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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일과 재미 Graduated Syndrome

 방금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사람들이 내게 일을 부탁할 때, '이거 중요한 거에요'나 '이거 급한 거에요'라고 하지 말고, '이거 재미있는 거에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중요하고 급한 건 너네 사정이고, 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단 말이야. (원문링크)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몇 개의 단어가 있을 거다. 내게 있어 그런 첫번째 단어는 '자유'다. 사람들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자유의 뜻이 달리 사용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 중에 하나가 바로 '자유'다. 그런데 자유가 나의 가장 기본되는 모토라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자유만을 추구할 수가 없다. 어쨌던 나는 '나름' 이타적인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 속에서는 나의 자유를 희생할 때도 있다.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일'이다. 혼자만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 틈에서 함께 일을 해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영역을 때론 포기하기도 하고 또 남의 가치를 수용하기도 해야 한다. (물론, 난 이 면에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번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상처를 주면서 또 가장 아픈 사람은 나 자신이지만...) 그래서 일이라는 컨텍스트 내에서는 나의 가치는 자유보다는 재미로 바뀐다. 물론, 자유로운 일에서 오는 즐거움이면 더 좋겠지만, 일이라는 것이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계약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 즉 타율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기에 많은 경우 즐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일이 즐거울 수가 있는가?

 과연 일이 즐거울 수가 있는가?
 뭐, 가장 간단하게는 내 마음자세를 바꾸면 일이 즐거워질 수도 있다. 일단 나 자신을 버리고 나의 어리석은 자존심을 버리고 그냥 그렇게 물흐르듯이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즐겁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동료들과 트러블을 발생시키지 않는 방편일 뿐이다. 적어도 나 자신을 희생해서 동료는 즐거울 수가 있을 것같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알아서 해주는 일종의 꼬봉이 생긴셈이니, 회사 생활이 안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난 천성적으로 그렇게 마냥 허허 하면서 일을 해주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과연 일이 즐거울 수가 있는가? 즐거울 수가 있기도 하다. 단, '즐거운 일'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 그러니 내게 일을 부탁하거나 시킬 때 그 일의 중요도나 시급성으로 날 꼬시려들지 말고, 그 일이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고 날 꼬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더라도 내가 느끼는 재미가 없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뭘까? 어찌어찌해서 KPI/인사고과는 잘 받을 수 있는지 몰라도, 내가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난 그냥 일개 일꾼에 불과하지 않을까? 뭐, 비슷한 취지로 이런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언제부턴가 개발자들이 마술상자가 되었다. 그냥 손만 집어넣으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줄 안다. 그런데 더 미련한 것은 누군가 손을 넣으면 또 그가 원하는 것을 쥐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걸 해결해주려고 밤을 새는 개발자 자신... (원문링크)


 그렇다, 나는 지금 누군가가 아주 급하다고 말하면서 부탁한 일을 처리해주느라고 지금 이 시간 (22:00)에 사무실에 앉아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이 일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사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먼저 알아서 이 일을 해줬다면 지금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회사에 들어온지 3년이 흘쩍 지났지만 아직도 대학원병에서 완치되지 못했다. '대학원병'이란, 언제든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구실에 가서 그 일을 처리하는 걸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부정적이지만, 나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병이라고 표현하니 좀 그런데 Graduated Syndrome이라고 표현하자. 나는 천성적으로 올빼미형 인간이다. 저녁에 잠이 들기 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른다. 학교에 있을 때는 가끔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거나 연구실로 달려가곤 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넌 왜 그렇게 사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삶이 좋았다. 학교에서 실험을 해서 논문을 쓰는 것이 내 일이었고,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고, 또 내가 재밌어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내가 맡고 있는 일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인가?라는 생각과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인가?라는 의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아직 대학원병에서 완치되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밤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일어나서 사무실에서 바로 구현해보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아이폰 메모장에 아이디어만 짧막하게 메모해두고 그냥 잠이 든다. 내가 잠을 자다 말고 밤늦게 사무실에 나와서 밤을 새며 일한다고 해서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내 즐거움을 포기하면서 내 병을 고쳐가고 있다.

 ... 우울한 개발자의 넋두리는 계속된다. (참고로 난 다음에 들어와서 '개발자'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난 늘 다음의 서비스의 사용자일 뿐이다. 일반 사용자들보다 조금 더 긴밀하게 그 서비스를 바꿔갈 수 있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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