의 소통보다도 더 화성인과 지구인, 금성인과 지구인 사이의 소통이 더 잘 이뤄졌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 소통 이후에 화성인과 금성인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에 따른 결과 서비스는 분명 지구인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지구인 소통하는 방식은 이미 많이 존재합니다. 흔히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기획/개발 전단계에서 잠재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나 심층인터뷰를 해서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수집할 수도 있고, 아이데오 등의 혁신기업들처럼 사용자들의 행동패턴을 그냥 관찰만 하면서 핵심포인트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고, 잘 알려졌듯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인사이트가 충만해서 고객의 (잠재) 니즈를 바로 캐치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아니면 구글 및 인터넷 기업에서 자주 사용하는 알파/베타서비스와 같이 프로토타입보다는 나은 형태의 서비스를 빠르게 런칭한 이후에 사용자들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동패턴을 분석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하는 방법 등도 있습니다. 어느 방법이 나은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상의 한가지라도 활용해서 항상 고객/사용자와 소통을 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서비스가 산으로 가는 이유는 금성인 기획자와 화성인 개발자의 소통부재보다는 지구인 사용자를 배제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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