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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카톡 이슈에 대한 잡생각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신나게 글을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됐다. 신분이 바뀌니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더 이상 객관적으로 관점을 제시하거나 논조를 이끌어갈 수 없어서가 아니다. 어차피 비판에 객관성이 어디있겠는가 싶다.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의 서비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신랄함이 객관성이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사실이나 근거를 가져오더라도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온 느낌이나 생각은 정도의 차이일 뿐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굳이 방어적인 글을 적으려는 의도는 없지만, 살짝만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비난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말을 아끼려고 하지만, 그래도 머리 속에서 흘러다니는 생각을 그냥 버리는 것도 아닌 것같아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막 적는다.

먼저,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다음카카오가 잘못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는 신뢰가 바탕이다. 신뢰란 적어도 내가 문제에 처했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까고 외면하지는 않겠지정도의 미약한 끈이다. 그런데 현행법을 지키기 위해서, 영장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생까는 수준을 넘어선 일종의 배신, 배반이다.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약속이 깨어졌다고 믿는다면 그것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없다.

어쩌면 합병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내부의/서비스의 사소한 것 (물론 사소한 것이 아니지만)을 모두 챙기지 못했던 것같다. 조직 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이슈들, 그리고 갈등에 대해서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근데 그런 아쉬움은 내부인들만 느낄 수 있는 억울함이다. 지난 몇 달동안 합병 때문에 서비스의 디테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네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억욱함은 억울함일 뿐이고, 억울함은 능력의 한계를 보여준 결과일 뿐이다. 고객을 소홀히 다루는 장사꾼은 사람을 남기지 못한다.

지금 다음카카오는 프레임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지금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카톡의 내용을 암호화하느냐 또는 얼마나 보관하느냐는 아닌 것같다. 그리고 카톡의 내용을 외부(검경)에 제출했느냐도 아닌 것같다. 결국 무분별한 공권력의 남용에 따른 다음카카오도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권과 VIP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싸움에 말려든 측면에서 측은하다. 그러나 싸움이라는 것이 사실과 논리의 과정이 아니라, 감정의 결과다. 부분별하고 부적절한 법집행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사실보다는 내 대화 내용이나 대화 상대가 함부로 외부에 유출될 수 있다는 그런 불안감에서 오는...

솔직히 말해서 집권자들이 내 카톡 내용을 감청할 것같지는 않다. 그러나 요즘처럼 불안정한 시절에 내가 또 열사로 돌변할지도 모르고,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사건의 피해/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잠재적 불안감은 결국 상대와의 신뢰를 깨뜨리고,... 자기 검열, 자기 방어로 들어가게 만든다.

프레임 전쟁에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같다는 느낌도 받기 때문이다. 엄청 심각한 사안을 별 거 아닌 것처럼 덮어버리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태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역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도 있다. 최근에 계속 그랬듯이 피해는 많은 국민들이 보고 이득은 소수의 기득권들만 챙겼다. 부자감세와 서민증세도 그렇다. 인천아시안게임 적자 문제에서도 비슷한 인터뷰가 실린 것을 봤다. 다음카카오가 선량한 피해자라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장 앞선에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적극적 가해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만약 합병하지 않았더라면,,, 마이피플이 이 사건에서 반사 이득을 얻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아니다라는 결론은 이미 내렸다. 왜냐면 그런 준비가 전혀 없었으니깐...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게 있다. 바로 네이버와 라인이다. (물귀신 작전이 아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언제나 그런 것같다. 하나의 악을 선정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선량해진다. 그리고 이슈에서, 기억에서 사라진다. 갑자기 네이버는 평정됐으니 다음은 다음이다라는 어느 분의 말이 떠오른다. 최근 몇달동안 일부 언론에서 네이버를 줄기차게 물어뜯었다. 이제 다음카카오 차롄가?

책을 읽어보면 과거의 여러 악재성 루머에 대한 대처한 다양한 얘기들이 나온다. 즉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성과 부정성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다른 프레임으로 끌고가서 물타기하는 얘기도 있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는 얘기도 있고... 사건과 환경에 따라서 묘수와 악수가 존재하는 것같다. 카톡건에서 묘수는 뭐고 악수는 뭐가 될까? 어찌됐건, 임시방편으로 넘어가지 않고, 더 큰 신뢰를 쌓는 것밖에 없다. 카톡 사건이 어느 집단에게는 천금같은 기회가 됐듯이, 또 다른 사건으로 이번 사태가 묻혀졌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잘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합을 이루자. 우리는 아직 과정 속에 있다. 지금 치르는 비싼 수업료를 헛되이 허비하지 않았으면...

(추가) 한국에는 BH라 불리는 알려진 미지의 리스크 (Known Unknown Risk)가 항상 존재한다. (이번 사태의 출발도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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